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 외양간을 고쳐라
가정을 치료하는 면허 없는 의사들②
특명! 외양간을 고쳐라
2017.09.21 13:00 by 이창희

 *먼저 보면 좋은 글: <가정을 치료하는 면허 없는 의사들(전편) -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몰랐다. 아동도, 학대도>

아이들이 가정에서 혹은 바깥에서 이유 없이 아프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가 사회의 미래라는 거창한 명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죠. 하지만 아이들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왜 학대받는지에 대해서는 세세히 알지 못합니다. 상처받는 아이들을 보듬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이들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것은 우리가 아동학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아동학대는 궁핍한 집에서만? 학대는 대물림? 진실은…

우리는 ‘아동학대’라는 단어에 분노와 불편함을 함께 느낀다. 부도덕하고 몰지각한 성인이 저항할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에게 물리적·정신적 피해를 가하는 이미지가 자동적으로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실제 아동학대의 형태나 사례 등에 있어 생각보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은 여전히 방대하다.

고완석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팀 과장: 흔히 생각하기에 경제적으로 부족한 가정에서만 아동학대가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과거 서울 강남의 어느 가정에 상담을 간 적이 있는데, 마당엔 외제 차가 있고 거실에는 커피 머신이 있는 집이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함에도 역설적으로 방치 형태의 학대가 이뤄지는 경우가 상당하다.

이종광 은평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지는 것과 경제적인 부분은 상관관계가 없다. 정서적 방임은 아이를 괴물로 만든다.

임광묵 전남중부권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맞다. 꼭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학대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양육 기술과 육아에 대한 인식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가 그런 기술부터 가족 상호 간 관계 설정 및 개선에 주력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종광: ‘학대는 대물림’이라는 인식도 과거와 달리 최근 들어서 바뀌는 추세다. 기성세대는 성장기에 부모나 교사로부터의 체벌을 자연스러운 훈육으로 받아들인 탓에 자신의 아이에게도 같은 교육법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심한 학대를 받았던 아이가 성인이 돼 이를 답습하는 사례도 흔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는 가정과 학교에서의 체벌 금지 등 사회적인 변화의 흐름을 겪으면서 학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학대에 대한 이른바 ‘셀프 신고’가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고완석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팀 과장

 

나의 교육은 아이에게 학대일까 훈육일까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지만, 이 나라에서는 여전히 적지 않은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란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부모가 아이를 대할 때 합리적인 교육과 부당한 학대의 경계선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완석: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더라도 학대 여부를 명확히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학대의 정도가 경미한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임광묵: 아이를 아이가 아닌 어른을 대하듯이 권리 주체로 대해주는 것이 정답이라고 본다. 보통 부모들은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즉각적으로 제재를 가하고 신속한 개선을 원한다. 하지만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개선이 될 때까지 반복해서 이해를 구하고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 저도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통제를 가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안희선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팀 대리: 그렇다. 그렇게 아이가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생각이 학대의 시작이 된다. 최근에는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내 새끼=내 소유물’이라는 사고가 강하다. 학대를 저지른 부모에게 실태를 지적해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다.

임광묵 전남중부권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우리의 궁극적 목적은 처벌 아닌 가정 복원”

아동학대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범죄가 맞다. 단죄와 함께 예방을 도모해야 하는 것도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은 처벌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강조한다.

임광묵: 아동학대가 매우 무거운 문제라 일반인들이 많이들 오해하지만, 상당수의 경우는 처벌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소년법이 아이들의 품행을 교정하고 사회구성원으로 건강하게 자라도록 하는 취지인 것처럼 아동학대 역시 그렇다. 실제 많은 경우의 아동학대 처분은 가정법원에서 이뤄진다. 학대 부모를 처벌하는 것보다 아이가 가정 내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거다.

고완석: 그래서 우리도 어떻게 하면 가족 기능을 회복시켜 학대 아동이 안전한 환경에서 후유증을 회복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춘다. 국내에서 정말 내로라하는 연구진과 함께 이에 대한 효과성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서 반드시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공신력 있는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임광묵: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검찰의 구속·기소율이 점점 하락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아동에게 가장 좋은 양육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은 가정이기 때문에 가족 보전이 제1원칙이다. 가족을 무조건 해체하면 안 되는 이유다.

안희선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팀 대리

 

자극적인 이슈에 돌 던지기 대신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태생적으로 언론은 사건이 발생하는 곳에 집중한다. 해당 사건이 자극적이라면 집중도는 더욱 올라간다. 이에 여론이 격한 반응을 보이면서 쏠림 현상이 가속화됐다가 금세 수그러든다. 이 같은 사이클의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안희선: 예전에 정서학대와 방임으로 논란이 된 ‘영양실조 세 자매’를 담당했었다. 친부와 계모로부터 방치된 아이들의 사례가 큰 이슈로 떠오르자 각지에서 후원금과 지원이 쇄도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많은 후원과 관심이 극히 소수에 집중되고 그나마도 금방 사라진다는 점이다.

고완석: 당장 지금은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이슈가 되지만 조금만 지나도 그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잊히곤 한다. 후유증이 지속되고 재학대가 이뤄지는 이유 중 하나다.

이종광 은평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소 잃은 지 오래지만…외양간은 고쳐야죠”

일선 현장에서 다양한 한계를 경험한 이들 4인방은 국가 차원의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보람과 긍지는 분명 그들을 움직이는 에너지원이지만, 소가 사라져버린 외양간을 보수하기란 이들만의 힘으로는 너무도 벅차다.

임광묵: 부모들은 육아 방법에 대해 도움받을 곳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 하다못해 자동차를 구입할 때도 온갖 정보를 활용하고 비교·대조를 거쳐 결정하면서 그 중요한 아이가 태어난 것에 대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더욱이 지금은 과거와 달리 핵가족 시대로, 어디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공공 차원에서의 생애주기별 관리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예산과 절차상의 문제에 막혀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은 상식의 문제임에도 지금까지의 정부들은 대부분의 역할을 민간단체에 미뤄왔다.

고완석: 과거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채 유기되어 병원에 입원 된 신생아를 기관 차원에서 개입한 적이 있다. 당시 뒤늦은 출생신고부터 치료·간호까지 우리가 도맡았다. 물론 우리 같은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그런 부분을 국가의 몫으로 규정한다. 예산이든 인력이든 필요한 것이 너무나 많지만 지금까지 정부에서는 상당히 제한된 역할만, 그것도 다소 억지로 맡아왔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이종광: 순수한 열정으로 희망을 꿈꾸며 들어온 직원들의 상당수가 희망을 보지 못하고 기관을 떠난다. 동료로서 선배로서 가슴이 너무 아픈 부분이다. 직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중압감은 상상 이상이다. 심리치료도 이미 일상이다. 그런 어려움 속에 지금도 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께서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 정부의 약속…“믿고 기다려 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희망을 좇는다. 사명감이라는 거창한 수식이 아니라, 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대한 당위성이 이들을 움직이는 유인이다. 여기에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소통과 신뢰를 표방하는 새 정부의 출범은 이들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꿀 필요조건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완석: 저희가 NGO로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최고의 연구진들과 아동보호 전문서비스 모형과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 결과물도 완성 단계다. 하지만 국가적 차원의 안정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좋은 차를 마련했는데 연료가 없어서야 되겠나.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예산 측면에서 여전히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임광묵: 아동보호는 국가의 역할인데 지금까지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 오죽하면 현장에서는 국가가 아동학대를 한다고 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책적인 부분에서는 활발하지만, 정부의 집행 의지는 부족했다. 일례로 범죄 보호 피해기금은 국가 예산의 일반회계가 아닌 벌금이나 과태료를 통해 축적된 것으로 운영된다. 국가의 의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아동 정책은 아동의 피를 먹고 자라난다’는 말이 있다. 결국, 누가 죽어 나가야 반짝 관심을 가졌다가 다시 수그러들면 사라진다. 정치의 역할은 자원과 가치의 재분배인데, 우리 정부와 사회가 아동의 권리와 가치를 어느 정도나 생각하고 있는지 고민하게 되는 대목이다.

고완석: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 내놓은 공약집에는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 담겨 있다. 신고의무자 교육 강화와 아동보호전문기관 대폭 확대 같은 것들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100대 과제’에도 아동보호 전문기관 공공성 강화와 기능·역할 재정비 등이 있어 저희가 기대하는 게 크다. 저희는 NGO로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도와 정책을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저희가 정말 노력을 많이 했다. 이런 노력의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임광묵: 지금까지는 어렵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희망이 보인다. 솔직히 우리를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아이들을 위해 힘써달라는 것 아닌가. 언론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많은 관심과 지원, 격려를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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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김성재 작가

* 이 콘텐츠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국제구호개발NGO ‘굿네이버스’와 함께 합니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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