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창업은 가장 완벽한 노후대책입니다.”
이정협 비더시드 대표 인터뷰
“단언컨대, 창업은 가장 완벽한 노후대책입니다.”
2023.05.19 17:01 by 최태욱

“뒷자리에 부장님, 옆방에 상무님을 보니 문득 20년 후의 내 모습이 오버랩됐어요. 내가 이곳에서 이룰 수 있는 최대치가 보였죠. ‘만족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 힘들더라고요. 대안이 필요했던 거예요. 제가 찾은 대안이 바로 ‘창업’이었고요.”

이정협 비더시드 대표는 업계에서 소문난 ‘창업전도사’다. 창업을 “(영화)매트릭스에서 빨간 약을 먹는 것”에 비유할 정도로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 그의 창업 예찬에는 비전이나 미션, 기업가정신 같이 형이상학적인 용어가 드물다. 철저히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창업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굴지의 대기업을 떠나 맨 땅에 헤딩하며 단단해진 철학이기에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언제부터 당신의 꿈이 회사원이었냐?”는 도발적인 질문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이정협(사진) 비더시드 대표
이정협(사진) 비더시드 대표

| 유산, 로또…해당사항 없다면 ‘창업’ 뿐입니다.
소문난 연쇄창업가, 8년차 창업기획자, 창업 전공 겸임교수, 창업 관련 크리에이터에 집필 활동까지…이정협 대표는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창업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꽤나 자연스러운 인물이다. 

그는 창업을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본다. 첫 번째는 ‘탈(脫)궤도’의 측면이다. 통상 우리나라는 교육부터 진로까지 이어지는 경로가 상당 부분 정해져있다.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해 초‧중‧고부터 무한경쟁에 시달리고, 대학 생활은 취업 준비로 점철되는 식이다. 

“명절 때 모인 친척들의 덕담조차 뻔하잖아요. ‘공부는 잘 하냐’, ‘대학은 어디 갔냐’, ‘취업은 언제 할거냐’…돌림노래처럼 대물림된 얘기들이죠. 일정한 궤도를 끊임없이 돌고 있는 거예요. 문제는 이 궤도라는 것이 진실을 가리고 있다는 거죠.”

그는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자본이 지배하는 시스템 내에서 주도권을 갖는 사람은 결국 자본가라는 것. 바로 이 대목에서 이 대표가 주장하는 탈(脫)궤도에 힘이 실린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궤도가 결국은 노동자를 양산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정협 대표는 궤도를 충실히 따를 때 주어지는 보상을 충분히 누려 본 사람이다. 재계순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회사에 입사했고 10년이나 일했다. 하지만 만족은 잠시였고 외려 갈증만 깊어졌다. 이 세계관에선 주인도, 승자도 될 수 없다는 걸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자본가가 되어야 풀리는 문제더라고요. 유산 받을 재산 없고, 로또 맞을 재간 없으니 어쩌겠어요. 나만의 생산 시설을 소유한 사람이 되어야죠. 창업만이 자본주의 내에서 승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루트라고 확신했습니다.”

 

현대차 재직 시절 이 대표의 모습. 10년 간 마케팅전략실‧홍보실‧스타트업육성팀을 돌며 청춘을 바쳤다.
현대차 재직 시절 이 대표의 모습. 10년 간 마케팅전략실‧홍보실‧스타트업육성팀을 돌며 청춘을 바쳤다.

창업을 바라보는 그의 또 다른 관점은 일종의 ‘헷지(hedge‧대비책)’다. 그는 ‘100세 시대’가 일반화되는 시점에서 노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종이 아닌 주인으로서 자신의 업(業)을 갈구하며 쌓은 경험과 노하우. 고용사회에서 튕겨져 나오는 순간의 완충제 삼기에 그만한 것이 없다는 얘기다. 

“환갑도 되기 전에 퇴임을 한다고 치면, 최소 20~30년은 버텨야 해요. 운이 좋으면(혹은 나쁘면) 버티는 기간이 훨씬 길어질 수도 있죠. 그런데 대책이 별로 없어요. 재취업은 힘들고, 스스로 업을 일으킨 경험도 일천하니까요. 퇴직금 긁어모아 프랜차이즈 점포라도 차리려는 분들이 많은 이유겠죠.”

마치 빙하가 녹아내려 나중에 곤경에 빠질 걸 알면서도 환경오염에 무감각한 것 같은 상황. 이 대표는 “하루라도 빨리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맞닥뜨릴 현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목에서 창업을 바라보는 자세의 뒤틀림이 일어난다.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 무색해지고, “언제 할까”의 문제만 남게 되는 것이다. 챗GPT 같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일자리 쟁탈전이 한층 심화될 미래사회를 생각하면 마음은 더욱 조급해진다. 

 

이정협 대표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창업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강조한다.
이정협 대표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창업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강조한다.

| 성공 창업을 위한 주문…“되고 나서, 될 때까지!”
창업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지만, 월급쟁이 생활에 익숙한 대다수의 직장인들에게 여전히 그 문턱은 높다. 매스컴에 등장하는 유명 창업가들처럼 화려한 경력이나 특출난 기술도 없는데다, 과감하게 끝장승부를 볼 배짱도 부족한 게 우리네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창업에 접근해야 할까. 일단 부딪쳐보면 되는 것일까? 창업 컨설팅 에이전시를 통해 수많은 예비창업가들과 호흡했던 이 대표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오히려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으로 “무턱대고 시도하는 것”을 꼽았다. 이 대표는 “창업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감에 의지해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접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하기’ 전에 ‘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뜸 헬스장 끊고 닭가슴살 쟁여놓는다고 ‘몸짱’되는 게 아니잖아요. 일단 내 몸과 행동 패턴을 파악하고 운동 정보, 휴식 정보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해요. 무언가를 하기 전에, 이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얘기죠. 창업도 마찬가지에요.”

창업과 관련해 가장 대표적인 공부가 바로 ‘돈’과 ‘빚’에 대한 공부다. 이 대표는 “창업하면 으레 투자부터 신경쓰는 창업가들이 많은데, 이렇게 투자 의존도가 높은 건 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투자유치 실적이 성공한 스타트업의 ‘바로미터’가 되는 인식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대표는 ‘투자대세론’을 경계하는 창업 전문가 중 하나다. 투자에 대해, 경우에 따라서 활용할 수 있는 금융의 한 수단일 뿐이라는 입장을 줄곧 견지해 왔다. 더 좋은 조건의 자금이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투자 유치에 목매고 있는 창업자들을 정말 많이 봤어요. IR에 조직의 역량을 총동원한 나머지, 경영은 뒷전이 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죠. 심각한 판단미스에요. ‘Sweat Equity’, 즉 땀 흘려 번 돈으로 굴러갈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게 먼저죠. 그렇게 되면 투자자들은 돈 보따리 싸들고 줄을 서게 되어 있습니다.”

 

이정협 대표(왼쪽)와 김봉진 우아한형제 창업주
이정협 대표(왼쪽)와 김봉진 우아한형제 창업주

공부든 경험이든, 창업을 위한 근육 만들기가 다소 복잡다단하다면, 창업 이후 스텝은 한결 단순해진다. 요구되는 것은 한 가지, ‘될 때까지’ 밀어 붙이는 뚝심이다. 시행착오를 당연하게 여기는 마인드셋이 절대적이다. 이 대표는 “엘리트들이 득실대는 굴지의 대기업들도 신사업을 추진하면 망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실패에 발목 잡히면 절대 자신의 업을 일궈낼 수 없다”고 조언한다. 

이 대표는 삶을 통해 자신의 조언을 증명한다. ‘실패전문가’를 자칭할 정도로 많은 좌절을 겪었지만, 바로 그 실패들을 통해 창업에 대한 벽을 허물고, 도전자의 의욕을 고취시켜 왔다. 

“제가 지금까지 15개의 창업을 했는데 이 중 ‘돈이 됐다’고 말할 수 있는 건 5개도 안 돼요. 그럼 10개는 시간낭비였을까요? 아뇨, 끝까지 가서 두 눈으로 최종 결과를 확인한 경험이 제겐 마치 훈장 같은 거예요. 뭣보다 내성과 맷집이 엄청나게 길러졌죠. 어차피 누구도 성공을 담보할 수 없는 게 창업이라면, 결국 버티는 자가 승자거든요.” 

 

| “16번의 창업, 앞으로 50번은 더 각오해야죠.”
여러모로 창업에 진심인 이정협 대표. 현재 그가 심리적 베이스캠프로 삼는 비즈니스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과 컨설팅 업무를 주로 하는 ‘비더시드’다. 비더시드는 그 자체로 창업에 대한 이 대표의 열정이 오롯이 투영된 조직이다. 수차례의 창업 도전에서 고배를 마신 이 대표가 창업 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머지 결성했던 대(對) 스타트업 재능기부 프로젝트팀이 전신인 회사다. A부터 Z까지의 창업 과정을 몸소 추진해봤던 팀원들과 함께 경험과 노하우를 나눈다는 콘셉트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이정협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비더시드 멤버들
이정협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비더시드 멤버들

창업 미생들이 가진 꿈에 마중물을 붓는 역할은 엑셀러레이팅 활동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2019년부터 세종대 융합창업전공 겸임교수로서 보다 본격적이며 체계적인 ‘전도’ 활동에 나서고 있으며, 자신의 유튜브 채널(‘시작선’)을 통해서도 기업가정신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번 달에는 창업 관련 저서도 새로 출간할 예정이다. 

다양한 외부 활동에도 불구, 이정협 대표가 생각하는 자신의 ‘본캐’는 여전히 창업가다.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동하면, 시장이나 업종에 구애받지 않고 과감히 돛을 올린다. 블록체인 분야에서 활동하는가 하면, 산삼 제품에 도전하는 식으로 변화무쌍하게 전개된다. 이 대표는 “1차 산업부터 4차 산업까지 안 해본 것이 없다”면서 “현재 16번째로 준비하고 있는 사업은 클래식 공연 기획사”라고 귀띔했다.

벌이는 것마다 대박이 나는 ‘마이더스의 손’이라곤 말하기 힘들다. 이 대표 스스로도 “눈에 확 띄는 건 없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기에 주저함은 없다. 초기 자본금을 100만원 이하로 제한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나름의 원칙도 고수한다. 가장 최근에 창업한 수입차 부품 해외 구매대행 서비스는 도메인 비용 2만2000원이 창업 자금의 전부였을 정도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 ‘시작선’을 통해 기업가정신을 확장시키는 이정협 대표
자신의 유튜브 채널 ‘시작선’을 통해 기업가정신을 확장시키는 이정협 대표

이정협 대표는 현실주의자와 낭만주의자의 면모를 동시에 지녔다. 창업의 유일 목적이 ‘돈’이라고 선을 그을 만큼 현실적이지만, 좀비처럼 버티고 버티면 분명 빛을 본다고 강조하는 모습에선 낭만도 엿보인다. 하고 싶은 건 어떻게든 펼쳐 내는 창업도전사 역시 현실과 낭만 그 사이 어디쯤의 행보다. 창업을 향한 그의 열정이 종내 도달하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가장 힘든 순간에 콧노래를 부르며 웃는 게 일류라죠? 저 역시 그 길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계속 도전해볼 겁니다. 죽기 전까지 대박나는 게 없다면, 한 50개 쯤 하지 않을까요?(웃음)

 

/사진: 비더시드 제공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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