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업적, 끝나지 않은 수수께끼 - 대피라미드  
위대한 업적, 끝나지 않은 수수께끼 - 대피라미드  
2016.03.24 11:22 by 곽민수

파피루스 기록물을 통해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상을 그렸던 ‘고대 이집트 엿보기’. 이제 그 현장으로 직접 가본다. 이집트 연구가 곽민수의 두 번째 연재물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유적 기행’은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집트의 매력을 소개하고, 현지 유적을 통해 5000년 전 역사속 세계로 초대한다.

수 천 년의 역사가 내려다보는 도시 ‘기자(Giza)’와 그곳에서 만난 로제타 스톤의 기구한 운명

카이로 도심에서 남쪽으로 2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기자(Giza)는 카이로 광역권에 속하는 카이로의 위성도시입니다. 하지만 기자는 동시에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이집트에서 인구가 세 번째로 많은(약 300만) 독립된 거대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기자 고원의 대피라미드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고원은 이 기자시의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기자 도심은 카이로 중심가와 지하철로도 연결되어 있기 기자 피라미드군에 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카이로 도심에서 지하철을 타고 기자역에 내려서 택시를 타면 앞서서 사카라나 다슈르에 갔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쾌적하게 유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카이로의 지하철 노선도. 아프리카에서는 ‘유이’한 복수 노선 지하철 가운데 하나(나머지 한 곳은 남아프리아공화국의 케이프타운). 카이로의 지하철은 현재 3개의 노선이 운영 중인데, 이중 기자역은 2호선으로 ‘주황색’ 라인입니다.
카이로의 지하철 역 플랫폼
기자의 도심 거리
기자 피라미드군을 나타내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저 멀리 대피라미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택시기사 아저씨 저 너머로 보이는 대피라미드와 카프레의 피라미드

기자를 찾을 때면 언제나 같은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라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파라오들은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이 거대한 돌산을 쌓으려고 했던 것인가. 고민이 깊어질수록 피라미드를 건설하고자 했던 파라오들의 머릿속에 은근슬쩍 들어가 보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계속해서 고민을 하다 보면 때로는 답답하다 못해 참담해지기까지 하는데, 고고학자라면 이 지점에서 포기하지 말고 다시금 탐구욕을 불태워야 합니다. 들어가 볼 수 없는 것은 물론 만나볼 수도 없는 옛사람의 머릿속을, 그들이 남긴 다양한 물질 자료들을 토대로 유추해내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고고학자들은 발굴이라는 아주 정교하고 과학적인 조사방법을 통하여 옛 시절의 물건들을 다시금 발견해내기도 하지만 이들의 작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고고학자하면 인디아나 존스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옛 시대의 진귀한 보물을 찾아 전 세계 이곳 저곳을 해매는 고고학자는 19세기까지만 있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발굴 현장만이 아니라 도서관과 책상 앞에서도 오랜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우리시대까지 전해진 옛 물건들 – 보통은 유물이라고 부르는 - 물건들을 가지고 옛 사람들의 생각을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대피라미드 (북쪽에서 바라본 모습. 기자 피라미드군 유적지 입구는 이 대피라미드의 북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저 멀리, 역사상 세워진 모든 피라미드들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쿠푸의 피라미드가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피라미드는 그 규모에 참 잘 어울리는 ‘대피라미드(The Great Pyramid)’라는 별칭을 갖고 있습니다. 한 면의 길이가 230미터, 높이가 146미터(현재는 상당부가 조금 파괴되어서138미터), 사용된 돌의 숫자는 약 260만 개, 전체 무게는 약 700만 톤이나 되는 이 ‘괴물’은 1311년 영국에서 첨탑의 높이가 160미터에 이르는 링컨 대성당(Lincoln Cathedral)이 완성되기 이전까지 인류가 지은 건축물들 가운데 가장 높은 건축물이라는 타이틀을 3800년 넘게 보유해왔습니다.

링컨 대성당 (사진: Wikimedia)
대피라미드 (남서쪽에서 바라본 모습)
쿠푸의 대피라미드 (북서쪽에서 바라본 모습). 피라미드 근처의 사람들의 크기를 감안하시면 피라미드의 규모를 짐작하실 수 있습니다.
고왕국 시대 마스타바군에서 바라본 대피라미드 (피라미드의 동면)

이 거대한 '돌의 괴물' 앞에서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깁니다. 왜, 무엇을 위해서 지었는지는 둘째로 치더라도 ‘어떻게 이 괴물을 완성해내었을까?’ 잠시만 눈을 감고 상상해봅시다. 뜨거운 태양아래에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분주하게 움직이는 구릿빛 피부의 물결. 저기 땀 흘리며 일하는 수만 명의 근육질 남성들이 보이는군요. 근육남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영화 <300>이  자연스레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 영화에 등장하는 근육질의 사내들은 겨우 300명 남짓, 이곳의 근육남들은 그것의 수 십 배인 수 만 명입니다.

조지 퀘인턴스(George Quaintance, 1902-1957)의 1952년 작 ‘피라미드 건설자들’

피라미드의 건설에 노예들이 동원되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지만 고대 이집트에는, 특히나 피라미드가 지어지던 고왕국 시대의 이집트에 그런 노예는 없었습니다. 노예들이 매를 맞고 혹독한 대우를 받아가며 영문도 모른 채 건설현장에서 고생하는 장면은 헐리우드 영화들과 정치적 의도를 다분히 담고 있는 성서의 기록이 그려낸 신화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이곳 기자에서는 피라미드 건설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이 살았던 마을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그들의 삶의 질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근육남들이 땀 흘리면서 노력했던 것은 누군가의 강요와 억압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종교적인 헌신의 과정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고된 노동이 동반되었을 테니 고생스럽기는 했겠지만 그들의 노력은 그들 자신의 자아완성과도 깊은 연관성이 있었을 것이 분명한 만큼 무조건적인 희생은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완성을 위해서 땀 흘리며 일하는 근육남들, 어쩐지 저 엄청난 업적이 조금은 더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피라미드는 충분히 낭만적인 역사의 결과물입니다. 파라오의 과대망상으로 인해 많은 노예들이 희생되었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는 이제 잊으셔도 됩니다.

대피라미드는 그 앞에 서는 것만으로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 있는 건축물이지만, 내부에 들어가보는 건 더더욱 특별한 경험입니다. 관계당국에 의해서 입장객 숫자가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고, 입장료도 비싸 조금 망설여지시더라도 반드시 들어가보셔야 합니다.

알-마문 탐험대의 대피라미드 진입. 좌측: 대회랑, 우측: 왕의 방. 이탈리아의 화가 루이지 메이여 (Luigi Mayer, 1755–1803)의 그림.

오늘날 관광객들이 출입구로 사용하는 입구는 사실 대피라미드의 진짜 입구는 아닙니다. 현재의 입구는 832년에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였던 알-마문(Al-Mamun)의 명으로 조직된 탐험대가 대피라미드 내부에 진입하면서 인위적으로 뚫었던 입구입니다. 당시까지도 대피라미드는 완전하게 봉인된 상태로 보존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록에 따르면 놀랍게도 알-마문의 탐험대는 대피라미드 내부에서 그 무엇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인즉슨 대피라미드는 도굴당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텅빈 상태로 남겨져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피라미드의 입구들: 가운데에 있는 것인 진짜 입구, 우측 하단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부분이 알-마문의 입구
아직까지도 봉인되어 있는 피라미드의 진짜 입구
관광객들이 출입구로 사용하는 알-마문의 입구
피라미드의 진짜 입구와 알-마문의 입구

자, 발 밑을 조심하세요. 내부에 조명시설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져오신 손전등을 사용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카메라는 아쉽게도 가지고 들어가실 수 없으니 입구에 맡겨놓으셔야 합니다.(저는 이집트 고문물관리국 직원인 한 친구의 배려로 피라미드 내부에서 약간의 사진촬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본 고에서 소개하는 사진들은 그 촬영본입니다.) 어둡고 축축한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의식의 심연으로부터 본능적인 경계심이 생겨나고 수 억 톤의 돌덩이가 한 순간에 머리위로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하는 참으로 진부한 공포가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만약 피라미드가 무너져 그 안에 매몰되어버리는 일이 발생한다면, 전 세계 뉴스에 여러분들의 이름이 나오게 되고, 그 이름들은 오래도록 인류역사의 한 부분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물론 영광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이 피라미드에 깔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대피라미드의 내부

앞서서 말씀드린 것처럼 대피라미드의 내부에서는 특별한 보물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피라미드의 구조는 다른 피라미드들과는 다르게 엄청나게 복잡하게 되어 있어서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끕니다. 왕의 방, 여왕의 방, 지하의 방이라고 불리는 3 곳의 '현실' 같은 공간이 있지만 현재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왕의 방'이라고 불리는 공간만 공개되고 있습니다. 왕의 방이나 여왕의 방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그것은 피라미드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던 시절부터 사용된 습관 같은 것이고 실제로 그 방이 왕이나 여왕의 위해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대피라미드의 내부 통로
대피라미드의 내부 통로

대피라미드의 복잡한 여러 공간들 가운데에 가장 인상적인 곳인 대회랑입니다. 영어로는 ‘The Grand Gallery’라고 불리는 이곳은 왕의 방으로 가는 통로로, 실제로 그곳을 통해서 왕의 방으로 가실 수 있습니다. 대회랑의 천장은 위로 올라갈 수록 점차 좁아지는 형태를 하고 있는데, 높이가 8-9m에 이를 정도로 그 규모가 웅장합니다. 이 대회랑의 바닥을 살펴보면 벽을 따라서 일정한 간격으로 홈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연구자들은 거대한 톱니바퀴 같은 것이 맞물렸던 곳이었을 거라 추측하기도 하는데, 그에 관한 명확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피라미드는 여전히 수수께끼 덩어리입니다.

대피라미드의 대회랑
대피라미드의 왕의 방

피라미드 내부 탐험은 분명히 신나는 여정이지만, 많은 이들이 이 엄청난 건축물의 내부를 탐험하고 나서 실망의 말을 전합니다. 그것은 이 위대한 업적의 내부가 생각보다는 참 초라하기 때문입니다. 피라미드의 내부에는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그 흔한 벽화라던가 문자기록이 전혀 없으며, 심지어는 미이라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왕의 방이라고 불리는 현실에 이르게 되면 떡 하니, 한 귀퉁이가 깨진 듯이 보이는 화강함 석관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져 있을 뿐입니다. 이 관에서는 미이라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때나마 미이라가 있었다는 작은 흔적 조차 없었습니다. ‘왜 아무것도 없을까 ‘라는 질문은 피라미드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금 드릴 수 있는 제 대답은 ‘무 존재의 존재 의의’ 정도에 불과합니다.

/사진: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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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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