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지켜주니까 좋아요, 고마워요"
"옆에서 지켜주니까 좋아요, 고마워요"
"옆에서 지켜주니까 좋아요, 고마워요"
2014.07.14 23:15 by 조철희
경찰 제복 입은 60대~70대, 시흥시 실버캅 근무 현장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1일, 경기도 시흥에는 3일째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하루 중 가장 더울 무렵인 오후 2시 경, 시흥시 능곡초등학교 앞을 찾았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속속 교문을 빠져나왔다.

“잠깐, 잠깐! 다음에 건너가야지!”

한 아이가 왕복 4차선의 도로를 한달음에 내닫으려다 멈춰 섰다. 횡단보도의 보행 신호가 곧 빨간불로 바뀌었다. 아이를 돌려세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규현(67) 씨. 그는 현재 시흥시노인종합복지관 소속 ‘실버캅’ 대원이다. 제복을 갖춰 입고 모자를 눌러 쓴 모습은 흡사 진짜 경찰 같다.

 

김규현 시흥시 실버캅 대원이 아이들의 하굣길 교통지도를 하고 있다.


 

“덥다고 애들이 학교 안 오나. 날씨야 어떻든 애들이 학교에 오면 우리도 일 하러 오는 거지.”

이렇게 더운데도 근무를 하냐고 물으니 옆에 있던 허영범(72) 대원이 거들었다. 이들은 이따금씩 그늘막에 피해있다가도 아이들이 나오기만 하면 횡단보도 앞에서 맞았다. 아이들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듯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빼먹지 않았다. 어떤 아이는 장난스레 거수경례로 인사를 대신하기도 했다. 서로를 대하는 모습에 익숙함이 묻어났다.

 

실버캅2


 

실버캅 대원들은 그 자리에 두 시간을 더 머물렀다. 고학년 아이들의 하교가 끝나는 오후 4시가 다 돼서야 발걸음을 돌렸다.

시흥시 실버캅은 시흥시노인종합복지관의 노인일자리 사업 중 하나다.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해 1년 4개월째를 맞았다. 65세 이상의 남녀로 구성된 대원 10명이 2명씩 한 조를 이뤄 활동한다. 담당 업무는 크게 두 가지다. 아이들 교통지도 외에도 시내 경로당 등을 돌며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시흥시 실버캅 대원들의 보이스피싱 예방교육 모습. 이들은 지역 노인들에게 가장 쉽고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사진=시흥시노인종합복지관 제공


 

실버캅이 시흥시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흥시 실버캅에는 하나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경찰 복장을 하고 활동한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형 일자리의 경우 참여자가 느끼는 자기만족감이 큰 편인데요, 어르신들께 제복을 맞춰드리니 더욱 자긍심을 가지고 활동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저희 복지관 노인일자리 사업 중 실버캅 어르신들의 출석률이 가장 좋아요. 이 분들, 감히 ‘노인 일자리계의 자존심’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시흥시노인종합복지관의 사회참여지원팀에서 노인일자리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강서현씨는 실버캅 대원들에 제복을 제공한 것이 큰 동기부여가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제복을 입고 근무하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기획 단계서부터 실버캅이라는 이름에 맞게 꼭 제복을 맞춰드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원 받는 시비만으론 불가능했죠. 게다가 실제 경찰이 아닌데 경찰 복장을 하는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더라고요.”

실버캅 기획 초기를 떠올리며 이수연 사회복지사가 말했다. 이런 문제들은 사업 취지에 공감한 여러 사람들의 협조와 도움으로 넘어설 수 있었다고 한다. 제복을 입는 것은 시흥경찰서와 협의를 통해 관련 교육을 이수하는 것으로 가능하게 됐다. 비용 문제는 해피빈 등을 통한 소셜 기부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학교 앞 교통지도 출동 준비로 분주하다.


 

제복은 단지 실버캅 대원들에만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오는 데 그치지 않았다. 허영범 대원은 “운전자와 보행자들이 우리 앞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일이 없다”며 제복이 실제로 교통지도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1년여 활동을 이어오면서 보람된 일도 많았다. 최복열(79) 대원은 한 아이가 사탕을 쥐어줬던 때를 떠올리며 “이 일을 하면서 오히려 우리가 기운을 받는다”고 말했다. 강서연씨는 학교 측의 감사 인사를 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담당자로서 큰 힘이 됐다고도 했다.

“하루는 복지관 인근 초등학교에서 전화가 왔어요. 아침 교통지도는 학부모가 담당해주시지만 하교시에는 딱히 맡아줄 분들이 없어 걱정이었는데 덕분에 마음이 놓인다며 고맙다는 말씀이었죠.”

학교 측의 걱정이 괜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시흥시는 경기도내에서 어린이 교통사고 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10월 경기도가 발표한 자료에서 시흥시(5곳)는 성남시, 남양주시와 함께 안산시(8곳)에 이어 두 번째로 보행 어린이 교통사고 다발지역이 많은 곳으로 나타났다.

“옆에서 지켜주니까 좋아요. 고마워요.”

이날 하굣길에 만난 하이주(능곡초등학교 4학년) 양의 말이다. 하 양 외에도 많은 아이들이 “지켜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했다.

시흥시 실버캅 대원들은 현재 능곡초등학교, 승지초등학교 등 시흥시내 10여 개소에서 아이들의 교통안전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겠다”는 대원들. 오랜 세월의 경험과 지혜로 우리 사회의 빈 곳을 채워가고 있다.

 

(왼쪽부터)안상봉(67), 엄성현(77), 남상숙(64), 김광우(76), 정정옥(67), 허영범(72), 김규현(67), 권병호(68), 최복열(79) 대원
필자소개
조철희

늘 가장 첫번째(The First) 전하는 이가 된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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