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스며드는 멋, 패션에 스며드는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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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스며드는 멋, 패션에 스며드는 가치
일상에 스며드는 멋, 패션에 스며드는 가치
2015.12.05 08:56 by 최태욱

치열한 세상이다. 부대끼며 살다 보면 한 번씩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 물음에 응답한 사람들의 스토리다. 누군가는 창업을 했고, 어떤 이는 공방을 열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갈 길은 멀다. 제대로 구조를 갖추지 못해 고군분투하기 일쑤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이들 모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는 점이다. ‘언더 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서울 성동구)’는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공간이다. 롯데면세점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과 함께 꾸려가는 사회공헌 창조공간으로,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혁신기업가‧예술가‧비영리기획자 등이 함께한다. 더퍼스트는 이들의 도전이 활짝 꽃피우는 그날을 기대하며 ‘변화를 만나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에코패션 브랜드 세이프선데이

김안나 실장 인터뷰 영상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 버리고 왜 사서 고생이냐.” 지난 몇 년간 김안나(31) 세이프선데이 실장을 따라다녔던 질문이다. 지겨울 정도로 들었다고 할 정도. 정작 본인은 덤덤하다. “외국 생활 오래하니 힘들더라고요. 한계를 느꼈어요.” 김 실장은 소위 ‘뉴요커(New Yorker)’였다. 도나카란, 마크제이콥스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배출한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The New School of Design)을 졸업했고, 마이클코어스(Michael Kors) 등 명품패션 브랜드에서 2년 간 일했다. 하지만 화려한 이면엔 그늘도 있었다. ‘이게 진짜 만족스러운 삶인가’라는 고민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그런 그가 ‘만족스러운 삶’을 향해 도전장을 던졌다. 업사이클링(Up-cycling)브랜드 ‘세이프선데이’를 통해서다.

간단하고실용적인 가방을 모티브로 하는 세이프선데이의 에코백은 다양한 소재의 패브릭으로 유니크한 감성을 표현한다.

지난해 4월 설립한 세이프선데이는 유행지난 폐 원단이나, 자투리 천을 이용해 에코백 등 가방류를 제작‧판매하는 회사다. 사명(社名)에서 느껴지듯, 일상의 편안함을 강조한다. 김 실장은 “에코백이 주로 장바구니 역할을 하다 보니 주말에 많이 들고 다니는데, 주말이 주는 특유의 편안함과 여유를 제품에 녹이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해 6월, 예술의 전당(서울 양재동)에서 진행된 ‘2014 디자인아트페어’에서 첫 선을 보였는데, 특유의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 “환경을 생각하는 좋은 의도가 있죠. 하지만 그걸 먼저 내세우고 싶진 않았어요. 패션 아이템답게 디자인으로 어필하지 못하면 내일이 없다고 생각했죠.”

세이프선데이의 에코백 제품들. ‘10X10’, ‘1300K', '위즈위드', '하우올린' 등 온라인사이트와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주최하는 ‘고비즈코리아’ 공식홈페이지에서 만날 수 있다.

이유 있는 고집은 성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만 3곳의 기업과 포장‧홍보용 에코백 제작 계약을 맺었다. 개별 소비자들과는 주로 온라인에서 만난다. 현재 온라인 쇼핑몰 ‘10X10’, ‘1300K’, ‘위즈위드’, ‘하우올린’ 등에서 꾸준한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9000원대의 에코백도 있어요. 스파(SPA‧대량생산으로 제조원가를 낮추고, 유통단계를 축소시켜 저렴한 가격에 빠른 상품 회전을 하는 패션 상품)브랜드와 비슷한 수준이죠.” 탁월한 디자인과 함께 세이프선데이의 강점으로 꼽히는 것이 가격 경쟁력이다. 원 자재 수급이 일정치 않고,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업사이클링 브랜드의 특성상, 높은 소비자가는 넘기 힘든 장벽. 세이프선데이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난 2012년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한 김 실장은 어머니가 운영하던 (주)한얼환경산업에 들어가 일을 도왔다. 서울‧인천‧김포 및 경기도 지역의 폐 원단이나 의류‧커튼 등 버려진 섬유소재를 수집해 몽골,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에 수출하는 재활용품 처리기업이었다. “말이 폐 원단이지. 개중에는 유행이 지나 버려지는 새것들도 있었어요. 요즘은 워낙 회전이 빠르니까요. 그런데 몽골에 출장을 가보니, 너무 좋은 소재가 재활용품이란 이유만으로 하찮게 쓰이다가 버려지더라고요. 디자이너의 눈으로 보면 10배 이상 가치를 발할 수 있는 고급소재였죠.”

세이프선데이는 올해 '시피(CIPIE)'룩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는 개성(Character), 지성(Intelligence), 전문성(Professional)을 의미하는 단어들을 결합하여 만든 용어다.

세이프선데이의 밑천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그길로 (주)한얼환경산업의 벤처 브랜드 형태로 팀이 꾸려졌다. 모기업에 들어오는 방대한 폐 소재 중 ‘매의 눈’을 거쳐 재료가 선별되고, ‘무던’했던 폐 원단은 ‘모던’하게 재탄생한다. 재료수집 과정의 수고가 덜어지면서 자연스레 생산 원가가 줄어든다. 가격 경쟁력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살을 깎는 심정으로 마진(margin)을 최소화한다. ‘남는 게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요즘 소비자들은 가격 비교가 생활화 돼있어요. ‘비싸다’는 인상을 주면 소비자를 만날 수조차 없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비자가 만족해하는 가격 전략을 고수할 겁니다.” 2년차를 맞은 세이프선데이는 올해 에코백 일색의 제품 라인업에 ‘토트백’(tote bag‧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여성용 핸드백), ‘클러치백’(clutch bag‧끈이 없어 손에 쥘 수 있도록 디자인된 백의 총칭) 라인을 추가했다. 토탈 패션 브랜드로 나아가는 의미 있는 한걸음이다. 업사이클링 디자인 관련 저서(‘심플 라이프 에코백;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담은 나만의 디자인’, 2015.6)을 내고, 몽골울란바토르에 공정무역 기술전수 활동이나 ‘에코백만들기 원데이 클래스’나를 진행하는 등 문화 확산에도 힘쓰고 있다.

'2014 디자인아트페어'(예술의전당), '2014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코엑스), '2014 대한민국친환경대전'(환경부초청/코엑스) 등 다양한 페어에서 고객들과 만나고 있는 세이프선데이.

궁극적인 목표는 ‘세이프선데이’가 고객에게 더 친숙한 이름이 되는 것. “나중에 유명한 브랜드가 되어도, 업사이클링의 가치를 온전히 고수할 수 있을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김 실장의 단호한 답변이 묵직하게 돌아왔다. “당연하죠. 에코 패션은 대안을 넘어 대세로 갈 수 있습니다. 패스트(fast) 패션 시대에 원단은 갈수록 광범위하게 남겨질 거고, 이를 처리하는 기술은 갈수록 좋아져요. 최근 이 분야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그래서고요. 잠재력이 큽니다. 제가 몽골에서 처음 봤던 버려진 천 조각 처럼요.(웃음)”  

/사진: 세이프선데이 제공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