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슬럼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2017.09.22 17:05 by 지혜

다시마 세이조 쓰고 그린, <뛰어라 메뚜기>

우리의 결혼은 맞춤법 때문이다.

나는 남편을 소개팅으로 처음 만났다. 그 자리에서 약간 쑥스럽다는 듯이 배시시 웃으며 ‘전 소개팅이 처음’이라고 했지만 거짓말이다. 이건 남편한테 비밀인데, 짧지 않은 연애를 막 끝냈고 한동안 끊었던 소개팅‘들’을 막 시작했을 때였다. 가난했던 대학원생 시절이라 가지고 있는 옷은 청바지에 티셔츠 따위가 전부였다. 딱 하나 있던 하늘거리는 예쁜 원피스를 입고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소개팅을 했다. 일요일에 만난 남자가 남편이다.

사실 토요일에 만난 남자가 키도 더 크고 얼굴도 더 잘생기고 나이도 더 어리고 차도 더 비쌌다. 문제는 맞춤법이었다. 문자를 보내는데 자꾸 맞춤법이 틀렸다. 처음 한두 번은 실수라 여겼지만 틀린 글자는 계속 틀렸다. 반면 일요일에 만난 남자는 맞춤법이 정확했고 문장도 매끄러웠다. 보기 좋은 글은 듣기에도 좋았다. 대화가 즐거웠다. 우리는 올바른 맞춤법처럼 껄끄러운 데 하나 없는 사이로 연애를 하다가 결혼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나와 다른 사람일 줄은 짐작도 못 했다. 우리 집 책장에 나란히 놓인 국문과와 화학과의 전공 서적처럼, 나와 남편은 너무나 다른 책들이었다. 서로를 읽어내는 데 힘이 들었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우리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므로, 나와 남편 각각의 문장이 서서히 모이고 섞여 쌓이고 있음을 안다. 그때 그 일요일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먼 훗날 우리의 문장들은 꽤 괜찮은 책 한 권이 될 것 같다.

지난 어떤 밤, 늦은 퇴근을 한 남편이 한숨을 깊게 쉰다. 다 지겹다고 했다. 이렇게 무기력한 표정과 지친 어깨는 늘 내 것이었지 남편의 것이 아니었다. 긍정적인 사람인데 갑자기 이러니 낯설고 걱정되었다. 도와주고 싶었다. 순전히 내 방식대로.

 

 

꿈을 향해 힘껏,

<뛰어라 메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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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풀 속에서 메뚜기는 살고 있지만 살기 힘들다. 두꺼비나 거미처럼 힘세고 무서운 것들이 메뚜기를 잡아먹으려고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구석에서 위험을 피해 조용히 숨어 살아야 하는 하루하루가 지겹고 싫어, 단단히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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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을 쬐러 커다란 바위 꼭대기로 나간다. 이러다 잡아먹힌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담하게 행동한다. 예상대로 뱀에게 들키고 사마귀가 달려든다. 하지만 그 순간 메뚜기는 가만히 있지 않고 온 힘을 다해 펄쩍 뛴다. 그 바람에 뱀은 바위에 부딪혀 온몸이 우그러지고 사마귀는 산산조각이 난다. 그렇게 메뚜기는 자신을 괴롭히던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남들이 뭐라 비웃든 잊고 있던 날개를 활짝 펴고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간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이라 생각했다. 이 메뚜기처럼 높이 그리고 멀리, 꿈을 찾아서 날아보라고.

“나는 부자로 살아보지 않아서 돈이 좀 없어도 불편하지 않아. 잘 살 수 있거든. 그러니까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회사 그만두고 지금이라도 시작해. 꿈이 뭐야? 꿈 없어? 한번 잘 생각해봐.”

“누구나 대단한 꿈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야. 나처럼 적당한 하루에 만족해하는 사람도 있어. 그러니까 자꾸 꿈을 찾으라고 하면 강요가 되는 거야. 우리 상황에서 가장 나은 방법을 찾아보고 얘기해줄게”

남편은 꿈이 아니라 방법을 찾겠다고 했고 며칠 뒤에 답을 했다.

“내년에 철인 3종 경기에 나갈 거야.”

그리고 덧붙였다.

회사는 그만둘 수가 없다. 지금처럼 우리 가족이 안락하고 편안하게 지내는 생활이 좋은데 여기에는 일정한 금액이 필요하고 그래서 월급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회사 일에서 자아나 보람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겠다. 그저 ‘회사 일’로 끝내고 돌아오겠다. 대신 운동을 열심히 해보고 싶다. 자전거도 타고 수영도 하고 달리기도 해서 철인 3종 경기에 나갈 것이다.

사실 나는 남편의 꿈을 알고 있었다. 연애할 때, 오빠는 꿈이 뭐예요? 물었더니 삼십 평 아파트에서 창마다 예쁜 커튼을 달고 가족들과 오순도순 사는 것이라 답했다. 그때 속으로 그런 것도 꿈인가 생각했고 그래서 잊었다. 우리는 지금 삼십 평 아파트에서 창마다 예쁜 커튼을 달고 오순도순 산다.

나와 남편이 이렇게 다르다. 남편의 눈으로 보니 그림책도 다르게 읽힌다. 구름을 뚫고 높이 뛰었다고 해도, 훨훨 날아 저 멀리 황무지를 지났다고 해도 결국 메뚜기는 땅으로 내려와야 살 수 있다. 어떤 메뚜기에게는 땅이 더 편할 수도 있다. 그러니 뛰고 싶을 때 뛸 수 있을 만큼 뛰면 된다. 다칠까 봐 무섭다면 조금 살살 뛰어도 괜찮다. ‘뜀’이 반드시 더 높이, 더 멀리, 하늘과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테니. 그저 이 수풀을 벗어나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을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의 뜀이라면 충분하다 믿는다.

그러고 보니 이 그림책의 제목을 ‘날아라 메뚜기’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뛰어라 메뚜기’다. 그림책 속 메뚜기는 온 힘을 다해 힘껏 뛰다가 결국 날아오르는 데 성공한다. 혹시 나는 성공한 그 결과만 기억했던 것일까. 날았든 못 날았든 일단 뛰기로 결심한, 바위 위에 메뚜기를 기억하겠다. 응원한다. 뛰어라! 메뚜기.

돌아오는 토요일, 남편은 시민 수영 대회에 나간다. 밤마다 수영장에 가서 연습을 하고 오는데 그 얼굴이 뽀송해서 참 보기 좋다.

  Information

 <뛰어라 메뚜기> 글·그림 : 다시마 세이조 | 출판사 : 보림 | 발행 : 2000.01.31 | 가격 : 12,000원

 

/사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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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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