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2017.10.11 16:59 by 류승연

저녁 밥상을 준비한다. 아들이 좋아하는 특정 브랜드의 햄을 굽는다. 부엌에 들어온 아들. 햄을 보는 순간 마음이 다급해진다. 빨리 먹고 싶어 안달이 났다. 선반 안에 있던 즉석밥을 꺼내 들고는 상 위에 옮겨 놓는다. 그리고는 아무도 없는 빈 상에 먼저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남편과 나는 웃음이 터져서 숨넘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말은 못 해도 먹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자신만의 ‘의사소통 방법’이 너무 예쁜 것이다. 게다가 즉석밥이라니. 어쨌든 즉석밥도 밥 아닌가. 자기 딴에는 상차림을 도운 거다. 남편이 못 참고 아들한테 달려가 있는 힘껏 껴안고 숨 막히는 뽀뽀세례를 퍼부어댄다.

“아이고~ 사람 흉내 내는 거야? 응? 상까지 차렸어? 아이고~ 이 바보 놈이 사람 다 됐네~”

한참 웃고 있던 나는 순간 얼굴이 굳어진다.

“자기, 잠깐 스톱! 지금 뭐라고 했어? 바보?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뭐 어때?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아들의 볼을 물고 빠느라 발음도 부정확한 채로 남편이 말한다. 어허. 이 양반이 큰일 날 소리 한다. 다시 교육 좀 들어가야겠다. 장애이해 교육.

사실 이런 식의 오해는 주변에서 심심찮게 일어나곤 한다. 지난 추석에도 친정에 갔더니 혼자서 생글거리는 아들을 보며 친정 아빠가 말한다.

“우리 중에 동환이가 제일 행복하구나. 혼자만의 세계에서 무슨 걱정이 있겠니.”

아니에요. 아빠. 오해예요. 오해. 동환이가 혼자 즐거워한다고요? 그럼 즐거운 생각이 났나 보죠. 우리도 문득 즐거운 생각이 떠오를 때면 혼자 미소 짓곤 하잖아요. 동환이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기 때문에 미소를 뛰어넘어 웃음까지 지은 거예요.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환상의 친구를 만들어 놓고 그 공간에서 혼자 놀고 있는 게 아니랍니다. 인지가 낮고 감각이 다를 뿐이지 정신이 미친 게 아니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한바탕 늘어놓고 싶었으나 명절날 분위기를 흐릴까 싶어 그냥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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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키우면서 사람들이 발달장애인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가까운 가족도 이러할 진데 평소 발달장애인을 자주 접해본 적 없는 일반인이라면 어떨까.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가장 큰 오해 중에 하나는 인지가 낮은 발달장애인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로 발화가 되지 않거나, 말을 하더라도 유아기적 화법을 사용하는 이들을 그렇게 대하는 경향이 많은데 실로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지 못 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인지가 낮은 것도 한몫을 하겠지만, 감각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고, 입 주변 신경이나 근육의 문제일 수도 있으며, 심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의사소통을 하는 데 있어 말이 전부인 것만은 아니다. 아들 역시 “빨리 햄 먹고 싶어”라는 말은 못 하지만, 상차림을 돕고 빈 상에 가서 자리 잡고 앉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한다. 입 대신 온몸이 ‘발화 언어’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수용 언어는 어떨까? 말로 표현되지 않아 정확한 측정이 어려울 뿐 대체적으로 거의 모든 이들의 수용 언어 능력은 발화 언어 능력보다 높다. 특히 말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일수록 눈치는 기가 막히게 발달하곤 한단다. 어느 상황에서든 죽으란 법은 없다는 얘기다. 아들 같은 경우는 나의 미묘한 말투와 행동 변화만으로도 평상시와 다른 상황이 벌어질 것을 미리 감지해 내곤 한다.

이렇게 눈치가 발달한 아이에게 못 알아듣는다고 ‘바보’라는 말을 하게 되면 어떨까? 지금이야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커가면서 또래 친구들에게 심심찮게 듣게 될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금방 감을 잡게 될 것이다.

작년 일반학교 입학 둘째 날 아들을 보고 “저 병신새끼 또 왔다”라고 했던 옆 반 형, “바보 왔다”라고 외친 같은 반 친구. 그 아이들이 그토록 대담하게 공개적인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말을 못 하는 아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사진:Suzanne Tucker/shutterstock.com)

그리고 또 하나의 오해. 발달장애인은 혼자만의 성 안에서 산다는 것. 아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표현하는 방법이 우리와 다를 뿐이다.

흔히 지적 장애인보다는 자폐증 장애인을 두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어딘가에서 본 자폐증 장애인의 일러스트가 생각나는데, 그림 속 자폐증 장애인은 벽을 바라보고 혼자 앉아 있었다. 이것이 자폐증 장애인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일 터였다. 하긴 나조차 그랬으니…. 나는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자폐증 장애인을 포함한 발달장애인이 혼자만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깰 수 있었다.

하나는 캐나다에 사는 10대 소녀 칼리의 이야기를 유튜브에서 보고 나서다. 칼리는 말도 못 하고, 알 수 없는 행동만 하는 중증의 자폐증 장애인이다. 자신의 머리를 때리고 팔다리를 휘저으며 이상한 소리만 내는 칼리. 부모는 그런 칼리를 앞에 두고 별별 이야기를 다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칼리는 컴퓨터를 배우게 된다. 말을 못하는 대신 키보드를 통해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게 된 것이다. 여러 치료사들의 협업으로 오랜 시간 컴퓨터를 배워 문장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칼리. 키보드를 통해 쏟아낸 이야기들은 놀라웠다.

칼리는 자신이 자폐증 장애인이지만 그건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고 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조정할 수 없는 고장 난 몸 안에 자신이 살고 있다고 했다. 갑자기 여러 감각이 밀려오면 그 감각을 조정할 수가 없다고. 그 감각들을 막기 위해 머리를 때리거나 박수를 치거나 몸을 구르거나 등의 상동행동을 하게 된다고. 머리를 때리는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밀려드는 감각 때문에) 온몸이 흔든 콜라처럼 터질 것 같아서라고. 자신의 몸과 자신의 두뇌는 항상 싸우고 있다고 칼리는 말했다.

컴퓨터라는 매개가 없었다면 칼리는 여전히 이상한 세계에 갇혀 사는 앨리스가 되어 있을 터였다. 주변에선 그녀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 가슴에 상처가 되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했을 것이고, 우리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그녀가 ‘감각이 고장 난 몸’ 때문에 우리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 또 하나의 계기는 2016년 3월 3일자 에이블뉴스에 실린 김석주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나서다. 그녀 역시 자폐증 장애인의 엄마이며, 음악치료사도 겸하고 있다. 본문의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최근에는 자폐증을 손상의 측면이 아닌 ‘인지다양성’ 또는 ‘신경다양성’의 한 유형으로 보는 시각까지 나오고 있다. 일상적인 범주의 생활을 익히는 데에는 틀림없이 발달 과정상의 어려움이 있지만 자폐인들 나름의 독특한 패턴과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자폐’, 즉 ‘스스로 마음을 닫았다’는 명칭이 이들에게 적합한 것인지 심각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오히려 태어날 때부터 세상을 알기가 어려워 힘겨워하는 아이를 향해 ‘넌 나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으니 네가 마음을 닫은 거라고 봐’라는 단정과 외면으로 먼저 마음을 닫아버린 쪽은 우리들이 아닐까?"

(사진:Anson0618/shutterstock.com)

자, 이제 우리 아들로 돌아가 본다. 일단 남편 입에서 은연중에라도, 아무리 예뻐서라도 다시는 ‘바보’라는 말이 못 나오게 철저한 장애이해 교육을 시키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아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뿐이지 혼자만의 성에 갇혀 사는 라푼젤 공주가 아님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개그 프로를 보면서 나는 박장대소를 하고, 딸은 소리를 지르며 웃고, 남편은 큭~하고 웃다 마는 것처럼 저마다의 표현방식이 다른 것뿐이다.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존재다. 발달장애인은. 그것도 전혀 가식적이지 않은 각자만의 표현방식이 너무나 재미있고 순수한. 볼수록 매력 있는 매력덩어리다. 나에게 장애인인 아들은 그런 존재다. 모두에게도 그런 존재이기를 바라본다.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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