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과학의 ‘접점’을 탐구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아트 인 메타버스’展 레오 볼드윈 라멀트 작가 인터뷰
예술과 과학의 ‘접점’을 탐구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2023.01.12 21:56 by 최태욱

[Artist with ARTSCLOUD]는 아트 특화 메타버스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국제 미디어 아트페어 ‘아트 인 메타버스’展에 참여했던 해외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무의식이라는 미지의 영역과 완벽히 통제되는 컴퓨터의 영역이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그것이 바로 제 예술의 본질적인 물음입니다. 예술의 담론과 과학적인 아이디어의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죠. 순수 예술 분야에서 컴퓨터의 독자적인 역할을 찾고, 그것이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을 탐험하고 있는 셈이에요.”

레오 볼드윈 라멀트(37, Leo Baldwin Ramult) 작가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아티스트다. 학창시절부터 예술의 즉흥적이고 자동화적인 요소에 매료됐던 작가의 관심은 점차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이내 ‘제너러티브 아트’(generative art‧컴퓨터의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무작위로 생성되는 디지털 아트)까지 도달했다. 예술가의 자율성과 통제 가능한 시스템의 만남이 빚어내는 불확실성은 작가의 예술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지난해 초, 국내에서 진행됐던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서도 인간과 기계의 절묘한 콜라보를 보여줬던 레오 작가에게, 그가 추구하는 대안적 예술의 진면목을 들어봤다.

 

레오 볼드윈 라멀트(사진) 작가
레오 볼드윈 라멀트(사진) 작가

-작업 내용이 다소 특이한데, 작가로서 자기소개를 해 달라. 
“영국 런던 출신의 예술가로 현재는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작업하는 형식은 소위 ‘제너러티브 아트’라고 부르는 분야다. ‘Generative(발생하는)’란 용어에서 알 수 있듯, 컴퓨터의 알고리즘이 자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예술을 의미한다. 해당 영역의 예술가는 컴퓨터 시스템에게 일종의 ‘지휘권’을 넘겨준다. 어느 정도의 기능적 자율성을 가진 컴퓨터 알고리즘이 표현의 주도권을 갖는다는 의미다. 자연히 사람의 편견과 선입견이 배제되면서 뜻밖의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다. 크게 보면 예술 분야에서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를 대안적으로 탐구하는 활동이다.”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개념을 소개해준다면?
“초기부터 해왔던 활동을 소개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영국의 예술학교에 다닐 당시 나는 ‘즉흥극’(improvisational theatre‧사전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연출되는 연극)에 빠졌었다.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변화무쌍함이 매력이었다. 이후에도 비슷한 연구가 이어졌다. 프랑스에서는 단편 영화 ‘Administration Quotidienne’를 제작했는데, 이는 이해나 맥락을 무시하고 특정 공간에서의 즉흥적인 장면들을 모은 후 의미를 부여한 작업이었다. 실처럼 흩어져있던 이야기들이 한 공간에 모이며 하나의 실타래가 완성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이는 뤼미에르 대학교 리옹2(Lumiere University Lyon2)에서 발표한 학위 논문 프로젝트의 주제이기도 했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에 이르러, 초기 작품의 즉흥적이고 자동화적인 요소를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대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바로 제너러티브 아트의 형태다.”

 

레오 작가의 초기 실험작 ‘Automatic Writing’_2007_Ballpoint pens on paper_176x250mm
레오 작가의 초기 실험작 ‘Automatic Writing’_2007_Ballpoint pens on paper_176x250mm

-이러한 작업의 철학적 토대는 무엇인가?
“내가 지금까지 실습했던 프로젝트는 모두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무의식 이론과 관계가 깊은데, 이는 인간의 무의식이 언어적인 구조를 갖고 있으며, 정신분석의 경험을 통해 무의식 속에서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이를 토대로 줄곧 정신분석이 컴퓨터를 통한, 보다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연구를 촉구할 가능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고민해왔다. 지금은 그 고민이 나의 주요 도구이자 거점인 컴퓨터로 전환되어 박사과정(오클랜드 대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기반이 되고 있다.”

-제너러티브 아트의 가장 매력은 무엇일까?
“글쓰기부터 즉흥적인 연극, 자동제작 영화 등의 연구를 거듭하면서 깨달은 점은 나는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관심이 더 높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면에서 제너러티브 아트는 나의 관심사와 잘 맞는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중점을 둔 예술이기 때문이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해당 영역의 자율적인 시스템에서는 의도성이 옅어지고 예측이 어려워진다. 창작자의 무의식을 발현할 수 있는 예술 실습인 셈이다.” 

 

레오 작가의 ‘Administration Quotidienne’_2010_Digital video_21min30’
레오 작가의 ‘Administration Quotidienne’_2010_Digital video_21min30’

-아츠클라우드의 ‘아트 인 메타버스’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앞서 언급했듯, 내 작업의 무게중심은 이제 완전히 소프트웨어 프로세스로 옮겨진 상태다. 예술과 과학의 접점을 찾는다는 점에서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회가 흥미로웠고, 내가 가진 아이디어를 가지고 다른 예술가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또한 현대 디지털 기술의 다양한 가능성도 확인해보고 싶었다.”

-‘아트 인 메타버스’에서 선보였던 작품을 소개한다면. 
“내가 제안한 작품은 ‘The Hole In the Mirror Machine’이라는 제목의 짧은 영상이다. 이 작품은 내가 자는 동안 스마트폰에 찍힌 사진으로 구현된 자동 초상화로 시작된다. 이를 특정 알고리즘을 통해 3D그래픽으로 구성했고, AI 텍스트 생성기를 통해 내가 연구하던 정신 분석에 대한 내용을 시뮬레이션하도록 했다. 작품을 통해 의도하는 바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내 자신의 인격을 자동화하여 움직이는 캐릭터를 직접 마주하는 것이다. 나의 디지털 아바타는 과연 내가 아는 것만을 말할까? 우리의 무의식은 언제나 우리가 아는 것 이상의 것을 말한다. 마치 말실수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트 인 메타버스’ 출품작 ‘The Hole In the Mirror Machine’(영상 캡처)
‘아트 인 메타버스’ 출품작 ‘The Hole In the Mirror Machine’(영상 캡처)

-독특한 예술관이 인상적이다. 앞으로 어떤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나. 
“나는 이야기를 완성하는 스타일의 아티스트가 아니다. 내 실험에는 언제나 여백이 가득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 이야기가 채워질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게 내 일이고, 나의 예술이다. 앞으로도 제너러티브 아트의 새로운 영감을 만들고, 해당 영역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또한 순수 예술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활용에 대한 영감을 주고, 지속적으로 이를 장려하는 작가로 활동하고 싶다.”

 

/사진: 레오 볼드윈 라멀트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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