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라피로 소통의 벽 허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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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피로 소통의 벽 허물어요”
“캘리그라피로 소통의 벽 허물어요”
2016.01.07 15:42 by 조철희

치열한 세상이다. 부대끼며 살다 보면 한 번씩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 물음에 응답한 사람들의 스토리다. 누군가는 창업을 했고, 어떤 이는 공방을 열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갈 길은 멀다. 제대로 구조를 갖추지 못해 고군분투하기 일쑤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이들 모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는 점이다. ‘언더 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는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공간이다. 롯데면세점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성동구청과 함께 꾸려가는 사회공헌 창조공간으로,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혁신기업가‧예술가‧비영리기획자 등이 함께한다. 더퍼스트는 이들의 도전이 활짝 꽃피우는 그날을 기대하며 ‘변화를 만나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별, 실망, 배신, 무력감, 슬럼프… 누구나 저마다의 고민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죠. ‘한 줄의 글로 이런 마음들을 어루만질 순 없을까?’ 이런 물음에서 출발한 게 ‘한줄약국’이에요”

황태연(28) 라잇온어스 대표의 말이다. ‘라잇온어스(Lightonus)’는 소외된 사람들을 비추는 빛이 되고 싶은 청년들의 모임. 숭실대학교 동아리로 시작해 2014년 8월 소셜벤처까지 이어졌다. 이들의 첫 프로젝트가 바로 ‘한줄약국’이다.

작가 작품 01

시작은 SNS 상에서 아픈 사연을 듣고 위로의 말을 처방해주는 서비스였는데, 본격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감정과 정성을 담는 ‘캘리그라피’(Calligraphy·손으로 그린 그림문자)로 눈을 돌리게 됐다고 한다.

서비스 첫해엔 7명의 캘리그라피 작가와 함께 했다. 온·오프라인에서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얻은 결과. 전문가의 손길은 한줄약국의 활동도 풍성하게 이끌었다.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서울 은평구) 발달장애인 학생들을 대상에서 진행됐던 ‘힐링 캘리그라피 교실’이 대표적이다. 라잇온어스가 문예진, 임재승 등 전문 작가들과 함께 캘리그라피 수업을 직접 진행한 것.

선생님(작가)과 학생이 함께 만든 작품 (사진: 라잇온어스 제공)

“예술이라고 하면,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들에게도 생소하고 어려운 측면이 있죠. 하지만 캘리그라피는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문자를 바탕으로 하다 보니 모두가 다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 콘텐츠였어요.”(황태연 대표)

그의 말대로 캘리그라피는 발달장애인 학생들이 자신들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최적의 도구였다. 평소 말로 표현하지 않던 단어도 종이 위에서는 쓱쓱 써졌고, 때때로 나오는 틀린 맞춤법은 오히려 예술적인 맛을 더했다.

이들의 만남은 지난해 1월 전시로까지 이어졌다. ‘한줄약국 처방전(展)’이 그것. 작가들과 발달장애인 학생 11명의 작품 50점이 한 데 어우러져 시민과 발달장애인 간의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특히 출품한 학생들이 직접 ‘도슨트(docent·작품해설사)’로 나서며 행사의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황 대표는 캘리그라피 수업과 전시가 만든 학생들의 변화를 강조한다.

전시 01

지난해 '한줄약국 처방展'에서의 모습들 (사진: 라잇온어스 제공)

“표현력이 몰라보게 늘었고, 소통하는 방법도 부드러워졌어요. 자신감을 갖고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서기 시작한 친구도 있었죠. 지역복지관 행사에서 사회자를 자처해 무대 위에 올랐을 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한줄약국은 ‘찾아가는 프로젝트’도 전개했다. 플리마켓 등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진행한 ‘찾아가는 마음검진’이 그것. 친구·가족·자신 등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한 줄 문구를 캘리그라피 작가가 직접 써서 약 봉투에 담아주는 콘셉트. 행사 성격에 따라 책갈피, 엽서, 텀블러 등 다양한 매체도 활용했다.

'찾아가는 마음검진' 현장 모습(사진: 라잇온어스 제공)

이런 정착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봄부터 활동을 개시한 한줄약국 2기는 참여 작가만 3배 가까이 늘어나는 등 규모 면에서 큰 발전을 이뤄냈다. 캘리그라피 교실에 참여한 학생들이 직접 ‘찾아가는 마음검진’ 서비스에 나서 시민들과 소통의 기회도 쌓았다.

한편, 라잇온어스는 캘리그라피 작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리튼바이(Written by)’라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이는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온라인 포트폴리오페이지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웹서비스로, 지난 11월 베타서비스를 오픈했다. 정식 서비스는 올해 2월 경 시작될 예정. 황 대표는 “많은 예술가들이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만큼, 자신들의 작품 활동을 원활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고 개발 취지를 설명했다.

라잇온어스는 올해 초 선보일 신 개념 공익 공간 ‘언더 스탠드 에비뉴’(서울 성동구)의 오픈스탠드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라이브 캘리그라피 등 체험프로그램을 비롯해 한줄약국의 두 번째 전시도 이곳을 통해 열릴 예정. 황태연 대표는 “그동안 전시나 행사에 필요한 공간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많이 겪었었다”면서 “오픈스탠드에 합류하면서 이러한 고민도 덜고, 더욱 많은 시민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밝혔다.

전시 03

필자소개
조철희

늘 가장 첫번째(The First) 전하는 이가 된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