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의 눈물일까, 달콤 짭짜름한 수프
티타의 눈물일까, 달콤 짭짜름한 수프
티타의 눈물일까, 달콤 짭짜름한 수프
2016.02.23 18:00 by 송나현

동화 ‘시골 쥐, 도시 쥐’ 속에 나왔던 지하실. 그곳에 한 가득 쌓인 음식은 봉인됐던 나의 ‘식탐’을 깨웠다. 이후 대하소설 ‘토지’를 보고선 콩나물 국밥을 사먹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곤 마들렌을 처음 접했다. 쿡·먹방 시대를 맞아 음식과 문학의 이유 있는 만남을 주선해본다.

 

하루 50잔의 커피를 마시고 대작을 써 낸 발자크. 커피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예술가들의 찬사를 받은 이유는? 그 쌉싸름함에 대해.

 내 생애 첫 수프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나온 에피타이저였다. 우리 가족이 자주 갔던 그 레스토랑의 수프는 양송이 모양의 얇은 페스츄리로 위가 덮여 있었다.

나는 그 페스츄리를 떼어 내어 수프에 찍어 먹었다. 그릇 위쪽에 단단히 붙어있는 가장자리는 별식이었다. 수프를 다 먹고 난 뒤 가장자리에 남아있는 페스츄리를 정성스럽게 떼어내 과자처럼 먹었다. 수프 뒤에는 더 화려하고 더 정성스러운 음식이 나왔겠지만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음식은 그 수프 뿐 이다.

미슐랭 스타급 맛집에 가서 수프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그 크림수프를 넘어서는 수프를 먹은 적은 없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본 고장인 ‘이탈리아’에 가서 수프를 먹어 봤건만 홍합과 여러 가지 해산물이 들어간 그것은 짜고 느끼했다.

사람들은 무슨 무슨 음식의 본 고장이라 하며 각 나라의 유명 레스토랑들을 찾아다니지만, 난 오리지널(original) 보단 퓨전(fusion)을 선호한다. 이탈리아에서 먹은 손바닥 만 한 접시에 담긴 2만원 짜리 수프보다 인스턴트 크림수프가 당기는 건 그 이유 때문일까.

달콤 짭짜름한 수프

 1970년 오*기에서 발매 된 이후 자취생들의 간단한 아침식사를 맡고 있는 크림수프.(스프라고 써있지만, 국어표기법상 '수프'가 맞다.)

누구나 간단하게 만들 수 있고 응용 방법도 다양하다. 시간이 넉넉하면 양송이나 데친 야채를 넣고 파스타나 빵을 잘게 찢어 넣어도 훌륭한 식사가 된다. 유럽식 식사의 기본이라고 여겨지는 수프는 사실 유럽식 ‘국’이라 볼 수 있다.

수프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맑은 수프(consomme) , 불투명한 수프 (우리가 주로 먹는 인스턴트 수프도 이 안에 들어간다) , 그 외 제철의 재료가 들어간 가정식 수프.

보통 우리가 자주 가는 레스토랑에서 수프가 에피타이저로 나오듯이 유럽에서도 수프는 에피타이저로 먹거나 이것저것 차리기 힘들 때 먹는다. 수프를 주 식사로 삼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주 식사로 삼는 나라는 대체로 식자재가 풍족하지 않은 나라다.

먹거리가 풍부한 서유럽에서 수프는 고급 대접을 받지 못하고, 비싼 레스토랑에서는 에피타이저로도 잘 나오지 않는다. 아니면 아주 진귀한 재료를 넣어 건더기가 주 일 때 먹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찌개는 주 요리로 나오지만 국은 식당이나 고급 한정식 집에서 곁들이 음식으로만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랄까.

수프의 역사는 기원전 6000년 전으로 올라가지만 상업용 수프는 통조림 제조업이 발명된 19세기에 널리 퍼졌다. 미국의 수프 회사인 켐벨 수프사에서 1897년 통조림에 들어간 농축 수프를 만들었다.

그렇다. 바로 이 수프. (사진 : photopin)

우리에게 친숙한 인스턴트 가루 수프는 통조림 수프와 비슷한 시기에 스위스 등지에서 만들어졌다. 분말 수프는 액체 수프보다 싸며 만들기도 간단하다. 물을 데워 수프를 풀기만 하면 된다니! 가히 음식계의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수프같이 간단한 음식도 변천에 변천을 거듭해왔다. 각 나라마다 요리법도 다르다. 노르웨이에는 말린 과일 수프도 있고, 훠궈(火鍋)도 중국식 수프의 일종이다.

티타의 눈물샘을 자극한 소꼬리 수프

멕시코에서는 어떨까. 멕시코 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타코와 퀘사디아이다. 수프같은 간단한 음식을 멕시코에 접목시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카를로스 뿌엔테스와 프리다 칼로의 나라. 그들의 정열과 혁명, 통찰을 담은 수프를 알고 싶다면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의 열두 개 장은 1년 열두 달의 이름이 붙어있다. 그리고 그 달을 대표하는 요리의 레시피로 시작된다. 인간은 음식을 먹어 배를 채워야 다른 본능에 눈을 뜰 수 있다. 이 소설은 사랑이라는 본능에 눈을 뜬 주인공들의 내면을 음식으로 다룬다.

라우라 에스키벨(Laura Esquivel) 

라틴 아메리카의 대표적인 현대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사벨 아옌데와 더불어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가로 꼽힌다.『달콤 쌉싸름한 초콜릿』(1990),『사랑의 법칙』(1995),『분출된 욕망Tan Veloz Como El Deseo』(2001)이 대표작.

정열이 가득 담겨 더욱 생생한 이 소설의 주인공은 라 가르사 가의 막내딸 티타이다.

티타는 강압적인 어머니 마마 엘레나의 고집에 따라 결혼하지 못한다. 전통에 따르면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보살피는 것은 막내딸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티타는 페드로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고, 페드로는 조금이라도 티타와 가까이에 있기 위해 티타의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한다. 이 결혼은 22년에 걸쳐 두 연인의 마음을 애태우고 죽이고 타오르게 만든다.

태어날 때부터 요리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인 티타는 자신의 감정을 죽인 채 감정이 담긴 요리들을 만든다. 이 요리들은 먹는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고 두 연인의 운명도 바꾸게 된다. 묘사된 문장을 읽기만 해도 군침 돌게 만드는 크리스마스 파이, 장미 꽃잎 소스의 메추리 요리 등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줄거리를 이끌어 나간다.

하지만 이 소설의 요리 중 티타를 가장 변화 시킨 요리는 소꼬리 수프이다. 소꼬리를 끓인 국물에 야채를 우린 묽은 수프를 넣어 다시 끓인 수프.

페드로와 로사우라, 조카 로배르토가 샌안토니오로 이사 간 후 실의에 빠진 티타.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대들어 쫓겨난 그녀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뜨개질만 한다.

그런 그녀를 변화 시킨 건 하녀 첸차가 집에서 어머니 몰래 끓여 가져온 소꼬리 수프였다. 어릴 적 자신을 돌봐 준 나차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정신을 차린 티타는 어머니에게 돌아가 그들의 한스러운 관계를 끊는다.

그 간단한 음식에 들어있는 수많은 추억, 사랑, 냄새, 만들던 순간들의 느낌들이 티타에게 활기를 다시 넣어준 것이다. 그 후 다시 집에 돌아온 티타는 정열적인 음식을 다시 만들어 내며 이야기의 결말을 매듭지어간다.

 이 관능적이고 매력적인 소설은 사람의 본성을 가장 잘 살린 소설이다.

의,식,주 모두를 다 다루고 있으며 사람의 동물적인 본능을 일깨운다. 달콤 쌉싸름하고 향이 넘쳐흐른다. 특히 실의에 빠져 활기를 잃은 사람이나, 답답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화려한 색깔과 다채로운 향들이 머릿속을 헤집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남미 소설 특유의 해학, 역사의 자연스러운 스며듦, 블랙 유머를 느끼고 싶다면 다른 소설을 찾으라. 이 소설은 위에 말한 바와 같이 ‘관능적인’ 소설이다. 깊이를 느끼기 보다는 잃었던 오감을 찾아주는 소설이다. 수프를 논했지만, 차라리 달콤한 초콜릿을 먹으면서 읽기에 제격인 소설.

그 달콤함에 손끝이 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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