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어르신들, 도움 줄 대상 아닌 함께 꽃피울 동반자죠
HOME > > >
쪽방촌 어르신들, 도움 줄 대상 아닌 함께 꽃피울 동반자죠
쪽방촌 어르신들, 도움 줄 대상 아닌 함께 꽃피울 동반자죠
2015.10.12 22:48 by 조철희

치열한 세상이다. 부대끼며 살다 보면 한 번씩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 물음에 응답한 사람들의 스토리다. 누군가는 창업을 했고, 어떤 이는 공방을 열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갈 길은 멀다. 제대로 구조를 갖추지 못해 고군분투하기 일쑤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이들 모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는 점이다. ‘언더 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는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공간이다. 롯데면세점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성동구청과 함께 꾸려가는 사회공헌 창조공간으로,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혁신기업가‧예술가‧비영리기획자 등이 함께한다. 더퍼스트는 이들의 도전이 활짝 꽃피우는 그날을 기대하며 ‘변화를 만나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꽃피우다’

“자활사업을 다르게 풀어내고 싶어요. 멋지고 재미있는 것으로요. 우리와 함께하는 쪽방촌 주민들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양순모 에덴그리닝 대표)

흰 셔츠에 청바지, 스니커즈를 맞춰 신은 멋쟁이 신사 숙녀들. 손에 든 꽃다발은 화사함을 더한다. 화려한 겉모습 이면엔 아픔도 있다. 이들은 모두 반 평 남짓 공간에서 잠을 청하는, 속칭 ‘노숙인’들이다.

오랜 세월 지쳤을 그들의 삶은 사진 속 모습만큼이나 달라졌다. ‘꽃피우다’를 만나고부터다. 꽃피우다는 온․오프라인으로 꽃을 판매하는 브랜드로, 지난해 7월 중림종합사회복지관(서울시 중구)에 처음 문을 열었다. 쪽방촌 주민 자활사업의 일환이었다. 서울시 중구, 남대문지역상담센터, 현대엔지니어링, 에덴그리닝 등 다양한 주체가 이를 위해 뭉쳤다.

DSC_0778_shop1_001357-horz

2013년, 탈북 청년들과 옥상 가드닝(gardening․조경) 사업으로 시작한 에덴그리닝은 현재 꽃피우다의 상품 제작, 마케팅 등 전반적인 운영을 책임진다. 양순모(29) 대표가 쪽방촌 주민들과 부대끼며 지낸지도 어느덧 1년여다. 쪽방촌 주민들이 주로 담당하는 일은 꽃다발‧화분 등 꽃 관련 상품을 만들고 이를 직접 배달하는 것. 전문 플로리스트를 비롯한 에덴그리닝 직원들이 교육‧지도하며 함께 일한다.

양 대표는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특히 술 때문에 문제가 많았어요. 주민 분들 열에 일곱은 알콜 중독이거든요. 무단결근을 하시는가 하면, 갑자기 연락 받고 병원 응급실에 모시러 간 적도 있어요. 술에 취해 사업장에서 언성을 높이는 날도 적지 않았죠. 지금은 구성원이 조금씩 바뀌면서 팀워크가 잘 맞아가고 있어요. 그렇게 달고 사시던 술도 끊은 분도 계시고요.”

양순모 에덴그리닝 대표

꽃피우다에서 일하는 쪽방촌 주민들은 중구청 소속의 자활사업 참여자다. 하루 임금(6시간 상당)은 구청으로부터 받는데, 꽃피우다는 시간 외 수당 등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의욕을 높였다. 양 대표는 “꽃을 선물 받는 사람들이 다들 좋아하니 직접 배달을 나갈 땐 한껏 미소를 머금고 돌아온다”며 “사업 아이템인 꽃 또한 좋은 매개체가 됐다”고 짚었다.

최근에는 쪽방촌 주민 한 명을 에덴그리닝의 정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바로 김종성(53)씨다. 알콜 중독이 심했던 김씨는 꽃피우다에서 일하며 술을 탁 끊었다. 현재도 병원치료를 병행하고 있지만 업무에는 지장이 없다. 오히려 작업장 분위기를 이끌며 새로 들어온 사람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재 김씨를 포함해 쪽방촌 주민 5명이 꽃피우다에서 일한다.

양 대표는 꽃피우다 상품의 가장 큰 장점으로 ‘합리적인 가격과 좋은 퀄리티’를 꼽았다. 현재 에덴그리닝의 직원은 총 다섯 명. 디자인‧마케팅‧운영 등 업무 분담으로, 플로리스트는 꽃 만드는 일에만 집중한다. 여기에 중구청이 공간 임대료 및 임금을 지원해 더욱 경쟁력 있는 제품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대표 상품은 ‘미니화분’과 같은 행사 답례품. 자활사업 참여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아이템으로, 비교적 간단한 교육만으로 제작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좌)와 MBC(우)에 납품한 꽃피우다의 답례품(사진: 꽃피우다 제공)

“농원에서 하는 답례품은 덜 예쁜 편이에요. 꽃집의 플로리스트들은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답례품에 주력할 수 없죠. 꽃피우다는 대기업들의 답례품 발주도 수차례 소화했어요. 나름의 틈새를 찾았다고 생각해요.”

지난 9월에는 웨딩 부케 라인도 론칭했다. 시중가 20~30만원의 상품을 10만원 선에 제공한다. 양 대표는 “알음알음 문의를 받아 진행하던 것을 꽃피우다의 정식 상품으로 올리게 됐다”며, “출시 한 달도 안됐지만 반응이 상당히 뜨겁다”고 귀띔했다.

피치화이트 부케(사진: 꽃피우다 제공)

오는 11월에는 ‘마리몬드’와 함께 꽃을 테마로 한 문화공간도 조성하기로 했다. 마리몬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압화(壓花) 작품을 기반으로 만든 꽃 패턴으로 디자인 상품을 생산하는 브랜드다. 이 공간에서는 꽃다발‧디퓨져 등 꽃 관련 소품을 만드는 플라워 클래스를 비롯해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전개된다. 공간은 내달 서울숲(서울 성동구) 인근에 조성되는 공익거리 ‘언더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에 자리할 예정이다.

꽃피우다와 함께하는 쪽방촌 주민들의 작업 모습(사진: 꽃피우다 제공)

꽃피우다는 개점 첫 달(지난해 7월) 매출 100만원에서 지금은 월 매출 1500~2000만원을 올릴 정도로 성장했다. 자활사업으로서는 주목할 만한 성과다. 주민들의 변화는 양순모 대표가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돕는다.

“자활 프로그램 참여자를 도움의 대상으로만 여겨선 안돼요. 사업 대상자가 사업의 중심에 서는 것이 중요하죠. 우리가 쪽방촌 주민들의 강점인 답례품 제작에 무게를 두는 것처럼요, 지금 이 분들은 제게 꼭 필요한 분들이 됐어요. 앞으로도 더 많은 분들과 함께 꽃을 피워가고 싶습니다.”  

취재/조철희 기자, 이예림 객원기자

필자소개
조철희

늘 가장 첫번째(The First) 전하는 이가 된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