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셈으로 밤샐 셈?
곱셈으로 밤샐 셈?
2016.03.04 10:01 by 시골교사

초등학교 생활의 운명을 가를 담임선생님과의 첫 만남. 모두가 하나 되는 축제, 독일 초등학교 입학식 현장을 가다.

“이런 속도로 배워선 절대 경쟁에서 이길 수 없어요!”

모스크바 출신인 사라(Sahra)의 일갈. 그녀는 킬(Kiel) 대학교 연구원으로 일하게 된 남편을 따라 독일에 왔다. 큰아이 친구인 나티야의 엄마이자, 나와는 유일하게 마음이 맞는 동지. 만날 때마다 자녀 교육과 생활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았는데, 외국인이란 동질감 때문인지 의기투합하게 되는 부분도 많았다. 대표적인 게 초등학교 저학년 교육에 대한 조바심과 불만. 느려도 너무 느린 교육속도와 끝없는 반복학습에 대해서다. 참고로 모스크바의 교육열과 경쟁은 한국의 그것에 못지않다.

남편의 (연구원)계약기간이 끝나면,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라. “본국으로 돌아가면 뒤쳐 질 텐데…”라는 걱정을 달고 살더니, 급기야 수학과목 만큼은 본인이 직접 나섰다. 학교 진도와 상관없이 아이를 따로 붙들고 가르쳤던 것이다.

‘수포자’되면, 대학길 막히는겨(사진:Syda Productions/shutterstock.com)


| 구구단 없는 수학공부

‘왜 구구단 외는 소리가 들리지 않지?’

큰 아이가 2학년이 된지 한참 지났을 무렵, 문득 생겨난 궁금증이다. 그맘때쯤 소리 내서 구구단을 외우던 옛날 생각도 나면서 말이다. 그런데 뒤늦게 알게 됐다. 이곳엔 구구단이 아예 없고, 가르쳐주지도 않는다는 걸 말이다.

뭐야, 구구단 서양에서 온 거 아녔어?(사진:Elena Medvedeva/shutterstock.com)

 

| ‘이이는 사, 이삼은 육, 오오 이십오…’

우리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소위 ‘영혼 없이’ 구구단을 외지 않았던가. 바로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구구단을 통해 곱하기의 원리를 기계적으로 외우게 하지 않고, 늦지만 아주 천천히 원리를 깨우치게 할 뿐이었다. 그것도 ‘바둑알’을 이용해서 말이다.

큰아이는 1학년 내내 숫자 1에서 30사이에서만 더하고 빼기를 반복했다. 그것도 공책에 일일이 바둑알을 그려가면서 방법을 익혀갔다.(이때 절대 손가락은 쓰지 못하게 한다.)

2학년 때는 곱하기와 나눗셈을 익힌다. 곱하기와 나누기에도 역시 바둑알이 등장한다. 바둑알을 하나하나 그리고 묶고, 그 묶음 안에 몇 개의 바둑알이 들었는지, 바둑알이 몇 묶음으로 묶이는지를 반복학습을 통해 배워갔다. 그 방법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바둑알을 그리는 대신 머릿속으로 바둑알을 그리며 계산하도록 했다. 이런 반복학습을 통해 숫자의 정확한 계산 능력을 형성시키고 곱하기와 나누기의 원리를 깨우치도록 돕는 것이다.

나와 사라가 복장 터질 뻔 했던 이유다. 바둑알, 바둑알이라니… 하지만 난 사라처럼 아이를 붙들고 가르칠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느린 학교 교육이라도 잘 따라가 주길 소심하게 바랄 뿐이었다.

구구 팔십일… 바둑알 여든 개를 언제 그리죠?(사진:Rawpixel.com/shutterstock.com)


| 참고서가 필요 없는 학교공부

그렇다. 나는 아이들 학습과정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가끔씩 책가방에서 아이들의 노트를 살펴보는 정도였다. 수업시간에 무엇을 배우는지, 어떻게 배우는지, 혹시 어려워서 해매는 내용은 없는지… 딱 그 정도다. 사실 그건 직업상의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 초등학교에서 어떤 내용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탐색하고 싶었던 거다.

그 확인과정에서 알게 된 것 하나. 독일에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외에 따로 부교재나 참고서가 전혀 (필요)없다!

수업시간, 특히 수학과 독일어 과목은 수업시간 내에 충분한 학습이 이뤄진다. 해당 과목 내용을 따로 보충할 필요가 없을 만큼 말이다. 1학년 수학교과서엔 깨알 같은 글씨(A4크기에 10포인트 정도)로 연습문제가 빼곡히 적혀있었는데,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풀이와 교사의 확인채점이 수업시간마다 꼼꼼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부족한 연습은 매시간 나눠주는 학습지를 통해 다시 한 번 이뤄진다.

독일의 초등학교 2학년 수학책 中(사진 제공:시골교사)

교실 안에서 (교과서와 학습지를 통해) 충분한 연습이 이뤄진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학교에만 맡겨도 해당 교육과정에 맞는 학습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신뢰감이 생기고 마음이 놓였다.

국어, 수학 같은 과목이 이러할 진데, 다른 교과는 말할 것도 없다. 참고서 같은 건 아예 구경도 못한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수반된다.

일단 교과 내용이 교사재량이다. 교사가 재량껏 짜는 커리큘럼에 참고서가 있을 리 만무하다. 시험방식도 객관식은 아예 없다. 모든 과목시험이 단답형 내지는 서술형이다. 거기다 중학교부터는 구두시험이 추가되기 때문에 문제풀이 식 공부와 그에 필요한 참고서가 전혀 필요치 않다. 또한 중‧고등학교가 통합되어 있어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따로 없고, 대학진학도 고등학교 자체별 졸업시험 성적으로 이루어진다. ‘모의고사’ 문제집 같은 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시험방식과 진학제도 덕분에 학생들은 빨리, 많이, 그리고 먼저 상급학년의 내용들을 익힐 필요가 없다. 그저 부담 없이 당해 학년의 내용만 충실히 익히면 그만이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그것 밖에 없으니까요.(사진:sakkmesterke/shutterstock.com)

1,2학년 때 그렇게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던 학습 진도는 3학년이 되면 제법 빨라지고 어려워진다. 여기서 어렵다는 것은 학습량이 많아진 다기 보단 내용에 깊이가 생긴다는 의미다. 자연이나 실과 같은 과목들이 특히 그렇다. 수학도 2학년 때까지 주로 숫자 50이하에서 놀던 덧셈‧뺄셈‧곱하기‧나누기가 그 이상의 숫자 개념으로 올라간다. 학년 수준에 맞게 응용문제들도 제법 다뤄진다. 하지만 1학년 때부터 해오던 반복학습만큼은 초등학교 졸업까지 계속 이어진다.

큰아이 담임교사의 말에 의하면 중학교, 특히 인문계학교에 올라가고 나면 이런 반복연습은 더 이상 없다고 한다. 그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공부하는 습관과 방법은 이미 초등학교에서 충분히 익혔잖아요. 게다가 개인의 능력에 맞게 학교가 정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의 반복학습은 지루함만 더할 뿐이에요. 초등학교 졸업 후의 학습은 개인의 몫이죠.”

   

시골교사_2_이모저모

독일교육 이모저모

‘다문화 가정은 말문이 막힙니다’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다문화 가정에 속합니다. 그래서 큰아이와 작은 아이는 의무적으로 방과 후 독일어 수업을 들어야 했죠. 일주일에 두 시간씩 꼬박꼬박 이뤄졌습니다. 이는 당시 불거졌던 독일 교육수준 저하원인을, 늘어나는 외국인에게 돌리면서 나온 자구책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이 부딪히는 언어장벽은 결국 독일 사회에서 낮은 사회적응력과 사회통합의 저하를 가져오고, 그것은 다시 각종 사회문제와 범죄를 일으킨다는 것이죠. 이는 현재까지도 독일이 안고 있는 고민이기도 합니다.

큰 아이 반의 경우는 전체 25명 중 8명, 다시 말해 반의 약 30%이상이 다문화 가정이었어요. 그 중 대부분은 터키 아이들인데, 그들의 부모, 즉 이민 1세대는 독일어로 의사소통 정도만 하는 게 고작이었어요. 이는 그들의 독특한 문화에 기인한 것이죠. 터키 사람들은 특정 지역에 모여 살며, 모국어를 사용하고, 그들만의 문화를 고집하거든요.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독일어 발음이나 어휘력이 독일 또래 아이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집니다. 이는 곧 성적부진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저조한 고졸 졸업율과 사회부적응으로 연결되죠.

외국인들의 언어장벽은 독일의 사회문제 중 하나다.(사진:Suzanne Tucker/shutterstock.com)

비단 터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 가족 역시 언어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큰아이의 독일어 성적에서도 여실히 나타났죠. 초등학교 1학년 때 독일어 평가를 받으면, ‘관사를 정확히 사용하며 말하고 있는가?’의 평가항목에서 딸아이는 ‘종종 실수가 있다’라고 적히곤 했습니다. ‘der’, ‘die’, ‘das’ 같은 관사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를 실수하면 독일 사람들에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들린다고 해요. 하지만 그 부분은 외국인인 엄마조차 고쳐줄 수 없었죠. 독일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무의식적으로 익히는 걸, 나 역시 나이 들어 억지로 외우기 시작했으니까요. 관사사용이 정확하지도 않은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니 실수를 안 하는 게 더 이상한 거죠.

아이가 크면 클수록 독일어 장벽이 점점 더 두터워지고, 부모도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새로운 개념을 물어올 때 독일어로 가르쳐주자니 내 독일어 실력이 부족하고, 한국말로 설명해 주자니 아이가 한국어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해서 난감했던 적이 많았죠. 결국 아이를 위해 택한 차선책은 책이었습니다. 책을 통해 아이 스스로 문제를 풀어가도록, 아니 스스로 극복해 나가기만을 기대할 뿐이었죠.

 

다음이야기숫자가 갖는 의미를 해석하는 수학문제 vs. 억 단위, 조 단위가 난무하는 수학문제. 한‧독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 전격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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