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현실 사이 그 어디쯤에서 그의 올리브 나무가 자란다.
낭만과 현실 사이 그 어디쯤에서 그의 올리브 나무가 자란다.
2023.05.06 15:26 by 최태욱

벌써 2023년도 한 분기가 훌쩍 지났네요. 올해 유난히 야심찬 계획들을 잔뜩 세웠던 터라,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해요. “우물쭈물하다가 이리 될 줄 알았다”는 버나드쇼의 묘비명이 부쩍 생각나는 요즘이에요.

사실 댈 수 있는 핑계는 넘쳐나요. 늘 바쁜 일상에 매였고, 여기저기 신경 쓸 것도 많았죠. 우린 그것들을 통칭해 ‘현실’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연말연초에 장황하게 그려놓았던 새해계획들은 어김없이 현실에 벽에 가로막혀 유야무야되기 일쑤죠. 우리네 삶이 극적으로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할 거예요.

그런 면에서 오늘 소개할 이정석 대표는 꽤나 자극을 주는 인물이에요.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낭만을 추구하는 실속파죠. 아주 오랫동안 그의 행보를 지켜보며 ‘참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분야와 업종을 180도 바꾸는 파격적인 도전을 거듭했지만, 그 과정에 결코 무리가 없었죠. 모든 것이 그저 물 흐르는 듯 하달까요? 제주‧올리브‧농부 같은 생경한 키워드도 그와 붙으면 그저 자연스러워져요.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이정석(사진) 제이오에스 대표
이정석(사진) 제이오에스 대표

chap. 1  “안 선생님… 농부가 하고 싶어요.”

“중학교 때부터 장래희망 란에 ‘농부’라고 적었어요. 일종의 ‘로망’ 같은 거죠. 실제로 초중고 내내 교실에 있는 꽃이나 나무, 식물들은 모두 제가 관리했어요. 애들이랑 선생님들이 되게 신기하게 보더라고요.(웃음)”(이정석 대표)

그의 회상에 대뜸 고개가 갸웃거려져요.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 농부가 꿈일 거란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거든요. 삶의 궤적만 봐도 그래요. 경제를 전공한 후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의 문을 열었고, 금융권 재단의 홍보 담당자로 커리어를 키웠죠. 다양한 창업활동을 펼친 적도 있지만 모두 농업과는 거리가 있었어요. 지난 해 이맘때쯤인가…이정석 대표가 제주도에서 올리브 농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꽤나 뜬금없다고 느꼈던 이유도 그래서였죠.

내막을 알고 보니 전혀 뜬금없는 게 아니었더라고요. 농업은 아주 오래된 이 대표의 비전이었고, 이를 위해 나름 건실하게 준비해왔던 거예요. 바쁜 직장생활 틈틈이 산이나 들로 발품도 많이 팔았대요. 씨 뿌리고 수확하는 경험을 직접 해보고 싶어서요. 알면 알수록 더 좋아졌고, 심지어 기회도 엿보였다죠. 그의 로망은 그렇게 현실로 영글고 있었던 거예요.

 

자신이 가꾸는 밭을 바라보는 이정석 대표
자신이 가꾸는 밭을 바라보는 이정석 대표

‘톰 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20년 후 너는 네가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 때문에 더 실망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죠. 실제로도 그런 것 같아요. 점점 술자리의 넋두리에서 후회, 그중에서도 과거에 대한 후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져요. “나도 한 때는 꿈이…”로 시작되는 푸념은 현실에 먹혀버린 낭만에 대한 조의와 같죠. 아마 대부분이 그럴 거예요.

이정석 대표는 왜 달랐을까요? 그의 농부 도전기를 통해 몇 가지 비결을 톺아볼 수 있어요. 첫 번째는 ‘아주 작은 경험’이에요.

그 역시 현실을 아주 외면했던 건 아니에요. 아이 둘의 아빠이기도 한 그가 맹목적으로 ‘꿈’만 쫓는 건 직무유기에 가깝죠. 낭만과 현실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어줬던 건 아주 작은 테스트들이었어요. 최소한의 자원을 들여 소소하게 실험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다음 실험을 이어가는 식이었죠.

“원래 되게 소심한 성격이에요. 한 번에 쏟아 붓는 투자 같은 건 성격에 안 맞았죠. 스스로 당위성과 자신감을 얻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씨 한번 뿌려보고, 나무 한번 심어보고 하는 식이죠. 제주도에 내려와서도 거의 1년 동안은 농사짓는 분들 견학만 하러 다녔어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먹고 사는 문제의 솔루션도 발견하게 됐죠.”(이정석 대표)

지난해 말 이정석 대표가 이끄는 농업법인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농촌융복합산업’ 예비 사업자 인증을 받았어요. 올리브 분야에서는 국내 최초의 사례래요. 이 인증의 화두는 ‘6차 산업’이에요. 농업(1차), 가공산업(2차), 서비스업(3차)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한다는 얘기죠.

생각해보면, 이런 접근 방식이 이정석 대표 특유의 스타일인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을 펼치면서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힘이죠. 씨뿌리기부터 수확까지의 호흡이 유독 긴 올리브 농사의 특징을 감안해, 그 사이사이를 올리브 가공 상품이나 관광 요소들로 채워주는 솔루션을 구축한 거잖아요. 이중삼중의 계획들이 마련되어 있으니, 밖에서 볼 때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이 대표가 추구하는 ‘아주 작은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고 이내 빛을 발하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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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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