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공연, 공연예술인,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드는 극장과 관객… 지금 '살아있는' 예술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
올해 <이십할 페스티벌>이 막을 내렸다. 어느덧 두 해 째를 맞은 공연이다. 작년 겨울 입김을 후후 불어가며 마로니에 공원 곳곳에서 공연하던 걸 생각하면 올핸 비교적 따뜻한 편. 하지만 계절은 어느덧 초겨울을 향해 가고 있는 저녁이었다.
이 스산한 계절, 20대 연극인들이 마로니에 공원 야외무대를 누비는 이유는 뭘까?
이들의 얘기가 궁금했다. 지난 12월 7일, 양정현(28‧연출‧극단 청년단), 최하은(26‧극단걸판‧창작정거장 ‘이상’ 대표), 한상웅(28‧프로젝트그룹 SOMA) 등 참여자 세 명과 자리를 함께 한 이유다. 이들 셋은 서로를 “지금까지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할 사람들”이라고 했다.
양정현 연출(이하 양) = 작년에 1회 페스티벌 대표였던 전윤환(앤드씨어터) 형이 제 공연을 보러 왔었어요. 같이 소주를 한 잔 먹다가 기획 의도를 듣게 됐죠. 한 마디로 ‘같이 뭐라도 좀 해보자’는 거였어요. 같이 할 생각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재밌겠다고 했죠. 해보자고요.
한상웅(이하 한) = 저도 마찬가지에요. 전윤환 연출이랑 밥을 먹다가 제안 받았죠. 또래 친구들이랑 야외에서 작업을 하는데 우리끼리 재미있게 해보자고요. 그래서 제가 흔쾌히……
최하은 대표(이하 최) = 저는 (양)정현오빠 연락을 받았어요. 처음엔 작가로 왔다가 연출도 해보고 많이 배웠죠. 사실 졸업한 뒤 정말 황야에 버려진 기분이었거든요. 지도도 없이요. 그때 여기 와 보니까 나만 황야에 버려진 게 아니더라고요. ‘버려진 애들이 많구나…’란 생각이 들자 ‘내 길을 내 식대로 가보자’는 자신감이 생겼죠.
왜 이십대만 모였던 것일까. 사실 나는 작년에 <이십할 페스티벌>이 진행되는 걸 보고 꽤 큰 감동을 받았다. 냉큼 좀 끼워달라고 했는데 ‘뺀찌’ 맞았다. 이십대만 된다는 거였다. “마음이 이십대면 되는 거 아니냐”고 따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사십할 페스티벌이나 준비하라”는 거였다. 왜 하필 이십대만 모인 걸까?
양 = 가장 출발하기 어려운 게 20대란 생각이 들었어요. 전윤환 연출의 경우 20대부터 자기 극단을 운영했잖아요. 어려움이 많았겠죠. 그 한계지점을 돌파하기 위해서 20대들끼리 뭉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 그러니까 2014년 여름만 해도 동갑내기 친구들을 연극 현장에서 만나기가 어려웠어요. 저보다 나이가 아주 많거나 아예 어리거나 그랬죠. 그런 데서 외로움이 오거든요. 그런데 작년에 (공연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 150명이 넘어요. 18개 팀이 만들어졌다가 14개 팀이 공연까지 했으니 거의 100여명이 참여 했어요. 거기에서 상웅 씨와 하은 씨도 만난 거고요.
한 = 사실 배우들은 학교나 (입시)학원 같은 데서 만나요. 그런데 연출들은 우연한 기회에 작업을 하다가 건너건너 알아가는 게 고작이죠. 그러다보니 만나기 어렵죠. 누가 누군지는 아는데, 선뜻 밥 한 끼나 술 한 잔이 어려운거예요.
<이십할 페스티벌>이 만남의 공간을 열어준 거라고 생각해요. 작품을 만들고 올리는 것 자체가 만나고 소통하는 과정이었어요. 내 작품을 올리면서도 좋은 만남이 생겼고, 주변에 다른 친구들 것을 보면서 서로를 알게 되죠. 다른 친구 작업을 보면서 ‘나 혼자만 달리는 게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기댈 수 있는 동료가 생긴 건 덤이고요.
최 =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알게 된 게 가장 크죠. 그것도 수십 명을 동시에요. 전 60명 정도 만난 것 같아요.
한 = 저는 100명이랑 다 얘길 해봤을 거예요. 공연 보고 술 먹으면서. 이 페스티벌이 정말 좋은 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거죠. 그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기도 해요. 특히 정현 씨가 했던 ‘근육을 키운다’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함께 작업을 해나가면서 근육을 키운다는 거죠.
양 = 제가 중학교 때까지 농구를 했던 사람이라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봐요. 농구선수는 자꾸 슛을 날려봐야 하잖아요. 우리도 그래야하거든요. 근데 그럴 환경이 없다는 거예요. 특히 연출은 더 그렇죠. 작가도 내가 쓴 글을 배우가 연기하는 걸 봐야 늘어요. 시행착오를 겪어볼 환경이 너무 없는 거죠.
최 = 누가 그러더라고요. 지원금을 받으려면 경력이 있어야 되는데 경력을 만들려면 지원금을 받아야 된다고. 그래서 그런 지원 제도라는 체제 바깥에서 우리 스스로 뭔가 훈련을 하고 경험을 쌓자는 얘기를 들었을 때 생각의 전환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양 = 나이도 어린 게 뭘 하겠니?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게 좀 많았어요. 자질이나 생각을 보기 보다는 ‘나이도 어린 게 어디서 그런 얘길 하고 있어?’라는 분위기. 사실 하고 싶은 얘기도 마음대로 못 하죠. 연극계만 그런 게 아니라 대한민국 전반이 그렇지 않나요?
사실 작년 <이십할 페스티벌>이 내게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은 20대들이 자발적으로 열정적으로 뭔가 강렬하게 표출하는 느낌 덕분이었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보러 갔더니 죽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나오는 작품이 있더라. 한겨울 밤에 그 추운 마로니에 공원에서. 오죽 힘들면 그럴까 싶은 마음 한 편엔, 조금 다른 에너지를 만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은 무슨 작품들을 했을까, 그리고 아쉬웠던 것은 무엇이 있었을까.
최 = 아쉬운 게 동시에 장점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작년에는 8월에 연락을 받아서 9월에 오프라인 만남을 하고 11월에 팀이 서로 매칭 됐어요. 공연은 12월이었죠.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추진력이 필요했어요. “장비는? 공간은?” 외치면서 뜨겁게 뛰어다닐 수 있었던 이유예요. 한정된 시간 안에 멋있는 공연을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올해는 조금 많이 온건해져 보였을 수도 있어요.
한 = 전 작년에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러 가는 용사들 얘기를 했어요. 좀 게임스럽죠? 하하. ‘선택 받은 사람은 따로 없다’란 내용이었죠.
당시 날씨가 굉장히 추웠어요. 음악을 틀어야 하는데 컴퓨터가 얼고, 핸드폰도 안 켜지죠. ‘지금 기온이 너무 낮습니다’라고 뜨면서 배터리가 순식간에 나가버려요. 그런데도 마음은 다들 뜨겁죠.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영하 십 몇도 한 겨울, 그것도 야외에서요. 입이 얼어서 대사하기도 어려운데 다들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요.
올해는 우렁 각시가 시집가는 얘기를 했어요. 사람은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얘기에요. 자유…… 내가 선택하고 노력하면 미래의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연출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의 질문은 자연스럽게 그런 선택과 자유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부조리한 사회구조로 넘어갔다. 속칭 ‘헬조선’말이다. 구조에 대한 질문이 작품과 삶 속에 어떻게 녹아들어가 있을까 궁금했다.
최 =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어요. 그러다보니 어떤 작업이든 구조적 모순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아요. 구조가 정의롭지 못한데 개인이 어떻게 정의로울 수 있겠어요. 그렇다고 이십할 페스티벌 자체만으로 구조적 모순에 대항할 순 없겠죠. 그러기엔 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요. 대학로의 압축판 같은 거죠.
내가 궁금했던 건 <이십할 페스티벌>의 주제나 내용이 아니었다. 다만 그 안에서 어떠한 절차들이 지켜지고 있는가, 어떻게 만나서 합의를 이루고 자신들이 내세운 가치와 원칙들을 진행해 나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한 = 일을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작년과 올해가 많이 달랐어요. 작년에는 급작스럽게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었다면 올해는 체계를 가지고 진행을 했다는 점에서 완전히 달랐던 것 같아요. 올해는 집행부가 전체의 밑바닥을 받치면서 가는 상황이었거든요. 한편으로는 <이십할 페스티벌>에 이런 집행부라는 체계가 있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최 = 우리가 만든 것은 상하관계가 있는 구조라기보다는 일을 하기위한 시스템이라고 봐야할 것 같아요.
양 = 제일 필요한 게 결국 돈과 시간이더라고요. 사람의 열정이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일을 만들어내는 건 돈과 시간이죠. 근데 돈이 없으면 시간이 없어요. 경력을 만들려면 지원금이 필요하고 지원금을 받으려면 경력이 필요하다는 논리와 비슷해요.
최 = 전 1회 때는 단순히 참가만 하다가 올해는 집행부를 하면서 잡일을 많이 했는데 작년에 참가자로 있으면서 불편했던 걸 다 해주고 싶었어요. 조금 덜 춥게 해주고 싶었고 연습실도 해주고 싶었고요. 근데 부작용도 있어요. 작년에는 제가 참가자로서 직접 챙기지 않으면 공연을 못 올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올해는 집행부가 편의를 봐주는 행동들을 하다보니까 ‘니들이 지휘하냐?’는 오해도 생겼던 것 같아요. 내년 3회 때부터는 이 부분에 대한 토론이 치열할 것 같습니다.
자발적인 열정과 참여로 시작된 <이십할 페스티벌>이 좀 더 나은 페스티벌 운영을 위해서 선택한 집행부 체제가 내년 제3회 이십할 페스티벌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을 찾아갈지 궁금해진다.
다음 이야기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연극 <하나코>. 연극인 • 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본 <하나코>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연극 <하나코> 2015년 12월 24일 ~ 2016년 1월 10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