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두고 볼수록 정드는 가방, 시간의 흐름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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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두고 볼수록 정드는 가방, 시간의 흐름을 느껴보세요”
“오래두고 볼수록 정드는 가방, 시간의 흐름을 느껴보세요”
2015.11.16 10:17 by 황유영

치열한 세상이다. 부대끼며 살다 보면 한 번씩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 물음에 응답한 사람들의 스토리다. 누군가는 창업을 했고, 어떤 이는 공방을 열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갈 길은 멀다. 제대로 구조를 갖추지 못해 고군분투하기 일쑤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이들 모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는 점이다. ‘언더 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서울 성동구)’는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공간이다. 롯데면세점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과 함께 꾸려가는 사회공헌 창조공간으로,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혁신기업가‧예술가‧비영리기획자 등이 함께한다. 더퍼스트는 이들의 도전이 활짝 꽃피우는 그날을 기대하며 ‘변화를 만나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자연친화적 패션브랜드 오브디셋트(Aube17)

심플한 디자인의 가방이 하나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소재 하나, 디자인 하나도 허투루 한 것이 없다. 재료는 모두 최고급. 샤넬, 구찌, 프라다 등 명품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귀터만(Gutermann) 실을 사용해 견고함에도 신경을 썼다. 이제 막 대중과 만나기 시작한 브랜드로서는 부리기 쉽지 않은 사치.

오브디셋트(Aube17)의 정의준(33) 대표는 이를 두고 고객과의 신뢰이자 자신들의 자부심이라고 말한다. “가방을 제작하는 공장에서 왜 이렇게까지 고급 재료들을 사용하느냐고 되물어요. 물정 모르는 풋내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전 그냥 웃고 말죠. 아직 시작단계지만 이윤이 아니라 신뢰를 쌓아가고 싶어요.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고 싶거든요.”  

 디자이너들의 철학이 담긴 가방 하나

오브디셋트는 2014년 뉴욕의 젊은 디자이너 모임에서 시작된 패션브랜드다. 프랑스어로 새벽을 뜻하는 오브(aube)와 1과 자기 자신 외의 수로는 나눠지지 않는 17을 조합해 특별하면서도 견고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뜻을 담았다. 중앙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정의준 대표가 2010년 뉴욕에서 CI, BI 관련 일을 하면서 디자이너들을 소개받았고 좋은 취지의 브랜드를 만들자는데 의기투합하면서 오브디셋트가 시작됐다.

천연 벌집 왁스로 코팅한 면 10수 3합 캔버스와 베지터블 가죽으로 만드는 왁스 캔버스 백(사진:오브디셋트 제공)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졸업하거나 현지에서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디자이너들이 제품 디자인에 몰두하면 정대표는 영업과 생산을 담당한다. 홈페이지 제작이나 로고 등도 정대표의 머리에서 나왔다. 법인 설립은 2014년 이지만 실질적 시작은 올 초다. 오브디셋트는 만 한 살이 채 되지 않은 신생아인 셈이다.

현재 오브디셋트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왁스 캔버스 백 하나다. 이 정직한 디자인의 가방 하나에 오브디셋트와 정의준 대표의 철학을 담았다.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고 싶어서 처음에는 업사이클링 가방을 생각했었는데 저희가 생각하는 디자인과는 방향성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친환경은 재활용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라 오래도록 쓸 수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친환경이면서 친인간적인 그런 가방을 만들기 위해 가장 좋은 소재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브디셋트의 왁스 캔버스 백은 왁스 코팅 된 면 10수 3합 캔버스와 베지터블 가죽으로 만든다. 코팅에는 천연 벌집 왁스를 사용했고, 내녹성이 높은 황동 버튼과 스터드, 명품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귀터만 실 등 최고급 소재들만 사용했다. 가방 안쪽 포켓에는 인위적인 지퍼를 다는 대신 여밈 부분을 이중으로 만드는 플라이프런트 방식을 사용해 소비자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생각보다 가방은 피부에 자주 닿는 제품이에요. 그래서 좋은 소재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마 들어보신 분들은 가방의 가치를 알거라고 생각해요.”  

 발품 팔아 만든 내 가방에 대한 자부심

오브디셋트의 작업 과정은 뉴욕의 디자이너들이 제품을 디자인 해 작업 지시서를 보내면 서울에 있는 정의준 대표가 제품을 만든다. 지금은 자리를 잡았지만 처음에는 오롯이 정대표의 발품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소재 하나하나 꼼꼼히 챙기고 새벽이면 디자이너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캔버스 백을 완성시켰다 .

인위적인 지퍼를 대신 여밈 부분을 이중으로 만드는 플라이프런트 방식을 사용한 가방 내부. 편의성을 높였다.

패션계 문외한이었던 정대표 입에선 관련 지식이 술술 나온다. “산업디자인을 공부했지만 패션계에는 일해본적이 없다보니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집에 관련 책을 쌓아두고 밤새 공부했어요. 현장에서 일을 하다보니 어느 새 전문가가 된 것 같아요.”

지금도 현실은 녹록치 않다. IT 회사에서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을 종자돈 삼아 설립한 오브디셋트는 유통이나 마케팅 전문가 없이 혼자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기 때문에 힘에 부치는 부분이 많다. 좋은 제품만 만들면 된다는 생각과 달리 제품의 우수성을 알려야 했고, 판로 개척도 정대표에게 주어진 숙제다. “간이 사업체로 시작했기 때문에 메이저급 온라인 쇼핑몰 입점 문의를 드려도 연락이 오질 않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반응을 볼 때마다 힘이 난다. 아빠의 장난기를 꼭 닮은 2살 난 아들과 12월 태어날 둘째를 생각하면 지쳐있을 틈도 없다고.

오브디셋트의 왁스 캔버스 백(사진:오브디셋트 제공)

“가방 좋다는 반응을 들을 때 정말 행복해요. 저희 제품은 반품이 한 번도 없었어요. 딱 한 번 배송이 잘못 가서 가방 두개를 보내드린 적이 있을 뿐이죠. 그만큼 만족도가 높은 제품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종합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한 초석

1년 간 내실을 다져온 오브디셋트는 차근차근 다음 단계를 준비중이다. 처음부터 가방 뿐 아니라 패션 잡화로 성장을 도모했던 만큼 두 번째 스텝은 신발이다. 베지터블 가죽을 이용한 신발을 만들기 위해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에서 근무했던 디자이너와 신발 장인을 영입해 2016년 S/S 시즌을 목표로 본격적인 생산 공정에 돌입했다.

영역을 확대하고 성장해 나가면서 오브디셋트의 철학도 퍼져나가길 바라고 있다. 정의준 대표가 말하는 오브디셋트의 키워드는 심플, 사람, 환경이다. 사람에게 편하면서도 환경을 해치지 않는 심플한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어 함께 나누고 싶다고.

“어떤 물건이건 오래 쓰면 정이 들어요. 그런데 정이 들기도 전에 버려지는 패션 소품들이 많아요. 정말 오래 쓸 수 있고, 쓰면 쓸수록 중후한 맛이 드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오래 두고 볼수록 정이 드는 가방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느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