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셋째 주
술 잔 너머 친구 A가 토로한다.
“12월은 죽음의 달이야…”
사연인즉 이렇다.
애인의 생일과 기념일, 크리스마스 등이 거의 닷새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단다.
경제적, 정서적, 시간적 데미지를 래퍼처럼 줄줄 읊어댄다.
“얼마 전엔 허그데이 얘길 하더라고. 허그가 아니라 헉이다 헉!”
‘허그데이’라니? 솔직히 처음 들어봤다. 12월 14일. 안아주는 날이란다.
밸런타인데이의 스핀오프 중 하나일 테지. 로즈데이(5월 14일), 키스데이(6월 14일)처럼.
“누가 만든 지도 모르는 ‘14일’에 틀에 갇혀, 애정 표현을 종용당하는 현실이 웃기지 않냐!”
A의 목소리가 점점 처절해진다.
맞다. 웃긴다. 근데 마냥 웃을 일만은 아니다.
사람의 심리를 철저히 파고든 계산. 오히려 무섭다.
심리학에선 ‘인간은 정해진 규칙(틀) 안에서 움직일 때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미 정해진 것들을 거스를 때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적어도 연인사이에선 ‘14일’이 하나의 프레임이다. 챙겨야 안심되는. 거르면 찝찝한.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아이디/비번’ 바꾸라는 경고가 내키지 않았던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스마트폰 앱이 빠르게 확산된 것도 틀과 안정감이라는 본능을 활용한 덕분이라더라.
모르긴 몰라도, 허그데이 역시 거리엔 선물 꾸러미가 넘실거릴 터.
그리고 그 중엔 A도 있겠지.
심리학에 반기들 생각은 없다.
각종 ‘데이’를 철석같이 지키는 연인들도 존중한다.(A야 힘내라.)
하지만 본능에 두 손 드는 건 ‘글쎄’다.
노자는 ‘무위자연설’을 통해 “천하를 차지하려면 틀에서 빠져나오라”고 일갈했다.
기존의 틀이나 방식에 갇히지 않은 상태가 ‘무위’인데, 이 때 비로소 변화와 혁신을 꿈꿀 수 있단 얘기다. '불안정할 때 더 큰 에너지가 나온다’는 물리학 법칙도 같은 맥락이다. ‘법을 잘 지키는 사람’보다 위대한 건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다.
비(非)틀 거리면, 1년 365일이 ‘허그데이’다.
/글: 최태욱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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