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에 생각나는 매콤한 메밀전병
메밀꽃 필 무렵에 생각나는 매콤한 메밀전병
메밀꽃 필 무렵에 생각나는 매콤한 메밀전병
2016.03.21 23:31 by 송나현

동화 ‘시골 쥐, 도시 쥐’ 속에 나왔던 지하실. 그곳에 한 가득 쌓인 음식은 봉인됐던 나의 ‘식탐’을 깨웠다. 이후 대하소설 ‘토지’를 보고선 콩나물 국밥을 사먹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곤 마들렌을 처음 접했다. 쿡·먹방 시대를 맞아 음식과 문학의 이유 있는 만남을 주선해본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던 잡채. 그런데 풍성한 잡채를 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아렸던 이유는 뭘까? '외딴방'을 통해 만나 본 잡채의 속 사정

2년 전 처음으로 메밀전병을 접했다.  그날 난 친구들과 춘천을 방문해 한참을 구경하며 놀다가 근처에 있는 막걸리집에 들려 모듬전을 시켰다. 오색찬란한 모듬전이 나무 탁자에 떡 하니 올라왔는데, 그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던 녀석이 바로 '메밀전병'이었다. 

1458026291308

처음 보는 그 자태에 눈길을 빼앗겼었다. 호박전과 김치전, 돼지고기전 등 각종 전류가 사방에 펼쳐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눈과 손은 메밀전병 쪽을 향했다. 메밀가루가 잔뜩 들어가 쫀득쫀득한 겉옷과 매콤한 김치가 버무러진 소. 매운걸 못 먹는 나는 한 입 베어물곤 급하게 막걸리를 들이켜야 했다. 코가 찡할 정도로 매운 맛은 강했고 혀를 마비시켰다.  

하지만 그 쫀득쫀득하면서도 아삭하고 깔끔한 맛은 중독성이 강했다. 달달하고 톡 쏘는 막걸리와의 궁합은 파전 저리가라였다. 그날의 히로인은 단연코 메밀전병이었다. 우리는 그 날 밤을 술로 지새웠다. 막걸리를 몇 병 먹었는지 세지도 못 할 정도로. 이는 모두 메밀전병 덕분(혹은 때문)이다. 다음날 강렬한 숙취의 원흉 역시 막걸리가 아닌, 메밀전병이었다. 

그러나 난 지금도 가끔 그 매콤한 메밀전병이 생각난다. 겉은 밋밋하기 그지 없지만 속은 알찬, 반전의 매력 메밀전병.

 매력덩어리 메밀전병을 널리 알린 공신 '메밀꽃 필 무렵' 

 메밀전병. 강원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음식 중 하나다. 차를 타고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식당마다 큰 글씨로 적어놓은 메밀전 혹은 메밀전병. 강원도 토속음식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음식이 아닐까. 메밀전병이 강원도를 강타하고, 사람들이 강원도까지 가서 그 음식을 찾는 건 '메밀꽃 필 무렵'의 여파 때문일 거다. 고등학교 시절 언어 모의고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단골 문학.

어릴 적 학교에서 이 작품을 배울 땐 허생원의 유별난 당나귀 사랑이 왠지 모르게 눈꼴 사납고 보기 껄끄러웠다. 은유적으로 표현된 봉평에서의 하룻밤도 내겐 너무 외설적으로 다가 왔었다.  아마, 숨겨진 표현들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던 우리말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다시 읽는 메밀꽃 필 무렵은 아름답고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그런 작품이다.

작가 이효석은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되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에서 출생했다.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주요 소재로 삼는 그의 소설적 경향은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자란 유년시절의 경험에서 나온다. 사실 소설보다는 시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우리 말 어휘들과 복선, 상징등으로 가득찬 이 소설은 시의 유려함에 비견할 만 하다. 특히 봉평에서 대화까지의 길에 대한 묘사는 한국 문학사 상 가장 아름다운 묘사로 꼽히기도 한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흔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엄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힌 지경이다.”

원본으로 보고 있자면 우리말 사전을 펼쳐놓고 찾아야 하는 단어가 한 두 개가 아니다. 하지만 그 고심해서 선택된 단어들이 내뿜는 열기와 이지러지는 빛이 우리를 그 짧은 소설로 끌어 당긴다.

문체의 구사나 어휘 뿐만이 아니다. 허생원과 나귀가 같은 세월을 보내면서 맺은 끈끈한 정을 나타내는 숨겨진 구조들, 동이와 허생원이 부자지간을 나타내는 은밀한 복선, 자연과 인간을 잇는 고리에 대한 탐구 등, 이 많은 것들이 그 짧은 소설안에 응축되어 서로를 보완하며 열린 결말을 만들어 낸다. 열린 결말이라고 해서 '왜 이렇게 끝난거지?'라는 의문을 자아내는 게 아니라 누구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책을 덮게 해준다 .

소설의 줄거리는 온 국민이 알고 있으니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이 산뜻하고 애틋한 소설은 한국 소설의 명작이며 길이 남아야 한다. 단편소설을 잘 읽지 않는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몇 번을 다시 들춰보았는지.

이렇게 유명해진 소설의 이름 덕에 ‘메밀전병’은 우리나라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음식이 되었다. 사실 맛있기도 하다. 내 숙취를 불러일으킬 만큼 중독성있는 맛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 소설에서 메밀에 대한 묘사는 두 번 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것도 자연의 일부로만. 하지만 소설의 전체 내용은 몰라도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는 소설 덕에 메밀은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사이드 메뉴로 승부를 본 메밀

메밀은 서늘하고 습한 기후와 메마른 토양에서 잘 자라며, 병충해 피해도 적은 편이고 생장 기간이 상당히 짧아 주로 산간 지방의 작물로 많이 재배된다. 한국의 주요 생산지는 강원도 지역으로, 특히 평창군이 유명하다. 그런데, 메밀꽃의 냄새는 책에서 표현한 것처럼 서정적이지 않고 오히려 굉장히 악취라고 한다.

사실 맛도 별로 뛰어나지 않다. 밀보다 낮은 취급을 받는 그런 곡물이다. 식감은 어찌나 까칠한지 밥에 넣어먹으면 입천장 까지기가 일쑤다. 하지만, 살아남아야겠다는 식물의 의지였는지, 메밀은 가루가 되어 반죽이 되었다. 밥이 주식인 우리나라에서 사이드 메뉴를 자처하며 살아남은 곡물이다. 메밀국수, 메밀전, 메밀묵, 그리고 메밀전병.

그 중 메밀전병은 메밀가루를 묽게 반죽해서 무, 배추, 고기 등을 소로 넣어 말아 지진 것이다. 지역마다 소가 다양한데, 강원도에서는 송송 썰어 양념한 갓김치를 넣으며, 최근에는 배추김치와 돼지고기 소를 넣는다고 한다. 반죽은 떡처럼 쫄깃하고 김치를 넣은 소는 아삭해서 밸런스를 잘 잡아준다. 따끈한 음식이지만 차가운 기운을 몸 속까지 떠밀어 주는 이 음식은, 막걸리 한 잔과 함께 여름에 먹어야 제 맛이다.

은평시민신문

날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 아직까지는 코트를 입고 돌아다녀야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작열하는 태양 사이로 여름이 찾아올 것이다. 달빛이 쏟아지고 메밀꽃이 피어날 무렵, 그런 여름밤에 메밀전병 한 젓가락 집어 막걸리와 함께 먹어보자. 허생원마냥 숨겨놓았던 사랑 이야기가 터져 나와 새로운 인연의 손을 잡게 될 지도 모른다.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자본과 인력, 인지도 부족으로 애를 먹는 스타트업에게 기업공개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단숨에 대규모 자본과 주목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 파트너와 고객은 물론, 내부 이...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현시점에서 가장 기대되는 스타트업 30개 사는 어디일까?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