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를 사로잡은 검고,뜨겁고,순결하고,달콤한 커피의 힘
발자크를 사로잡은 검고,뜨겁고,순결하고,달콤한 커피의 힘
발자크를 사로잡은 검고,뜨겁고,순결하고,달콤한 커피의 힘
2016.02.09 18:50 by 송나현

동화 ‘시골 쥐, 도시 쥐’ 속에 나왔던 지하실. 그곳에 한 가득 쌓인 음식은 봉인됐던 나의 ‘식탐’을 깨웠다. 이후 대하소설 ‘토지’를 보고선 콩나물 국밥을 사먹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곤 마들렌을 처음 접했다. 쿡·먹방 시대를 맞아 음식과 문학의 이유 있는 만남을 주선해본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 역사‧철학‧종교‧사회가 총망라된 책 속에서 빵의 재발견이 이뤄진다. 지금 내가 집어든 빵은 어떤 새로운 역사와 색다른 패러다임을 만들어 낼까?

“아가, 커피 좀 타오렴.”

“동서, 나는 블랙으로”

“저도요”

“올케, 난 설탕 넣어줘”

과일을 깎아 대령하자마자 밀려드는 주문. 민족  대명절인 설날의 흔한 풍경이다.(며느리 시점이다.) 차례상 치우고 한 숨 돌리나 했건만 '네 사정 따윈 봐주지 않아’ 라는 듯 주문이 밀려든다.

'자기들은 손이 없나 발이 없나' 투덜거림도 잠시. 불만은 가슴속에 깊이 포개어 놓고, 주문대로 커피를 탄다. 곱게 커피를 내어가려 했으나 긴 연휴 동안 쌓였던 화가 가시질 않는다. 시어머니 커피를 몰래 두 모금 홀짝이며 소심한 분노를 표한다.  

(사진:Shaiith/shutterstock.com)

목을 넘어 몸 속으로 퍼져나가는 커피. 카페인(C8H10N4O2)은 혈관과 임파관을 열어젖힌다. 중추신경과 뇌를 굴복 시킨 뒤 호흡중추를 점령한다. 모든 기관은 카페인의 명으로 가스교환을 시작한다. 심장근육은 빠르게 움직이고, 모든 세포는 활기를 띤다. 혀도 부산한 움직임을 보인다. 때가 왔다. 뇌는 혀에게 '한 마디 하라'한다. 쟁반을 받치는 손은 두근두근 거리고 발걸음은 힘차다. 거실에 도착해 쟁반을 내려놓는다. 

마침내 입을 연다.

(사진:Ollyy/shutterstock.com)

“어떻게, 커피는 입맛에 좀 맞으세요?”

소심한 며느리는 카페인의 힘을 이겨냈다. 아니면, 울화통에 커피를 들이킨 나날이 많아 내성이 생긴 걸수도.

하루 50잔 정도의 커피를 마셨다는 발자크는 내성이 엄청났나보다. 어릴 땐 한 모금씩 홀짝이며 심장의 두근거림을 즐겼지만, 나이 들어선 많은 양을 마시지 않곤 소설을 쓸 수 없었다는 발자크. 일생 동안 5만잔 가까이 들이킨 덕분인지,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커피 마신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린다.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최고봉 <인간희곡> 중 (91편의 장편소설로 엮어진 프랑스 연쇄소설) 가장 유명한 ‘고리오 영감’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19세기 전반 프랑스의 소설가. 사실주의의 선구자이자 나폴레옹 숭배자.《외제니 그랑데》,《절대의 탐구》,《고리오 영감》,《골짜기의 백합》,《농민》 등이 대표작.

'고리오 영감'... 스토리는 막장 중 막장. 돈을 위해 가족을 버리는 파리 사람들. 탐욕과 이기심, 무자비함이 가득하다. 속물스러움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연애(주인공 라스티냐크와 고리오 영감의 딸)에선 이해타산적인 연애로 속앓이하는 현대 젊은이들의 고민이 느껴지고, 두 딸의 허영을 채우기 위해 전 재산을 탕진하는 고리오 영감을 통해선 현대 노인들의 아픔을 본다. 가난해진 아버지를 외면하고, 심지어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는 딸들에게선 사람을 돈으로 계산하고 가족애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병패를 엿보기도 한다.

"이곳 파리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출세하는가를 알고 있나? 천재성을 떨치던지 아니면 능수능란하게 타락해야 하네. 사회 집단 속으로 대포알을 뚫고 들어가거나 페스트균처럼 스며들어 가야 하네. 정직이란 아무 소용이 없네" 

소설 속 보트랭의 대사에선 전율마저 느껴진다. 성공하기만 하면 부패도 의혹으로 격하되는 마당에 정직이란 얼마나 쓸모 없는 덕목인지.

"아! 내가 만일 부자였고, 재산을 거머쥐고 있었고, 그것을 자식들에게 주지 않았다면, 딸년들은 여기에 와 있을 테지. 그애들은 키스로 내 뺨을 핥을 거야!"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한 자식들이 재산에만 눈독 들이는 사연은 최근 라디오나 뉴스에서 흔히 접한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막장의 스토리에도 불구, 독자들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마주할 수 있는 건 발자크가 만든 주인공들의 유려한 화법과 섬세한 묘사 덕분이다. 

인간과 세상의 속물스러움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발자크. 그는 이를 실현키위해 커피에 묻혀 살았다. 커피 예찬론자인 발자크는 '커피를 어떻게 가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논문도 써냈다. 커피가 없었다면 발자크는 절망했을 것이다.

사실 커피는 발자크 뿐만 아니라 베토벤,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무라카미 하루키 등 많은 예술가들의 찬사를 받은 기호식품이다. 어떤 식품이 이리도 광범위하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커피나무(사진 Morphart Creation/shutterstock.com)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된 커피나무는 다른 카페인 식물에 밀려 빛을 발하지 못하다가 이슬람 상인들을 통해 터키로 흘러 들어왔다. 이후 이슬람문화권에선 정말 끔찍이 사랑받았다고 한다. 디오니소스(포도주)를 금하던 이슬람에서 대신 커피를 마셨고, '기적의 음료'로 불리며 퍼져나갔다. 커피를 못 마시게 한 것이 이혼사유가 되기도 했다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이후 17세기, 이슬람 문화권이 쇠퇴함에 따라 유럽에 소개됐다. 처음에는 의약품으로 간주되었고, 포도주 상인들과 의사들의 반발로 깊게 자리잡지 못했었다. 18세기에는 지성을 강화해주는 수단으로 그 시기의 지성인들을 사로 잡았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차보다 뒤쳐진 처지였지만 신대륙의 '보스턴 차'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 수요가 급증했다. 19세기에는 자본주의의 필수수단이 되었고, 산업혁명 이후 부속품이 되어버린 노동자들의 잠을 물리쳤다.

커피는 많은 예술가들의 찬사를 받은 기호식품이다.(사진 igor.stevanovic/shutterstock.com)

손탁부인의 소개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커피. 1960년대 만들어진 스타벅스로 시작된 카페는 이제 거리에 넘쳐난다.  큰 카페는 작업하는 사람들, 책 읽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 추세라면 파리의 '레 뒤 마고'처럼 서울 한 복판에 예술가들의 집합장소가 생길지도 모른다.

발자크마냥, 한국의 23세기를 내다보는 사실주의 작가가 탄생한다면, 아마 그곳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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