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부모의 전언 ‘똑같이 해줘라’, 이를 통해 배우는 자립심과 배려심.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갈 때 치마를 거의 입지 않는다. “불편해서 제대로 놀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작은 아이가 유독 그렇다. 늘 에너지가 넘친다.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을 뛰어 다니고, 철봉에서 원숭이처럼 매달리다 종이 치면 그제야 교실로 들어간다.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기에 쉬는 시간 20분은 너무 짧아 뵌다. 그런 아이에게 치마는 거추장스러울 수밖에 없다.
| 바깥놀이와 감기
독일 유치원 일과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 중 하나, 바로 ‘바깥놀이’다. 아이들은 하루에 두 차례(아침‧점심 식사 후) 한 시간씩 야외활동을 한다. 유치원 놀이터에서 그네와 시소를 타고, 모래밭에서 땅을 파고, 삽질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매일 두 차례, 아이들은 신선한 공기, 살랑이는 바람, 따스한 햇살을 만끽한다.
“오늘은 날씨가 안 좋으니까 안에서 놀아볼까?”
독일 유치원에선 결코 들을 수 없는 말이다. 비바람이 사납게 쳐도 나가고, 눈이 와도 나간다. 열외도 없다. 유치원에 있는 아이라면 모두 나가야 한다. 이 대목에서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몸이 안 좋거나, 사정이 있는 아이는 어떻게 하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 일이 없다. 이곳 부모들은 아이가 아프면 아예 보내지 않는다. 유치원이든, 학교든 말이다.
‘아이들이 아프면 집에서 쉬게 해야 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이런 상황이 때론 유학생부부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우린 어떻게 배웠던가? 어릴 때부터 “학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야 한다”고 듣고 자랐다. 어른들은 ‘다리가 부러지지 않는 한 학교수업을 빼먹어선 안 된다’고 말씀하셨고, 학교에서도 ‘우수상보다 가치 있는 게 개근상’이라며 개근의 대한 의지를 북돋았다. 한편으론 배움을 그만큼 절실히 느끼는 시대였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곳은 아니다. 아이가 감기에 걸리든, 배가 아프든, 어딘가 불편하면 학교나 유치원에 보내지 말아야 한다. 몸이 아픈데 억지로 조직생활을 시키는 건 아이의 시간과 체력을 동시에 빼앗는 행동으로 여긴다. 특히나 감기인 경우는 더더욱 안 된다. 전염시킬 수 있고, 기침으로 수업을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게 상식이며 예의이다.
우리 부부에겐 그런 문화는 낯선 것이었다. 아이가 콧물을 줄줄 흘려도 보내고, 열이 있으면 약을 먹여서라도 보냈다. 유치원 보모들은 그런 우리의 행동을 상식 이하로 여기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곤 했다.
| 치마는 싫어요
독일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입는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청바지에 방수 잠바, 그것이면 외출준비 끝이다. 청바지는 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대학교수까지 즐겨 입는 복장이다. 비바람이 잦기 때문에 방수잠바 역시 외출 필수품이다. 그래서 복장을 보고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가름하기 어렵다.
부모들은 아이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막 걸음마를 뗄 때부터 아이들은 모래밭에서 모래를 뒤집어쓰며 논다. 노느라고 더러워진 옷에 대해 나무라는 법도 없다. 오히려 아이들의 그런 욕구가 채워지도록 기회를 주고 옆에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준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학교에 갈 때는 활동하고 놀기 편한 옷을 찾는다. 티셔츠에 청바지면 족하다. 원피스와 같이 예쁜 옷이나, 한 벌 짜리 정장은 거의 입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옷을 입고 가면 놀림을 당한다고 입고 가길 꺼려한다.
애나, 어른이나 옷차림에 겉치레가 없고, 그것으로 사는 수준을 평가하지 않으니 주눅 드는 일이 없어 좋다. 또 입는 것에 돈 쓸 일이 적으니 유학생활의 스트레스를 하나 덜어낸 기분마저 든다.
독일교육 이모저모
독일의 놀이문화, ‘이기기’ 보단 ‘즐기기’
어느 날, 유치원에 새로운 원장이 부임했습니다. 전임 원장은 무뚝뚝하여 말 붙이기조차 조심스러웠는데, 새로운 원장은 부드러운 인상으로 늘 생글생글 미소를 지어 줬죠.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원장부임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습니다.
한쪽에는 다과가 마련되고, 유치원 각 반 교실에는 간단한 놀이가 준비되었습니다. 어떤 반에는 모래를 잔뜩 쌓아 놓고, 모래 속 깊이 숨겨진 보물(진주모양의 돌)을 찾게 하고, 또 다른 반에선 수저에 콩을 담아 나르게도 했죠. 아이들이 키 만한 자루에 들어가 껑충껑충 뛰며 정해진 코스로 돌아오는 놀이를 하는 반도 있었죠.
어떤 놀이를 누가 할지, 어떤 순서로 할지 따로 정해져 있진 않았어요. 어느 정도 먹고 놀다 보면 여기저기서 먼저 참여한 아이들의 환호성 소리, 부모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함께 어우러지고, 그 소리가 다른 아이들의 귀를 자극하면 그 때마다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끌고 이 반, 저 반, 본인들이 원하는 곳을 오고 갔죠.
흥미로운 건 모든 게임이 개인플레이라는 거예요. 자루에 들어가 뛰는 것도 혼자, 콩 나르는 것 역시 혼자죠. 경쟁자는 없어요. 남을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참여하며 즐기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죠. 부모들은 그 곁을 지켜주며 환호성으로 아이들의 수고를 칭찬해요. 다른 사람을 이겨서 지르는 환호성이 아니죠. 그저 아이가 즐거워하며 끝까지 해냈다는 것에 기뻐하고 만족할 뿐이에요.
끝나는 것도 미정이죠. 아이들이 지루해하면 그 때가 돌아갈 시간이에요. 아이들의 놀이에는 편을 갈라 죽기 살기로 승부를 가르는 일도, 전체가 ‘준비’, ‘시작!’ 하는 통일감도 없어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승부와 경쟁에 내몰리지 않아 그런지 이곳 아이들은 약지도, 억세지도 않아요. 대체로 유순하고 순진하답니다.
다음이야기독일 교육에는 조바심이 없다? 선행학습 엄금하는 독일교육 현장을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