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만들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장성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만들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장성은
2016.01.15 10:06 by 구승준

크리에이티브는 어디에서 폭발하고, 어떻게 숙성 또는 변형되며, 어떻게 완성되는가?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가장 빤한 이미지는 대뇌 ‘생각의 전구’에 불이 번쩍 하고 들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크리에이티브를 이루는 일련의 과정 가운데 아주 작은 요소다. 크리에이티브를 현실화하는 데는, 상대성원리를 발견하기까지의 기간보다 그것을 대중에게 설명할 방법을 고민한 기간이 더 길었다는 아인슈타인의 고백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여기서는 그 얘기를 듣는다. 그들의 공상가적인 열정과 만년대리 같은 성실성, 아이디어를 세일즈 하는 마케터 같은 수완까지 크리에이티브의 모든 것.

“김승준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크리에이티브는 일상을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일상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실질적인 해결책이다. 그는 '사람의 편의성'이라는 근본철학에서 출발할 때 디자인이 가장 큰 창의력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는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패턴을 지니고, 어떻게 사고하는지 관찰한다. 창의력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근육처럼 날마다 단련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디자이너 김승준 크리에이터 편.

장성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장성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엔터테인먼트 디자인’의 역사를 다시 썼다. 2000년대 초반 당시 엔터테인먼트 디자인은 그저 CD패키지 디자인 정도를 의미했고, 따라서 그런 일을 하는 이의 호칭도 편집디자이너나 그래픽디자이너쯤으로 불렸다. 그것은 시쳇말로 ‘B급 디자이너’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장 디렉터는 YG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해 이런 기존 문화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켰다. 가수의 퍼스널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하며, 그것을 확대재생산해 다양한 상품으로 개발하는 것까지 엔터테인먼트 디자인의 영역을 확장했다.

엔터테인먼트 디자인이란 프로모션의 전체 방향에 종속되는 하부 구조라는 개념에서도 탈피했다. 실제로 장 디렉터가 만드는 앨범 컨셉트에 따라 프로모션의 방향성이 정해지기도 했다. 지난 2012년 2월에 발매한 그룹 ‘빅뱅’의 미니앨범의 포스터는 빅뱅 멤버들을 냉동인간처럼 표현하고 있다. 오랜만에 컴백하는 빅뱅의 상황을 ‘동면에서 깨어남’이라는 비유적인 디자인 컨셉트에 담은 것이다. 이는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프로모션의 전 영역으로 확대재생산 되었다.

‘YG’시절, 장 디렉터는 장난감처럼 생긴 앨범 패키지를 만들거나 가수의 얼굴 마스크를 직접 찍어 패키지를 만드는 파격을 단행하기도 했다. 평면적이었던 패키지 디자인은 그녀의 손에서 하나의 조각품처럼, 오브제처럼 공감각적으로 다시 태어났다. 가수가 지닌 아이덴티티와 음악적 특성은 살과 피를 머금은 듯 대중에게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그녀의 대답은 간명하다.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용감해졌습니다.”

장 디렉터의 고백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녀는 자신이 대학 2학년이 되어서야 디자인 전공을 선택했으며, 그림 실력도 좋지 못하다고 고백한다. 디자인 전공자 대부분이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음을 고려한다면 다소 의외다. ‘모른다는 생각’은 한편으로는 그녀를 더 자유롭게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그녀를 더 분투하도록 몰아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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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PSY 6갑>_ 앨범 패키지 디자인
일러스트레이터와 협업하여 만든 싸이의 캐릭터

미술 문외한이 디자이너가 되다

어렸을 때는 어떻게 지냈나?

장성은(이하 장) :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배웠고, 그에 따라 꿈도 자주 바뀌었다. 외교관, 파일럿, 선교사, 여행전문가, 교수, 뮤지컬 배우 등등…. 다만 음악만큼은 일관되게 열심히 했다.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이어서 바이올린, 첼로, 기타, 드럼 등을 꾸준히 배웠다. 성격 면에서는, 리더십이 있는 편이라 앞에 나서는 역할을 많이 했다.

대학교 시절은?

장 : 대학에서는 ‘먼지’ 같은 학생이었다. 어려서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남 앞에 나서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늘 주위의 주목을 받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관심이 부담스러워졌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그런 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은 욕구가 커졌다. 그래서 지방에 있는 학교에 들어갔고,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동아리 활동 같은 건 하지 않고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디자인을 선택했나?

장: 내가 들어갔던 대학교는 전공을 선택하지 않고 입학하여 2학년 때부터 전공 2개를 선택하는 시스템이었다. 다양한 개론 수업을 듣다가 디자인이 내 적성에 맞는 것을 알았다. 다양한 협업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데 피곤한 줄을 몰랐다.

첫 직장 생활은 어땠나?

장: ‘지직(www.gigic.com)’이라는 디자인 에이전시에 입사했다. 사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큰 원동력이 첫 직장인 ‘지직’이라고 할 수 있다. 입사했을 당시, 회사에는 대표를 빼고 직원이 나밖에 없었다. 당연히 엄청나게 힘들었다. 온수가 나오지 않고 찬물만 나오는 지하 사무실에서 설거지를 하고 청소도 했다. 그러나 나는 대표의 마음을 이해했다. 디자인을 제대로 하지도 못 하는데 월급만 받는 게 미안해서 어떤 일이라도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일했다. 3년 후부터 다른 직원을 뽑기 시작했고, 회사가 점점 커졌다. 10년 동안 일하면서 로고, 애플리케이션, 브로슈어, 패키지, MD, 엔터테인먼트, 잡지 편집 등 많은 일을 했다.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지만 디자인의 기본기를 닦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태양 <solar special edition>__태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원을 돌리면 신기한 착시효과가 생긴다

YG에서 엔터테인먼트 디자인을 정립하다 

YG엔터테인먼트는 어떻게 해서 가게 되었나?

장: 10년간 일하던 지직에서 퇴사한 후, 양현석 대표에게서 몇 차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러시아 유학을 준비 중이라서 응하지 않았다. 게다가 디자이너들에게는 디자인 회사에 근무하는 게 가장 좋다는 분위기가 있지 않나. 연예인 위주로 돌아가는 회사에 가면 들러리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비자 문제가 생겨 러시아에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양 대표는 “작업실을 마련하고 컴퓨터 세팅까지 다 해 놨으니, 와서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라”고 나를 설득했다. 빅뱅의 G드래곤에게 했듯이, 나를 존중해 준 것이다. 이게 다 하늘의 뜻인가 싶더라. 양대표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흔쾌히 YG엔터테인먼트에 합류했다.

YG는 왜 당신을 영입했다고 생각하는가?

장: K-POP시장이 커지면서 YG만의 차별화된 브랜드 전략이 필요했다. YG는 뮤지션의 개성을 존중하는 회사이며, 그것으로 특유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티스트를 보고 음악을 구매하는 팬덤 문화도 커져, 각각의 스타마다 아이덴티티 작업이 필요했다. 또한 질적으로도 다른 회사와는 차별화시켜야만 했다. 로고, 캐릭터, 포스터, 스타일링, 뮤직비디오, 프로모션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그 아이덴티티를 일관되게 가져가야 했는데 그 작업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외주 작업으로는 그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듯하다.

YG에서는 어떻게 작업했나?

장: 이전에는 YG에서 자체 디자인을 하지 않고 외주 작업을 했기 때문에, 새롭게 디자인팀을 꾸리는 일부터 했다. 회사에서는 내가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주어 작업 환경은 좋은 편이었다. 양 대표는 디자인경영이 뭔지 아는 사람이다. 보통은 프로모션이나 기획에서 정한대로 디자인하지만, YG의 양현석 대표는 나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었다. 오히려 내가 개념을 먼저 세우고 프로모션에서 이를 반영하는 일이 제법 많았다.  또한 양대표는 영화관을 통째로 빌려 가수, 프로듀서들과 영화를 보여주곤 했다. YG 재직 시절은 내가 ‘엔터테인먼트 디자인’을 정립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빅뱅 <Alive Bigbang>_오랜 공백을 깨고 나온 앨범이라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녹슬게 한 컨셉트
얼어서 동면에 들어간 모습을 형상화했고, 뒤에 뮤직비디오 등에서 얼음에서 풀리는 모습으로, 오랜 공백을 깨고 컴백한 것을 우회적으로 그렸다.

당신이 생각하는 엔터테인먼트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장: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엔터테인먼트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따로 없었다. 앨범 패키지나 포스터를 디자인하는 편집디자인 또는 그래픽디자인의 분야일 뿐이었다. 그러나 K-POP 시장이 커지면서 대형 스타들이 탄생하게 되었고, 기존의 디자인 전략으로는 이를 담아낼 수 없게 되었다.

가수의 퍼스널 아이덴티티(Personal Identity)를 구축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시각화(비주얼라이제이션, Visualization)하며, 이를 다양한 2차 상품으로 개발하는 커머셜라이제이션(Commercialization)을 모두 포함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엔터테인먼트 디자이너의 역할은 각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다양한 작업자들이 서로 효율적인 협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yg DVD POSTER

 

 

G드래곤의 얼굴을 본따 만든 <Heartbreaker>_ 팬덤에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봐 달라.

장: 싸이(psy)는 유쾌한 악동이면서 B급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를 시각화하기 위해 먼저 일러스트레이터와 협업하여 캐릭터를 만들었다. 또, 앨범은 장난감처럼 만들어 “여길 열면 뭐가 나오지?”라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싸이가 지닌 장난기와 언어유희 등의 특징을 살린 것이다.

2012년 2월에 발매한 그룹 빅뱅의 미니앨범의 포스터는 멤버들이 냉동된 것처럼 디자인되었다. 오랜만에 컴백하는 빅뱅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어 뮤직비디오에도 빅뱅 멤버들이 동면에서 깨어나는 모습으로 등장했고, 이러한 디자인 컨셉트는 다른 여러 프로모션에도 활용되었다. G드래곤은 팬덤이 가장 두터운 가수에 속하며, 그 자체로 K-POP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1집 앨범 <Heartbreaker>는 그의 얼굴을 실제로 본 따 만들었다.

2NE1은 ‘기존 걸그룹과 차별되는 마래지향의 개성강한 4명의 걸그룹’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만들었고, 피라미드 4개가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처럼 4명의 멤버들이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시각화하였다.

이하이는 아이돌이라기보다는 아티스트의 자질이 보이는데, 이제 열여섯에 불과했다. 어린 나이에 화장품을 보면 뭔가 화장을 하고 싶어 가슴이 설레는 것을 생각해 화장품 패키지처럼 만들었다.

이렇게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시각화되고 나면 나중에 실제 공연이나 뮤직비디오에 일관되게 적용되며, 프로모션에도 활용된다. 또한 티셔츠나 물병 등의 상품이나 응원도구 등에도 적용된다.

 

브랜드가 된 가수의 이미지는 상품으로도 제작된다.

 

이하이 _ 마치 화장품 패키지처럼 디자인하여 소녀의 풋풋한 감성과 설레임을 담았다.

YG를 그만 둔 이유는 무엇인가?

장: 어느 날 <우유곽 대학을 빌려드립니다>의 저자인 후배 최영환을 만났다. 그는 인터넷도 없고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외딴 군부대 GOP에서 근무하면서,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대학을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최고의 교수진을 초빙하기 위해 군대에서 보급된 우유갑으로 편지지를 삼아 저명인사들에게 보냈다. 놀랍게도 그 최고의 교수진들은 흔쾌히 참가 의사를 밝혔다. 그는 시간이 흐른 후 그 모임을 주축으로 비영리 단체 ‘엠트리’를 만들었고, 'By artists for artist, By artists’라는 단체를 뉴욕에서 만들어 저개발국가의 예술가를 돕는 일을 해오고 있다.

그 날 나는 그 후배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나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밤에 잠을 자는데 쿵쿵거리는 그 심장박동 소리에 잠을 깼다. 그러면서 내 안에서 이런 외침이 들렸다. “장성은, 너 이렇게 편안한 삶을 살래, 아니면 다이나믹한 삶을 살래?”

그렇게 해서 퇴사하게 됐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 다이나믹한 삶을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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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마음'과 '모른다는 생각'이 영감의 원천 

퇴사한 후에는?

장: MA+CH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음악(Music), 예술(Art), 문화(Culture), 사람(Human)을 망라해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 더 큰 범위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의미다. 성냥이므로 세상을 밝힌다는 의미도 있고,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내가 가진 재능을 통해 주변과 사회를 밝히고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

현재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장 : 엔터테인먼트디자인을 좀 더 확고하게 정립하고 싶다. 또한 개인 브랜드도 준비 중이다. 엔터테인먼트 사업 분야는 흥망성쇠를 예측할 수 없고, 클라이언트의 외주를 받아서 하는 일이라 평생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서이다.

한국 디자인업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장 : 솔직히 한국 디자인업계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디자이너들도 음악인들처럼 저작권 협회같은 것을 만들어 크리에이티브를 보호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장 : ‘doing’에 집중하기보다 ‘being’에 집중해라. 네 자신을 ‘maximize’하라. ‘Be unique.’

풀어서 말하자면 ‘무엇을 한다.’라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의 존재에 집중하라는 의미일 수 있겠다. 행위보다는 존재에 집중할 때 자신의 능력이 극대화되고, 자신만의 개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적 _ 앨범 제목처럼 가슴이 뚫린 듯 허한 40대 남자의 고독을 표현했다.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한 작업.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영감을 받는가?

장 : ‘섬기는 마음’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돕기 위해 깊이 생각할 때 여러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나는 일을 위한 일이라기보다 클라이언트를 돕는 마음으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노력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클라이언트, 가수, 팬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니즈를 아울러서 생각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데 큰 도움이 된다.

‘모른다는 생각’ 또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어느 녹음 현장이었다. 한 프로듀서가 여러 시간째 한 가수의 노래를 녹음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듣기에는 가수가 부르는 음이 원래의 악보보다 떨어진 것으로 들렸다.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여러 악기들을 다루기 때문에 디자인보다 차라리 음악을 더 잘 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들어도 음이 떨어졌는데...” 그러나 그 프로듀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떤 노래는 악보보다 감정이 중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어떤 틀을 고집하지 않는다. 꼭 틀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하다보면 답을 찾는다. 모른다고 생각하면 겸손해져 답을 찾았다고 해도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한다. 인간이 아무리 아름답게 만들어도 하나님이 만든 꽃 한 송이보다 못 하다.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 겸손해져야 한다. 그런 마음에서 '섬기는 마음'도 나오는 것이다.

장성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장성은 | 한동대학교 시각디자인, 자동차디자인 졸업. GIG,IC TMC Creative Director, 디자인실장, YG ENTERTAINMENT Creative Director, 디자인실장, 현재 MA+CH 대표/ 2012년 중앙일보가 선정한 K-디자인 10인 선정/ 저서: <DIsc. covery 디스크커버리| 음반 디자인의 발견(지콜론북)> <크리에이터의 즐겨찾기2| 23인 창작가의 공간과 시선(지콜론북)> / 2013광주 비엔날레 통일국기전/ JTBC <힘있는 이야기쇼>, SBS <한밤의 TV연예>, MBC <문화사색>, 온스타일<겟잇스타일>,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KBS<청천응원 콘서트 드림업 꿈꾸라 도전하라> 등 TV 다수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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