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쓰고 그린, <두 사람>
추석, 시댁에 다녀왔다. 어머니는 특별한 날이면 늘 LA갈비와 양념게장 그리고 잡채를 해두신다. 여기에 누군가의 생일이면 미역국이, 설에는 떡만둣국이, 추석에는 소고기뭇국이 덧붙는다. 모든 음식을 미리 다 만드시는 것은 아니고 형님과 내가 만들 몫도 남기시는데 그게 바로 ‘전’이다. 그래 봤자 애호박 두어 개와 동태 한 팩이 전부다. 애호박 둥글게 쫑쫑 썰고 동태는 살짝 녹여 밀가루와 달걀물 고루 묻힌 뒤에 기름 넉넉히 두른 팬에 부친다. 이 일을 어머니와 형님,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 하니 겨우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처음에는 그저 구색 맞추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가스레인지 앞에 셋이 모여 전을 부치다 보면, 어쩌면 어머니는 ‘우리끼리’ 있는 시간을 남겨두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어느 밤처럼 어머니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유난히 솔직해지고 ‘이제는 다 지난 일’들이 불 위에서 노릇노릇 익는다. 사실 이미 몇 번씩 들었던 얘기가 대부분이지만 나는 처음 듣는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거린다. 어머니가 이 가스레인지 앞을 많이 기다렸을 것 같아서.
나는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편이다. 결혼하고 나서 시어머니 흉보고 다닌 거 민망하게 어머니가 점점 좋아진다. 물론 아직도 미운 점이 좀 있어서 사랑한다 말 못 하겠다. 상냥하지 않은 말투도, 내 이름 앞에 ‘야!’를 붙여 부르실 때도, 아들한테 주방 일은 절대 못 시키면서 며느리한테는 너무나 쉽게 시키는 태도도, 손주가 밥을 잘 안 먹으면 엄마 탓이라 우기실 때도, 교회 나가라는 잔소리도 밉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는다. 아직은 사랑하는 편이다.
어머니를 거의 사랑하기까지, 십 년 가까이 걸렸다. 결국, 시간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나는 어머니를 사랑하게 될까.
아이를 낳았을 때, 어머니는 병원에 꽃다발과 아기 내복 한 벌을 들고 오셨다. 서운했다. 다른 집 시어머니는 며느리와 손주에게 크고 좋은 선물도 많이 주던데 꽃다발과 내복 한 벌이라니. 고작 이거야, 하는 마음이었다. 지난 추석 가스레인지 앞에서 알았다. 아버님의 반평생을 쏟은 사업이 빠르게 내리막길을 걷다가 완전히 끝나버리고 마지막이었던 작은 공장 하나도 팔아버렸을 때, 아이가 태어났다. 없어서 못 주는 그 손이 어머니는 얼마나 서러웠을지, 몇 년이 흐른 뒤에야 이해한다. 아버님이 택시 운전을 시작하고 적은 수입이라도 생기자 어머니는 아이 이름으로 된 통장을 하나 만들어오라고 하셨다. “조금씩 모아서 대학 갈 때 주려고. 내가 뭐가 있냐, 이거라도 해줘야지.” 내 생일이 오면 불러 미역국을 끓여주시고 용돈을 주신다. “조금 밖에 못 줘서 미안해.” 그리고 설날에는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주신다. 봉투마다 또박또박 우리들의 이름을 써서.
참 짓궂게도 작년 우리 두 사람은 같은 날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어머니는 유방암 수술이었고 나는 난소에 생긴 물혹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암이었다. 아무도 몰랐다. 어머니는 자식들 걱정할까 혼자서 고된 검사를 다 받고 다니시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시간만 열심히 살고 있었다. 수술하기 전에 어머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 하신다. “엄마가 아파서 지혜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하네, 옆에 있어 줘야 하는데 미안해. 서운해하지 말어 응? 수술 잘 받고 우리 건강해져서 보자.” 치, 어머니가 더 아플 텐데. 누가 누굴 걱정하나.
여기에 연재를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원고료라는 것을 받았다. 그 돈으로 어머니 속옷을 샀다. 돈을 더 보태서 비싸고 좋은 것을 사드릴까 하다가 그래도 ‘원고료’로 산 속옷을 사드리고 싶어서 덜 예쁜 것을 골랐는데도 어머니는 예쁘다고 난리다. 여기저기 자랑도 듬뿍했는지 시외삼촌 한 분은 나를 볼 때마다 작가님, 하고 부르신다. 어머니는 정말 왜 그러시는지. 창피하게.
서두르지 않으려고 하는데 어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이 급해진다. 내가 쓴 글들 모아들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어서 보고 싶은데 나는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 어머니는 지금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른다. 나와 나의 시어머니,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이렇게 사랑하는 편이다.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 잔뜩 엉켜버릴 때도 술술 풀어질 때도 있지만 결국 조금씩 엮어나갈 것이다. 이 그림책이 말하는 대로.
함께하는 두 사람이 이야기의 주인공,
<두 사람>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어떤 두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 두 사람은 엄마와 딸일 수도 있고, 형제일 수도 있고, 남매일 수도 있고, 친한 친구일 수도, 남편과 아내일 수도 있어요. 함께하는 두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렵지도 않다. 늘 좋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나쁘지만도 않다. 좋을 때 너무 기뻐할 필요도 나쁠 때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본래 삶이라는 듯, 이 그림책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차분하게 표현한다.
두 사람은 열쇠와 자물쇠, 바다 위 두 섬, 모래시계의 두 그릇, 꽃과 줄기, 낮과 밤처럼 서로 다르지만 결국 이어진다. 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분명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어느 날은 열쇠가 되어, 또 어느 날은 자물쇠가 되어 열어주고 열린다.
나와 나의 시어머니는 모래시계의 두 그릇 같은 두 사람이 되길. 위쪽 그릇이 모래를 주면, 아래쪽 그릇은 받는다. 다음번에는 반대가 된다.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그렇게 오래 왔다가 갔다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Information
<두 사람> 글·그림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 번역 : 이지원 | 출판사 : 사계절 | 발행 : 2008.06.16 | 가격 : 9,800원
/사진: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