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다섯째 주
갓 지은 하얀 쌀밥을 휘휘 젓고 푹푹 퍼내 넉넉한 대접에 옮긴다.
정상 부근 백록담 같은 구멍엔 날계란 하나를 넣는다.
간장, 들기름, 깨소금을 적당히 치고 슥삭 비비면 완성.
어릴 적 자주 먹었던 간장계란밥이다.
장보기 귀찮았던 어머닌 편했고, 난 만족스럽게 한 끼를 때웠다.
나름 겨울철 윈-윈 밥상이었던 셈.
관건은 간장이다. 넘치면 짜고 적으면 맹맹하다.
숟가락에 펼치는 간장에 늘 촉각을 곤두세웠던 이유다.
양 조절에 실패해 구시렁거릴 때면 어머니께선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감사하며 먹어. 옛날엔 계란 넣는 건 꿈도 못 꿨어.”
그래. 그랬지. 스크루지가 단추라면, 자린고비는 간장이었지.
가장 기초적인 양념이자 대표적인 서민식품 아닌가.
이미 고려시대부터 굶주린 백성을 위한 구휼식품 중 하나였다고 전해질 정도.
간장에 의지해 끼니를 해결한 사람들이 비단 그때만 있었을까.
흔하디흔한 게 간장이라지만, 만들기로 치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뜩이나 하세월인데, 과정 과정엔 종교의식을 방불케 하는 경건함이 배어있단다.
길일 중 길일을 간택하고, 재료 선정이나 장독 위치에도 세세한 고민이 깃든다.
심지어 담그는 사람은 사흘간 부부관계나 외출을 금했고, 동물에게조차 흉한 말을 삼가게 했다 하니 그야말로 지극정성이다.
지난 한 주, ‘몽고식품’ (명예)회장의 상습 폭행‧욕설 파문으로 시끄러웠다.
장본인이 공식사과에 사퇴까지 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속수무책.
네티즌들은 마치 독립운동하듯 불매운동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사실 괜찮은 평가를 받던 회사 아니었나.
110년 간 뚝심 있게 ‘장류’만 고집하던 향토기업. 국내 최초 페트병 간장 시판(1979), 파리 국제식품전 간장 부문 수상(1990), 유럽 뉴밀레니엄 어워드 수상(2002) 등 국내외에서 인정받은 기술력. 간장 한 병에 100원씩 적립해 결식아동을 후원했던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까지…
하지만 오랜 세월 숙성‧발효해왔던 독에 불신(不信)물이 섞여버렸다.
장맛이 변하는 건 집안에 불길한 일이 생길 징조.
장맛은 정성과 세월이 빚어낸다는데, 정성의 지분이 조금 더 큰가 보다.
100년 넘는 세월을 무색케 한 건 인간에 대한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일 테니.
이 회사 홈페이지는 여전히 접속불가다.
/글: 최태욱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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