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이 아니라 노력이 인생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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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이 아니라 노력이 인생을 바꾼다"
2014.08.25 13:03 by 황유영
'월드 트레블러'라 불리는 선수, 홍석만을 만나다  

홍석만은 자신을 가리켜 이제는 나이든 선수라고 말했다. 그의 나이 만 38세. 스포츠 선수로서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2004년 제12회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 2개와 은메달 하나를 목에 건 이후 어느덧 10년이다. 스스로 ‘나이든 선수’라고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홍석만의 전성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는 지난 6월 열린 전국장애인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해 3개 종목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그 중 T54(척수장애) 400m는 자신이 세웠던 한국신기록을 0.59초 앞당겼고 두 경기 역시 대회신기록이었다. 여전히 홍석만이 달리는 이유다.
홍석만1


 

ㅣ자신의 길이 한국 장애인 육상의 새로운 이정표였던 남자  

홍석만의 이름을 빼놓고 우리나라 장애인 육상을 논할 수 없다. 처음 출전한 2004년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에서 거둔 성과는 기적이 아니라 역사의 시작이었다. 2008년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에서는 T53* 400m 금메달, T53 200m과 T53 800m에서 동메달, T53~54 400m 계주 동메달을 거머쥐었고 광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T53 800m 금메달, T53~54 1600m 계주 동메달이 홍석만의 차지였다.

2012년 런던 장애인올림픽에서는 대한장애인체육회 한용외 회장과 함께 성화 봉송 주자로 낙점됐다. 2010년 밴쿠버장애인동계올림픽 성화봉송에 장향숙 IPC 집행위원이 한국인 최초 주자로 선정된 이후 두 번째 일이었다. 그의 길은 언제나 역사의 한 페이지였고 새로운 기록이었다.

“누구나 처음 시작할 때 최고가 되고 싶어 하잖아요. 저 역시 정상을 꿈꿨지만 이렇게 잘 할 수 있을거라 예상하지 못했죠. 운동선수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선수와 만들어지는 노력형이 있어요. 저는 철저하게 노력으로 만들어진 선수에요. 지금까지 현역에서 선수생활을 할 수 이는 이유도 노력과 자기관리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석만 선수의 하루 일과는 듣는 것만으로 입이 떡 벌어진다. 운동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도무지 쉴 틈이 없다. 훈련과 공부의 연속이다. 운동을 시작한 후 야식을 먹어본 적도, 주말에 쉬어본 적도 없다. 혹독하게 자신을 단련해왔다.

인터뷰를 위해 홍석만 선수를 만난 곳은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마지막 담금질에 한창인 의정부 종합운동장이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도 그는 묵묵히 트랙을 달리고 있었다.

“일 년 내내 훈련을 거른 적이 없어요. 한 번은 훈련 중 휠체어가 두 동강 나는 사고를 당했어요. 손톱이 빠질 정도의 큰 사고였어요. 훈련을 하던 길에 덤프트럭이 많이 다녔는데 뒤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라요. 의사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고 한 달 후 바로 운동을 했어요. 아플 때는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훈련했어요.”

이른 아침부터 훈련에 열중하는 홍석만 선수는 후배들의 훈련까지 도와주고 있었다. 자신에게 혹독한 홍석만이 후배들에게 만만한 코치일 리 없다. 후배들은 그를 두고 독사, 저승자사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이 그를 따르는 이유는 아낌없이 노하우를 전수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육상에 대한 홍석만 선수의 남다른 사명감이다.

“제가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 장애인 육상의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분이 많지 않았어요. 저 혼자 다 해결해야 했죠. 비장애인 선수들의 훈련 방법을 보면서 나만의 방식을 터득했죠. 후배들이 훈련이 힘들다고 하소연 하면 강하게 밀어붙이지만 학교에서 배운 이론지식을 설명하고 훈련에 돌입하면 다 이해하고 잘 따라와요. 다행히 이런 훈련을 통해 실력이 올라오고 있어요. 뿌듯함을 느끼죠.”
홍석만2


 

ㅣ장애로 위축되었던 마음 운동으로 치유했다  

홍석만 선수는 3살 때 소아마비로 하반신 마비가 됐다. 장애는 그에게 한계였고 아픔이었다. 지금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장애인에 대해 여전한 차별적인 시선은 상처를 남겼다.

“중간에 장애를 갖게 된 사람과 어려서부터 장애를 가지고 이었던 사람은 다른 부분이 많아요. 후자의 경우 생활의 많은 부분이 위축되어 있어요. 특히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가족 중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으면 밖에 내보내지 않을 정도로 인식이 낮았잖아요. 저도 어린 시절부터 위축되어 살았어요. 스포츠를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잠재의식 속에는 여전히 위축된 마음이 존재하고 있어요. 아직도 사람을 만날 때 조심스럽고 여전히 어려워요.”

한계를 극복하고 장애를 끌어안는 과정에서 육상이 많은 도움이 됐다. 어린 시절에 화가가 되고 싶었던 홍석만 선수는 제주산업정보대 2학년 무렵 휠체어 육상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95년 휠체어마라톤대회에 일반 휠체어를 타고 출전했고 96년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쉽지 않은 길, 가족의 반대도 심했지만 달리고 싶다는 그의 생각을 꺾을 수 없었다.

“장애를 극복하는 재활의 개념에서 가장 좋은 활동이 스포츠예요. 처음 장애인 스포츠가 시작된 이유도 재활이 목적이었고요. 보통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마음의 치유가 먼저라고 생각하지만 운동을 하면 오히려 심리적 치유도 빠르게 할 수 있어요. 장애를 갖게 되면 할 수 있는 영역이 좁혀지게 되는데 운동을 통해 그 영역을 넓힐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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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했을 법한 화려한 커리어의 홍석만 선수에게도 위기는 매번 찾아왔다. 2000년 시드니 장애인올림픽 출전이 무산되면서 목표를 잃고 방황했다. 그럼에도 운동을 멈출 수 없었다. 아테네 올림픽부터 홍석만의 이름이 세계 스포츠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상에 오르니 이번엔 경쟁자들의 견제가 이어졌다. 광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T53 800m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일본 측의 이의제기로 등급상향조정 통지를 받았다. 금메달도 박탈당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명백한 각본에 의한 일본 측의 메달 강탈로 보고 있다. 결국 금메달을 되찾았지만 등급을 바꿔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잠시 한숨을 내쉰 홍석만 선수는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내 인생과 운동에 걸림돌은 아니었다”고 짧게 소회를 털어놓았다.

그래도 운동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98년 오야타 마라톤 대회에서 자원봉사자로 온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현재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아내는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자 힘이다. 메달리스트라는 영예도 얻었다. 그가 목에 건 메달의 개수를 세기 힘들 정도로 쌓은 업적이 있지만 과거의 영광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메달은 그냥 메달이에요. 올림픽에서 물론 메달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메달이 목표는 아니에요. 메달이 내 인생을 바꾸어놓지 않거든요. 축하와 영광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매 경기,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홍석만4


 

ㅣ여전히 장애라는 벽과 부딪쳐야 하는 현실  

홍석만 선수에게 장애는 현실이다. 매순간 힘들었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지금은 인식이 개선됐지만 번번이 벽으로 다가왔다. 대학 졸업 후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직장을 구하지 못했을 때 가장 큰 상처를 받았다. 좌절 대신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홍석만 선수에게도 감당해야 할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서울시에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저상버스를 운영하고 있죠. 실제로 장애인이 그 버스를 이용하는 것을 보셨나요? 현실적으로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란 쉽지 않아요. 예전에는 택시도 쉽게 타지 못했어요. 승차거부가 워낙 많아 펜과 종이를 들고 서있어야 했죠. 승차거부를 하는 차 번호를 적으려고 하면 그제서야 택시에 탈 수 있었어요. 여전히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침해하는 건물도 많고요. 법이나 제도가 아닌 인식의 변화가 더 필요해요. 지금도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장애인 선수로서의 미래도 생각만큼 평탄치 않다. 한국 장애인 육상을 대표하는 선수지만 방송 출연이나 광고 출연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멀다. 은퇴 선수에 대한 대책도 미흡하다.

홍석만 선수는 현실을 비관하지 않고 열심히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에서 특수체육으로 박사 학위를 준비중이고 인생을 정리하는 자서전도 틈틈이 쓰고 있다. 훈련과 공부, 강의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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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퍼즐같아요. 겉으로 봤을 때는 다 똑같은 조각 같지만 각각의 조각이 딱 들어맞는 부분이 있잖아요. 이 사회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후배들을 생각하면 미래에 대한 고민을 더 진지하게 할 수밖에 없어요. 선수를 지도하고 싶고 장애인 스포츠 행정이나 실무쪽으로도 고민하고 있어요. 특수체육은 아직 전문적인 연구가 논의가 부족해요. 제가 발전에 일조하고 싶어요.”

그의 삶은 꼭 장애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한 번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언제나 배움에 목말라 있다. 두렵지만 언제나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

“경쟁자가 없어서 운동을 할 때 가장 힘들었어요. 자칫 잘못하면 현실에 안주하기 쉬운 환경이었죠.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해요. 완벽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1%라고 부족함이 있다면 찾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진지하게 인터뷰를 마친 홍석만은 훈련을 준비하며 가벼운 농담으로 동료들의 분위기 메이커 노릇까지 한다. 장비를 채우는 홍석만 선수가 다시 말을 건넸다.

“외국에서는 우리 같은 선수들을 월드 트레블러(Wolrd Traveller)라고 불러요. 세계 어디든 가니까요.”

웃으며 트랙을 향해 열심히 팔을 굴리는 홍석만 선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여행자라는 말이 그에게 맞춤옷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의 벽을 넘어 홍석만의 여행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용어설명

장애인스포츠에서 영문약자들은 장애 유형과 등급을 나타내는 국제적인 약속이다. 이니셜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면 장애인스포츠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다. 장애인스포츠에서 장애인등급은 만든 이유는 서로 비슷한 조건에서 공정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위 기사에서 나온 T53, T54에서 T는 트랙 경기를 의미한다. 51~58은 척수 장애를 뜻하며, 작은 수 일수록 장애 정도가 심함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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