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전통, 고대 이집트의 상징들
변하지 않는 전통, 고대 이집트의 상징들
2016.02.05 15:25 by 곽민수

나일강은 이집트에게 큰 축복 같은 존재다. 비옥한 농경지를 제공해주고, 넓은 이집트 전역을 이어주는 교통로를 제공한다. 나일강을 통해 상-하 이집트로 나뉘는 이집트의 지리를 살펴본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앞서서 말씀 드린 것처럼 3000여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3000년 실감이 잘 안 나는 숫자죠. 쉽게 말해 2016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과 한반도에서 활발하게 고인돌이 만들어지던 기원전 1000년 정도 즈음과의 사이에 놓여있는 시간입니다. 그만큼 이집트 문명은 기나긴 세월동안 존재하였습니다. 한 문명이 이처럼 긴 세월동안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고대 이집트의 몇 가지 문화적 요소들은 이 기나긴 세월동안 거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대단히 역동적인 문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들의 상상을 가뿐히 뛰어넘는 엄청난 보수성을 지니고 있던 문명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집트 문명의 보수성은 이집트를 여행하는 현대인들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이 되기도 합니다. 현대의 일반 여행자들도 3000 여년의 시간동안 계속해서 사용되는 상징들을 몇 개만 기억해 두면 이집트의 유적지 곳곳에서 고대인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즐거움을 위하여 대표적인 상징들 몇 가지를 소개하는 것이 이번 회의 주된 내용입니다.

파라오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항상 특별한 틀 안에 써놓곤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틀의 모양만 기억하면, 비록 파라오의 이름은 읽어내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파라오의 이름이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이집트 신성문자의 해독에 최초로 성공하였던 프랑스의 이집트학자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Jean-François Champollion, 1790-1832)도 이 틀 안에 쓰여진 단어가 파라오의 이름임을 깨닫는데서부터 성공적인 해독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파라오의 이름을 담는 틀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레크(serekh)라고 불리는 네모난 틀입니다. ‘알려지게 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세레크는 초기왕조 시대부터, 즉 고대 이집트 문명의 초창기부터 파라오의 이름을 쓰는데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틀의 내부에는 파라오의 이름이 쓰여지고 그 틀의 상단부에는 그 파라오가 갖고 있었던 종교적ᆞ정치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동물의 상징이 자리합니다. 보통은 호루스(Horus) 신을 상징하는 매나 세트(Seth)를 상징하는 네발 동물이 한 마리씩만 새겨지는데, 두 마리가 동시에 새겨지는 일도 있습니다. 1 왕조의 파라오 카세켐위(Khasekhemwy, 재위 기원전 2,690년 경)의 세레크에는 이 두 동물이 함께 그려졌습니다. 그 이유는 두 신을 각각 섬기던 두 집단 간의 종교ᆞ정치적 갈등을 카세켐위가 해결해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한편 세레크의 아래쪽 부분에는 왕궁의 벽면을 묘사한 문양이 장식되었습니다. ‘왕궁의 벽면 문양’이라고 불리는 이 문양은 이후로 오랫동안 왕실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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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재위 기원전 2980년 경)의 세레크(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 비석, 사진 위)와  카세켐위의 세레크(사진 아래)

고왕국 시대 3 왕조 말이 되면 카르투쉬(cartouche)라고 불리는 밧줄로 만들어진 타원형의 새로운 틀이 등장합니다. 앞선 세레크는 11 왕조 시대에 잠깐 다시 사용되기도 하지만 더 이상은 사용되지 않게 됩니다. 반면 카르투쉬는 이집트 문명의 종착지점인 프톨레마이오스 시대를 지나, 심지어는 로마 지배기에도 로마 황제들의 이름을 쓸 때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투탕카멘이나 람세스 2 세, 클레오파트라 7 세 같은 파라오의 이름을 비롯해서 이집트를 정복한 마케도니아 출신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등의 이름도 이 카르투쉬 안에 쓰여졌습니다. 카르투쉬는 유적지나 박물관에서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이집트의 시장에서도 고대 유물을 본따 만든 기념품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파라오들이 이름 쓰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카르투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목걸이는 아마도 이집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념품입니다. 다양한 퀄리티의 제품이 시장에서 무척이나 다양한 가격으로 팔리고 있으니, 언젠가 이집트에 정말로 가게 된다면 부디 뛰어난 안목과 협상 능력이 함께 하기를 빌겠습니다.

투탕카멘(재위 기원전 1332-1323년 경)의 카르투쉬
알렉산드로스 대왕(재위 기원전 323년 경)의 카르투시: A-r-q-s-i-n-d-r-s로 표기되어 있음 (사진: 위키미디어)

초기 왕조시대부터 후대까지 꾸준히 사용된 상징들 가운데에는 상·하 이집트를 구분하여 나타내는 몇 가지 상징들이 있습니다. 이 상징들도 조금만 신경 쓰면 이집트 곳곳에서 쉽게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지리를 설명할 때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통일된 이집트도 언제나 상(上)이집트와 하(下) 이집트, 두 지역으로 구분되어서 인식되었습니다. 이와같은 인식에 따라 파라오들은 각각 상·하 이집트를 상징하는 두 개의 왕관을 때론 함께, 때론 따로따로 쓰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파라오의 왕관들: 좌측부터 데슈레트, 헤제트, 프쉔트, 케프레쉬, 메네스

평평한 앞부분에 높게 솟은 뒷부분을 갖고 있는 붉은 관은 데슈레트(deshret)라고 불린 하(下)이집트, 그러니깐 북쪽의 나일강 하류지방의 왕관이었으며, 남쪽 상(上)이집트의 파라오는 유선형으로 생긴 하얀색의 헤제트(hedjet)라는 왕관을 썼습니다. 두 땅을 모두 지배하는 통일 이집트의 파라오는 당연히 그 두 관을 합쳐 놓은 왕관을 쓰기도 했는데, 그것은 프쉔트(pschent)라고 불렸습니다. 이 이외에 전쟁용 왕관이 있었습니다. 케프레쉬(khepresh)라는 이름의 이 푸른빛 왕관은 주로 파라오가 전장에 나갈 때 사용하던 왕관이었지만, 전장에서뿐만이 아니라 중요한 의식을 거행할 때에도 착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네메스(Nemes)라는 일종의 두건도 있습니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에서 투탕카멘이 쓰고 있는 이 두건은 원래는 헝겊으로 만들어졌으며, 역시 의례용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집트 곳곳에서 너무나 쉽게 마주칠 수 있는 파라오들의 석상을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시면 지금 설명 드린 다섯 종류의 왕관을 어렵지 않게 구분하실 수 있습니다.

상이집트의 왕관과 하이집트의 왕관을 쓰고 있는 파라오. 25왕조, 기원전 760-656년 경. 독일 베를린 박물관 소장품. (사진: 곽민수)
네메스를 쓰고 있는 센우스레트 2세. 12왕조, 기원전 1897-1878년 경. 덴마크 칼스버그 박물관 소장품. (사진: 곽민수)
상하이집트의 왕관과 네메스를 함께 쓰고 있는 아멘호테프 3세. 18왕조, 기원전 1391-1353년 경. 독일 베를린 박물관 소장품. (사진: 곽민수)
푸른 왕관을 쓰고 있는 투탕카멘. 18왕조, 기원전 1332-1323년 경. 독일 베를린 박물관 소장품. (사진: 곽민수)

파라오의 왕관 이외도 상·하 이집트를 나타내는 상징물은 몇 가지가 더 있습니다. 이 상징들 역시 시대를 막론하고 계속해서 사용되는 모티브인 만큼 기억해두신다면 이집트를 여행하시며 앎의 즐거움을 느끼시는데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먼저 파피루스와 연꽃이 있습니다. 파피루스는 하(下)이집트를, 연꽃은 상(上)이집트를 상징하는데, 이 모티브들은 주로 신전의 기둥머리 부분을 장식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파피루스와 연꽃으로 장식된 신전 기둥머리. 카르낙 신전 (사진: 곽민수)

이집트를 찾으신 분이라면 반드시 만나게 되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이마 부분에는 코브라와 대머리 독수리가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동물 역시도 상·하 이집트를 나타냅니다. 이쯤되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집트를 둘로 나눠 이해하는 것에 어떤 강박관념까지 느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코브라는 나일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는 부토(Buto)라는 지역의 지역신인 우라에우스(Uraeus)로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코브라는 하(下)이집트 파라오의 수호신으로 여겨졌습니다. 반면에 대머리 독수리는 중부 이집트의 네케브(Nekeb) 출신의 네크베트(Nekhbet) 여신으로 상(上)이집트의 수호신입니다. 물론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에만 상·하 이집트를 상징하는 이 두 여신이 장식된 것은 아닙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출토된 다양한 장신구를 비롯해서 이 두 여신이 함께 등장하는 유물은 넘쳐납니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품. (사진: Independent)
상-하 이집트를 나타내는 주요 상징들

더 설명 드리고 싶은 것들이 넘쳐나지만 계속해서 이런 설명에만 머물러 있으면 지루하겠죠? 부족한 이야기는 유적지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그때그때 해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이제는 진짜로 이집트로 떠나보겠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여행은 분명히 즐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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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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