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몰랐다. 아동도, 학대도.
가정을 치료하는 면허없는 의사들①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몰랐다. 아동도, 학대도.
2017.09.19 14:00 by 이창희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이웃의 문제를 듣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복지체계의 손발이 되어주는 현장 활동가들이죠. 누구보다 귀한 일을 하는 손길이지만 이들의 처우·인식·업무환경은 여전히 박하기만 합니다. <더퍼스트미디어>에서는 9월 7일 ‘사회복지의 날’을 맞아 각 분야 복지 현장 활동가들의 고백를 통해 그들을 재조명하는 특별기획 ‘이웃사랑 마스터를 말하다’를 연재합니다.

아이들이 가정에서 혹은 바깥에서 이유 없이 아프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가 사회의 미래라는 거창한 명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죠. 하지만 아이들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왜 학대받는지에 대해서는 세세히 알지 못합니다. 상처받는 아이들을 보듬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이들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것은 우리가 아동학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최고 예능’ 무한도전에서의 ‘의미 있는 도전’

MBC ‘무한도전-국민내각’ 출연 장면.

기억하시는가. 올해 3월, MBC <무한도전>이 신년특집으로 마련한 ‘국민내각’에서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 이들이 있다.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위한 취지로 마련된, 무한도전의 법안 공모.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동학대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환기하는 데 성공한 4인방을 직접 만났다. 전남중부권 아동보호전문기관 임광묵 관장을 비롯해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 고완석 과장과 안희선 대리, 은평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이종광씨가 그들이다.

‘국민내각’에 참여한 이들의 각오는 한 세기 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된 이준·이상설·이위종 특사 못지않았다. 200명의 국민의원과 5명의 국회의원, 수십만 명의 시청자들 앞에서 아동학대와 관련해 그간 우리가 무지했던 내용을 거침없이 쏟아냈고, 좌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러분들, 혹시 아동의 나이가 몇 살까지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동학대 신고 전화번호는 몇 번인지 알고 계십니까?”

‘국민의원’ 임광묵 관장의 연이은 질문에 참석자들은 술렁이면서도 뚜렷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학대 범죄가 규정하는 ‘아동’의 나이는 만 18세다. 미취학 아동 혹은 초등학생 정도로 추측하는 우리 대다수의 인식은 여기서 산산조각이 난다. 신고 전화번호는 전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112’다. ‘아동학대=범죄’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대목이지만, 역시나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부모의 친권을 중시하는 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부모는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고, 외부에서는 아동학대를 남의 가정일로 치부해 적극적인 개입을 꺼린다. 그렇게 대한민국에서는 1년에 3만 건 가까운 아동학대 신고 접수가 이뤄지고 매월 3명의 아동이 학대로 목숨을 잃는다.

통계적으로 보면 아동학대의 80% 이상이 가정 내에서 친부모에 의해 발생한다. 임 관장은 학대를 예방하고 가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부모들을 비롯한 사회구성원 전체의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난해 정부에서는 아동학대 근절을 목표로 생애주기별 부모교육을 대책으로 내놨다. 하지만 강제가 아닌 권고 사항인 데다 인센티브도 없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맞벌이 부부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부모들은 교육 참가율이 매우 낮다.

그래서 이들이 내놓은 법안이 ‘좋은 부모 교육법’이다. 임 관장은 "우리나라에는 부모의 의미부터 그 역할과 책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과정이 사실상 없다"면서 "혼인신고, 임신 단계 등 부모교육을 법으로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법안은 국민내각에서 발의할 법안으로 선정돼 당시 참석한 오신환 바른정당 의원과의 교류를 통해 현재 실제 발의를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제가 아동이라고요? 혹시 우리 아빠 감옥 가나요?”

(오른쪽부터) 은평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이종광씨, 전남중부권 아동보호전문기관 임광묵 관장을 비롯해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 고완석 과장과 안희선 대리.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아동학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아동’의 연령 규정부터 확인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아동학대법에서의 기준은 만 18세다. 하지만 최근 한창 논란인 소년법은 만 19세로 규정한다. 청소년기본법의 경우 만 9세에서 24세까지로 범위가 더욱 넓다.

문제는 아동 스스로 자신이 그 같은 기준을 적용받는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가령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부모에게 학대를 당했는데 자신을 보호해줄 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스스로가 청소년인지 아동인지, 어떤 부분에서 위법이 되는지, 그렇다면 이를 어디에 어떻게 호소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결국, 많은 아동은 학대를 겪고 수사기관 혹은 사법기관을 만났을 때 이르러서야 뒤늦게 이 같은 것들을 인지하게 됩니다” 고완석 과장의 한숨 섞인 토로다.

그렇다면 아동학대와 관련한 교육이나 홍보는 어떻게 얼마나 이뤄지고 있을까. 임 관장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민간단체가 중심이 돼 맡고 있지만, 활성화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의무가 아니다 보니 일선 학교의 적극성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학대를 인지한 아동이 갖는 혼란스러움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아동학대가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발생하는데, 아이들이 신고 방법을 모르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자신의 부모가 처벌을 받게 되는 결과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고완석 과장은 "행여 자신의 신고로 부모를 감옥에 넣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아이도 자주 만난다"고 안타깝게 말했다.

‘신고의무자’를 아십니까.

그렇기에 제3자인 주변의 관심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는 신고의무자 제도와 연결된다.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범죄 특례법이 규정하고 있는 직업군의 사람들은 아동학대를 인지했을 경우 아동보호전문기관 또는 수사기관에 즉시 신고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학대 아동을 진료할 수 있는 의료인, 근거리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등을 비롯해 24개 직군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역시 제도적 한계가 뚜렷하다. 신고의무자를 대상으로 1년에 한 차례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이들에 의한 아동학대 신고율은 30%를 밑돈다. 70% 내외에 이르는 선진국들과 비교해 한참 모자란 수치다.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해도 법적 처벌이 아닌 과태료 처분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신고율이 낮다 보니 실제 범죄율은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굿네이버스에서 전국 아동 9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아동권리 실태조사’(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이봉주 교수팀)에 의하면, 아동인구 1000명당 275명이 신체학대, 정서학대, 방임 등 16개 학대지표 중 한 개 이상을 월 1회 이상 지속적으로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한편 보건복지부에서 발행한 2015년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서 아동인구 1000명당 발견되는 학대아동은 1.32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처벌 강도를 통해 신고율을 높이는 방법이 능사는 아니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임 관장은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이 국민적인 차원에서 기울여져야 한다고 말한다. ‘전 국민 신고의무자화(化)’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우리는 비록 ‘맞고’ 자랐지만.

 

“솔직히, 여기 있는 모두 다들 맞으면서 자랐죠?”

웃음기를 곁들인 임 관장의 질문에 농이 섞여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인터뷰에 참여한 모두는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랬다.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으나 대체로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사랑의 매’로 포장된 훈육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냈다. 체벌에 대한 수용은 지극히 당연한 줄로만 여겼고, 일부 반발하는 아이들에겐 ‘반항아’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했던가. 윗세대로부터의 학대는 상당히 높은 확률로 아래 세대의 학대를 부른다. 부모의 학대를 지속적으로 경험한 아이가 성인이 돼 자신의 자녀에게 학대 성향을 나타내는 경우는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교사로부터 체벌을 받은 아이가 성장해 교단에 서기도 한다. 우리가 아동학대의 고리를 끊어내야 하는 너무도 당위적인 이유다.

 후편 <특명! 외양간을 고쳐라>가 이어집니다.

 

/ 사진: 김성재 작가

* 이 콘텐츠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국제구호개발NGO ‘굿네이버스’와 함께 합니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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