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실수, 대륙의 실력, 대륙의 틈새
대륙의 실수, 대륙의 실력, 대륙의 틈새
2016.02.25 14:55 by 김광일

삶의 기본 터전이자 안식처 ‘집’. 하우스푸어, 미친 전세값, 깡통주택 등으로 대변되는 주거대란 시대에 직접 도전해봤다. 업 스케일 DIY ‘스스로 집짓기’ 편.

해외 직구를 통해 필터 득템(3만원대). 송풍팬 6천원. 하우징(케이스=골판지) 동전 몇 닢.

자력갱생소 세 번째 이야기. 이번엔 직접 만드는 공기청정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일본의 60만원대 공기청정기 모방 제품을 3분의 1 가격에 출시한 대륙의 실력. 필자는 이에 맞서 똑같은 필터를 이용해 단돈 4만원으로 공기청정기를 만들어 보았다. 이른바 '대륙의 틈새'를 공략한 결과다.

 

| 대륙의 실수, 대륙의 실력

용어 정리부터 해야겠다. ‘대륙의 실수’란 말은 원래 초창기 중국제품의 제조품질을 비하하는 의미인 ‘마데인차이나’라는 말에서 시작됐다. 형편없는 물건만 만들던 중국의 개발자들이 간혹 놀라운 제품을 만드는 데, 이걸 보고 ‘이것은 어쩌다가 실수로 잘 만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한국인들의 인문학적 소양이 듬뿍 담긴 표현이랄까. 하지만 다작을 하다보면 결국 한 획을 긋게 되는 법. ‘다+ㅣ=대’로 대작이 되는 이치다.

UNIC의 7만원 짜리 빔 프로젝터.(사진: www.aliexpress.com)
SJCAM의 짝퉁 고프로 SJ4000. 우리 돈 약 9만원이다. (사진: www.gearbest.com)
TAKSTAR의 헤드폰 HD6000. 6만원 대 제품이지만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제품과도 견줄만하다는 평가. (사진: www.aliexpress.com)

결국 그렇게 대륙의 실수는 대륙의 실력이 되어 갔다. 어쩌다 한번이면, 우연이고 실수라고 여길 수 있지만 빈번하여 패턴화 되면 결국 실력으로 인정하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게 대륙의 실력파 기업 ‘샤오미’다. 중국제품의 브랜드 인지도를 확 바꾼 기업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 ‘알리바바’도 있고 ‘화웨이’도 있다. 모두 기존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을만한 매우 위협적으로 성장하는 회사들이다. 모방제품이라고 비난을 하는 소인배들이 많지만 사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수없이 모방을 해왔으니 뭐라 할 만한 게 못 된다. 경영학에선 모방이라는 말보다는 벤치마킹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뭔가 있어보이게 포장했으나 결국 ‘베낀다’는 말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이번에는 샤오미가 만든 공기청정기의 틈새를 찾아 널리 인민을 구제할 수 있는 민중의 제품 제작기를 소개하겠다.

공기청정기는 이제 생활필수품이다. 시중에 나온 제품 만해도 그 종류가 수십 종이다. 디자인은 수백 가지에 이르고, 공기정화 방법도 필터, 정전기, 물 등 참으로 다양하다. 심지어 인체 공기정화기도 소개된 바 있지 않나.(중국에 황사가 극심하던 날. 한 대학교에서 전교생을 운동장으로 불러낸 후 달리기를 시켜 미세먼지를 마셨다는 ‘스모그와 싸워 이겨라!’ 캠페인)

'스모그와 싸워 이겨라!' (사진: YTN 보도화면)

필자가 민중의 제품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눈여겨 본 건 일본 ‘발뮤다’의 공기청정기다. 마치 스티브잡스가 공기청정기를 만든다면 이렇게 만들겠구나 하는 상상을 자아내게 하는 깔끔한 디자인. 사과마크만 없다 뿐, 마치 조너선아이브(애플의 수석디자이너)의 영혼을 그대로 담은 것 같았다.

발뮤다 에어엔진(사진: 발뮤다코리아)

그 제품을 본지 3년 만에 거의 똑같은 제품이 중국 샤오미에서 출시되었다. 가격은 1/3 수준. 성능은 비슷한데 가격이 싸다. 아마도 고가의 발뮤다 제품은 중국에서 성적이 신통치 않을 거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국내 모 오픈마켓에서 샤오미 공기청정기를 1000대 가량 수입판매 했는데, 엄청난 인기몰이로, 단기간에 재고가 소진됐다고 한다. 특히 샤오미는 마니아들의 온라인 카페가 따로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현재 네O버의 샤오미 카페 회원수는 14만4000명으로 급성장하는 추세다.)

샤오미 에어. 발뮤다 에어엔진과 흡사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사진: 샤오미)
후속모델인 샤오미 에어2 (사진: www.aliexpress.com)

샤오미는 그야말로 ‘대륙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국내에는 초저가 대용량 배터리로 브랜드를 알리더니, 샤오미 스마트폰으론 삼성의 전화기를 일개 거품 폰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삼성과 애플을 그대로 벤치마킹한 것 같은 디자인(디자인이 좋단 얘기다.)에 가격은 충격적으로 저렴하고, 제품의 완성도는 은근히 높다.

샤오미의 블루투스 스피커. 우리돈 약 2만원. (사진: www.aliexpress.com)
샤오미의 스마트밴드 '미 밴드'. 가격은 1만원 대(사진: www.gearbest.com)
올 3월 출시 예정인 샤오미 Mi5. 가격은 우리 돈 38만원 대부터라고 한다.

이렇게 샤오미가 만들면 뭔가 다르다는 인식이 널리 퍼질 즈음, 샤오미의 개발자들이 공기청정기를 만든 것이다. 대륙의 실력으로 공기청정기를 만들었으니 얼마나 완성도가 높을까? 제품은 실제로 일본산 제품 발뮤다의 ‘에어엔진’과 마감이나 성능이 동일하거나 더 좋다. 브랜드 인지도도 더 높다.

발뮤다 제품의 가격은 69만9000원. 필터는 탈취필터세트 포함해서 12만원이다. 샤오미 공기청정기의 가격은 24만원에 필터가 4~5만원 수준. 대륙의 실력은 카피캣을 만드는 제조능력과 놀라운 가격에 있다.

자, 샤오미의 가격은 물론 적절하다. 하지만 이 가격보다 더 낮추어 볼 수 있는 여지를 이번 회에서 소개하겠다. 이름하야 대륙의 틈새다. 이 틈새는 90%의 대중을 위한 적정기술적 철학을 반영하기에 상세하게 제작 방법을 공개하도록 하겠다.

 

| 대륙의 틈새: 하우징의 기술

우선 필터를 구매했다.(필자는 해외 직구를 통해 구입했지만, 국내 오픈마켓에서도 구입 가능하다.) 눈과 촉감으로 일차 검사를 마친 후 드는 키워드는 ‘신뢰’다. 제품의 마감과 완성도가 발뮤다의 공기청정기 필터와 동일하다. 심리적으로는 그 이상이다. 이유는 싸니까. 이 가격에 이정도의 제품이라면 ‘가성비’ 최고다.

공기청정기의 필터는 주기적으로 교환해야 하는 소모품이다. 그러므로 별도 구매가 가능하다. (사진: 샤오미)
샤오미 에어1, 2 모두 호환되는 필터. 모델명은 M1-FLP. (사진: 김광일)
'메이드 인 차이나'의 위엄. (사진: 김광일)
샤오미 공기청정기 필터를 포장 박스에서 꺼낸 모습. 필터 윗부분에 팬을 설치하려고 한다. (사진: 김광일)

이제 여기에 저가의 송풍팬(1500RPM 이상되는 120mm 25T Fan, 주로 PC 본체 등 전자제품의 발열을 냉각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것)만 설치하면 된다. 팬이 빨아들이는 공기가 필터를 통해 걸러지면서 공기정화효과를 얻게 되는 원리다. 팬을 필터에 안전하게 고정시키려면 하우징(케이스)이 필요하다. 우선 필터의 사이즈를 자로 꼼꼼히 측정한다. 내경, 외경, 길이 그리고 형태를 재고 살핀다.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 간단하게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종이에 도면을 몇 장, 그리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리고 어떻게, 무엇으로 만들지 결정한다. 필자는 골판지를 선호하지만 이번에는 플라스틱으로 하우징을 제작하겠다.

AUTOCAD 123D로 설계한 필터 하우징. (사진: 김광일)

마침 3D프린터가 눈의 띄어 ‘AUTOCAD 123D’로 간단하게 디자인을 마친 뒤 곧바로 출력을 했다. 처음에는 프린터를 보정(캘리브레이션)하지 않아서 무슨 플라스틱 뭉치가 출력이 되었다.

무슨 플라스틱 뭉치 같은 게 출력됐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 (사진: 김광일)

두어 시간 후에 떡 하니 만들어진 출력물은 다소 조악했지만 워낙 설계를 잘했기(?) 때문에 공기청정기 필터에 장착해보니 딱 맞았다. 필터위에 송풍팬을 장착한 형태다. 필터가 구조적으로 튼튼하여 그냥 누드형식의 디자인으로 제품 제작을 결정. 뭔가를 덧대는 것은 무의미하다. 절제와 누드의 아름다움으로 내용물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디자인. 애플도 아이맥이라는 내장부품을 볼 수 있도록 투명한 재질로 케이스를 만든 적이 있었다. 이 부분을 살짝 적용하여 최종 디자인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봤다.

두 번째 출력물은 제대로 빠졌다. (사진: 김광일)
워낙 설계를 잘했기(?) 때문에 필터의 통기구와 딱 맞았다! (사진: 김광일)
플라스틱 하우징을 완성해 필터에 부착한 모습. 이대로 전원을 연결하면 공기청정기가 된다. (사진: 김광일)

향후 더욱 다양한 디자인을 할 계획이다. 지금은 공사가 다망하여 적당한 선에서 중용을 찾으려 한다.

곧 황사의 계절이 다가온다. 우리나라는 편서풍의 영향으로 5월 전까지 대륙의 황사가 엄습하는 지역이다. 황사가 머금은 초미세먼지와 중금속은 당신의 생명을 확실하게 단축할 수 있다. 실제로 노약자가 미세먼지에 노출되면 혈전, 폐질환, 뇌세포 파괴 등이 온다고 한다. 중국과 인도에서는 초미세먼지로 인해 매년 55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특히 어린아이가 미세먼지를 많이 마시면 뇌의 모세혈관에 축적되어 뇌세포발달에 장애가 온다는 연구결과까지 있다. 쉽게 말해 미세먼지 많이 마시면 머리가 나빠진단 말이다. 가난해서 주거환경이 나쁘고 나중에 머리도 나빠지면 안 되지 않나. 지식기반사회에서 머리가 나쁘다는 것은 기회와 희망도 함께 사라진단 뜻이다.

(사진: Tom Wang/shutterstock.com)

이러한 재난 지향적 환경에서 생활하는 분들 즉, 환경난민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로 공기청정기를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하우징을 만들어 보았다. 황사시즌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대륙의 틈새 ‘샤오미 공기청정기 하우징’이다.

참고로 3D Printing을 할 수 없다면 골판지로 적당하게 잘라서 외관을 만들고 글루건으로 마무리를 하면 된다. 필터 케이스가 종이박스로 되어 있는데 종이 재질이 견고하여 공기가 지나갈 수 있도록 사진과 같이 칼로 통풍구를 만들어 주면 멋진 외관이 완성된다. 여기에 필자가 제작한 골판지 공기청정기의 핵심(?)부품을 장착하면 멋진 콜라보레이션 가전제품이 탄생되는 것이다.

물론 골판지로도 송풍팬 하우징을 만들 수 있다. 필자는 본인이 2014년 상용화한 골판지 공기청정기의 하우징을 사용했다. (사진: 카드보드아트컬리지)
팬의 크기를 재서 골판지를 재단하면 된다. 바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알맞게 원형으로 자른다. (사진: 카드보드아트컬리지)
필자는 골판지에 구멍을 뚫어 플라스틱 버튼으로 팬을 고정시켰다. 이런 부품이 없다면 송풍팬 테두리에 글루건을 쏴서 골판지 하우징과 접착하면 된다. (사진: 카드보드아트컬리지)
팬 하우징을 필터에 고정시킨다. 송풍팬과 필터 사이로 바람이 새 나가지 않도록 글루건으로 꼼꼼하게 고정한다.
필터 하우징은 배송에 사용됐던 포장 박스를 그대로 다시 활용하면 된다. (사진: 김광일)
골판지 하우징만으로 공기청정기가 완성됐다! (사진: 김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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