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뤄주는 가방, 루아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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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뤄주는 가방, 루아흐
꿈을 이뤄주는 가방, 루아흐
2015.07.22 12:40 by 조철희

치열한 세상이다. 부대끼며 살다 보면 한 번씩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 물음에 응답한 사람들의 스토리다. 누군가는 창업을 했고, 어떤 이는 공방을 열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갈 길은 멀다. 제대로 구조를 갖추지 못해 고군분투하기 일쑤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이들 모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는 점이다. ‘언더 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는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공간이다. 롯데면세점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성동구청과 함께 꾸려가는 사회공헌 창조공간으로,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혁신기업가‧예술가‧비영리기획자 등이 함께한다. 더퍼스트는 이들의 도전이 활짝 꽃피우는 그날을 기대하며 ‘변화를 만나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가방은 패션 아이템으로도 각광받지만, 기본적으로 물건을 담아 휴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상품인 가방은 텅 비어 있고, 주인을 만나 그의 물건을 품을 때 비로소 본연의 가치가 발현된다. 그런데 이미 무언가가 담긴 가방을 파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전영운(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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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루아흐 소개를 간단히 부탁한다.

루아흐는 필리핀에 사는 실제 아이들의 얼굴과 아이들의 꿈을 형상화한 그림을 프린팅한 에코백을 판매하는 브랜드다. ‘루아흐(Ruach)’는 히브리어로 ‘호흡’, ‘정신’, ‘바람’이라는 뜻이다. 상당히 추상적인데, 개인적으로 이것을 ‘꿈’이라고 해석한다. 아이들의 꿈을 응원한다는 의미를 담아 브랜드 이름으로 삼았다. 어렸을 때 교회에서 듣고 멋있다고 생각해 언젠가 내가 사업을 하게 되면 이 단어를 쓰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니 남들처럼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공무원이 되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다.

- 창업 이전의 전 대표 이야기를 들려 달라.

대학을 졸업하고 경영학 대학원에 바로 진학했다. 그 뒤 입대했는데, 제대 후 시간이 남아 어학연수 겸 필리핀에서 반년 정도 머물렀다. 수빅(Subic)이라는 곳으로, 수도 마닐라에서 버스로 두 시간 반 가량 걸리는 곳이다. 거기서 어렵게 살아가는 현지 아이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당시에는 그걸 보고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려서 그랬던 것 같다. 스물 세 살이었다. 귀국해서 복학하지 않고 한 스타트업(Start-up) 기업에서 마케팅 일을 했는데, 반복되는 직장생활이 무료해서 반년 만에 그만뒀다. 그 즈음 우리나라 아이들을 보면서, 너무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필리핀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생각해 루아흐를 시작했다.  

전영운 루아흐 대표

- 대부분 사업을 시작하면 어떻게 돈을 벌지를 생각한다.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점이 특이한데.

내 월급에서 일정 부분을 떼서 돕기보다는 내가 실제로 아이들을 만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가방이라는 아이템을 잡았는데, 패션에 관심이 많긴 했지만 전문가도 아니고 사업적 지식도 부족했다. 맨땅에 헤딩한 셈이다.

- 제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생산 공정은 루아흐가 발주한 공장에서 담당한다. 보통 에코백과 달리 안감이 들어가서 공임이 높은 편이다. 아이의 얼굴을 어떻게 담을지, 그 아이의 꿈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는 디자이너와 상의해서 결정한다. 디자이너는 SNS로 연락이 닿았다. 지금 싱가포르에서 유학하고 있다. 아직 수익이 많이 나지 않는 상황이어서 외주 비용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다행히 루아흐의 스토리에 공감해 거의 재능기부 형식으로 함께해준다. 감사한 분이다.

- 필리핀 아이들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어학연수로 필리핀에 갔을 때 영어 선생님이 있었다. 나보다 두 살 누나인데, 원래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도움을 청하니 흔쾌히 응해줬다. 근무하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중 일단 형편이 어려운 아이 두 명만 정해 달라 부탁했고, 작년 2월에 시제품을 들고 현지에 가서 조멜(Jomel)과 안젤린(Angelyn)을 처음 만났다. 덜컥 아이들을 돕겠다고 해놓고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했는데, 열악한 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실제로 만나고 나니 열심히 해야겠다는 힘이 솟더라.  

안젤린이 사는 바닷가 마을은 쓰레기로 심하게 오염돼 아이들이 피부병 등 각종 질병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고 한다. /사진: 루아흐 제공

- 아이들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려줄 수 있나?

조멜은 8살, 지금 초등학교 2학년생이다.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가 조멜과 두 살 위 누나를 키운다. 아빠는 직업이 일정치 않아 폐지를 주워 팔거나 아궁이에 장작을 때 숯을 만들어 판다. 하루에 15페소(우리 돈 약 400원) 벌까 말까다. 산 속에 두 평 남짓 되는 판잣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아궁이와 생활공간이 분리되지 않아 아이들은 매운 연기를 들이마시며 잠을 자고, 비가 오면 집안이 물바다가 되는 그런 곳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환경이었다. 바닷가에 사는 안젤린은 부모님은 모두 계시지만 형제가 넷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오빠는 학교를 일찍 그만뒀다. 아버지가 남의 배를 타고 새우잡이를 한다. 하루에 20페소(우리 돈 약 500원)를 버는데 그마저도 매일 나가진 못한다. 두세 평 되는 판잣집에서 여섯 식구가 생활하는데, 집 앞의 바다가 쓰레기더미로 심하게 오염돼 있다. 피부병을 달고 살면서도 약이 없어 치료를 못하는 형편이었다.

조멜(왼쪽)과 안젤린(오른쪽)의 꿈을 디자인해 입힌 제품의 모습 /사진: 루아흐 제공

- 앞서 아이들의 얼굴과 꿈을 디자인해 제품에 담았다고 했다. 이 아이들의 경우 어떻게 표현했나?

조멜은 하늘을 날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제품에 조멜의 얼굴과 함께 왼쪽에는 세상에서 가장 높고 멀리 나는 새인 알바트로스를, 오른쪽에는 자작나무를 배치했다. 자작나무에는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뜻이 있는데 엄마를 그리워하는 조멜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얼굴 아랫부분은 나팔꽃, 프리지아, 백장미, 자스민으로 장식했다. 각각 ‘기쁜 소식’, ‘천진난만’, ‘순진’, ‘행복’이라는 꽃말을 담고 있다. 안젤린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더 이상 자신의 오빠처럼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제품에 나타난 안젤린의 머리 위 건물은 필리핀의 마닐라대학이다. 얼굴을 감싼 꽃들은 모란, 꽈리, 앵두, 개나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각각 ‘은혜’, ‘조용한 아름다움’, ‘수줍음’, ‘희망’이라는 의미다.

- 수익금은 아이들에게 어떤 형태로 전달되나?

직접 돈을 전달하지는 않고 현물지원을 한다. 학용품이나 의류, 약 등 아이들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한다. 3~4개월마다 찾고 있고, 갈 때마다 후원 아동을 두 명씩 늘리는 게 목표다. 지금은 7명의 개별 아동을 지원하고 있다. 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곳도 있다. 바탄(Bataan) 주에 있는 키리나간 초등학교인데, 아이타(원주민)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다. 전교생이 150명 정도 되는데 신발과 의류를 전달하기도 했고, 급식 나눔, 한국 문화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최근에 학교 측에서 졸업식 초대장을 보내왔다. 갑작스런 초청에 응하지는 못했지만 루아흐가 인정받은 것 같아 정말 기분이 좋았다. 오는 여름에 직접 가서 이번에 받지 못한 감사패를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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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NGO에서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를 창업으로 풀어낸 점이 독특하다. 혹시 다른 NGO 등에서 제휴 제안은 없었는지, NGO로의 전환을 생각해본 적은 없는지 궁금하다.

실제로 NGO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끌려가는 입장이 될 것 같아서 거절했다. 같이 사업을 하게 되더라도 좀 더 성장한 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덩치가 커지면 루아흐만의 무브먼트가 생길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먼저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으려 한다. 그러면 투자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좀 더 열릴 것 같다.

- 사업상 어려운 점도 있을텐데.

다행히 지난해 에코백이 유행하기도 했고, 고객들의 후기나 루아흐의 이야기가 블로그에 많이 소개돼 입소문도 탔다. 덕분에 첫 시즌임에도 기대 이상으로 많이 판매됐다. 하지만 에코백은 여름 한철을 겨냥한 상품이다. 다른 종류의 가방이나 팔찌 등도 제작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력 라인은 에코백이다. 겨울 등 다른 시즌을 겨냥한 다양한 상품군을 선보일 필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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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루아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나?

내 목표는 착한 소비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기부뿐만 아니라 착한 소비도 일종의 운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루아흐 제품을 알리기 위해 다른 기업들과의 협업도 진행하려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아이의 꿈이 파일럿이라면 항공사와, 운동선수가 꿈이라면 스포츠브랜드와 협업해 제품을 만들어 루아흐의 스토리를 알리는 식이다. 이미 이 전 단계로 야마하의 피아노를 프린팅한 에코백을 출시하기도 했다.

- 마지막으로, 전 대표가 생각하는 성공이란 무엇인가?

나는 성공을 부나 권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많은 영감을 준 탐스 슈즈의 CEO 블레이크 마이코스키(Blake Mycoskie)는 ‘한때 내가 살았으므로 인해 단 한 명의 삶이라도 더 편안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도 이러한 성공을 목표로 열심히 달려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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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조철희

늘 가장 첫번째(The First) 전하는 이가 된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