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어둠 속에 있을 때 더 선명하다. 밤을 배경(Back)으로 직접 찍은 사진과 이를 통해 얻은 영감, 여기에 스토리를 덧입힌 포토에세이 ‘흑빽사진’을 통해, 어둠 속의 가치를 되새겨본다.
할아버지가 켜 놓은 라디오 소리가 새벽잠을 깨웠다.
화장실로 향하던 길, 사랑방 앞 아궁이가 번쩍였다.
해가 뜨기 전, 아궁이 속 잔광이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낸다.
점점 사그라지는 불빛과 수북이 쌓인 재들… 간밤의 치열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훨씬 빛났으리라, 훨씬 더 찬란했으리라.
프로야구 시즌이 끝나고 선수들의 이적 소식과 함께 간간이 은퇴 소식도 들린다.
그중 눈에 띄는 소식이 바로 KT위즈의 장성호 선수의 은퇴다.
‘방망이를 거꾸로 들어도 3할을 친다’던 레전드의 퇴장이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광주 무등야구장과 용봉천 사이에 위치했었다.
야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야구장 앰프 소리와 관중들의 함성이 학교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당시 타자들이 타석에 들어갈 땐 각자의 등장 음악이 있었는데, 브리티니스피어스의 ‘럭키(Lucky)’가 들릴 때면,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바로 장성호 선수의 등장곡이었기 때문이다.
‘장성호’ 그가 누구던가.
왼손으로 야구하는 선수라면 누구나 닮고 싶어 했던 롤 모델. 1996년 해태타이거즈(현 기아타이거즈)에 입단, 1998년부터 2006년까지 9년 연속 타율 3할, 두 자리 수 홈런을 기록했고, 2002년에는 ‘3할4푼3리‘의 타율로 타격왕에 올랐다.
타이거즈에서 은퇴할 줄 알았던(혹은 바랐던) 장성호 선수는 여러 곡절 끝에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를 거쳐 KT 위즈에서 야구인생 20년을 정리했다.
그의 야구가 어느 순간에 가장 불탔을지는 본인만 알 것이다.
아직 더 타오를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이미 모두 불태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를 쉽게 잊진 못할 것 같다. 그의 별칭 ‘스나이퍼’와 함께 말이다.
아궁이 속 사그라지는 불빛은 해 뜨기 전에 가장 밝다.
쌓인 재는 한밤중에 치열했던 흔적이다.
장성호 선수에겐 그가 남긴 수많은 기록들이 그렇다.
나의 어린 시절을 열광시켰던 그의 플레이는 아직 사랑방에 남아 있는 훈기처럼 나를 뜨겁게 한다.
해가 뜨고 새로운 아침이 찾아오듯 장성호 선수의 새로운 삶을 응원한다.
아듀! 스나이퍼
※ 장성호 선수 통산 성적
타수: 7084(역대 2위), 안타: 2100(역대 2위), 루타: 3193(역대 3위), 득점: 1108(역대 5위), 타점: 1043타점(역대 8위)
/사진: KT 위즈 구단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