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친구가 무서워요
엄마, 친구가 무서워요
엄마, 친구가 무서워요
2016.04.27 14:00 by 지혜

오후 3시가 되면 잠자던 놀이터가 들썩인다. 당연하고 당당하게 발을 구르고 손을 휘젓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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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는 이곳의 주인이 누구인지 온몸으로 말한다. 미끄럼틀과 그네, 시소로 이루어진 아이들의 성(城)은 볕이 잘 드는 명당에 화려한 색깔을 뽐내며 서있다. 반면 어른들을 위한 벤치는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듯 눈치를 보며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아있다.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나는 비어있는 벤치 아무데나 앉아 그들만의 성 안에서 우리 딸 초록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본다.

아이들은 놀이터를 닮았다. 미끄럼틀처럼 단단하고 그네처럼 유연하며 시소처럼 지치지 않고 뛴다. 어떤 때에는 집으로 들어가기 싫어 보호색을 띠는 것 같기도 하다. 빨강 노랑 파랑 보라, 놀이터의 어떤 색깔 위에 있어도 엄마에게 들키지 않겠다는 듯이 아이들은 무지개처럼 빛난다. 놀이터가 되어 혹은 놀이터의 무지개가 되어 온몸으로 웃어대는 초록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종종 우리의 ‘옛날’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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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고 따뜻했던 엄마 안에서 낯설고 차가운 밖으로 나온 지 23개월, 초록이는 두 살이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언어를 통해 마음을 표현하는데 자신감이 붙은 아이는 세계를 적극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 세계가 곧 자신의 세계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밖에 나가면 꼭 잡고 있던 엄마의 손을 놓고 홀로 앞서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 뒷모습을 지키며 아이의 발걸음을 따르는 일은 스스로에게 하는 칭찬이 되었다. 아이를 잘 키워내고 있다는 증거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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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초록이가 가는 길에 ‘친구’가 나타나면 상황은 순식간에 변했다. 또래와 마주하게 되면, 더 어린 아기라고 해도,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어 어서 빨리 이 길에서 구해달라는 듯이 내 다리를 간절하게 잡았다.

놀이터에 가면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미끄럼틀이 타고 싶어서 온 것인데, 친구들이 몰려 있으니 한쪽에서 기다리며 눈치만 본다. 아무도 없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겨우 올랐다가도 친구가 다가오면 기겁을 하고 나에게 안아달라고 애원을 한다. 자리를 옮기고 싶어도 놀이터는 친구들로 가득 차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서 두려운 표정으로 구경만 하는 것이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에야 신이 나서, 쓸쓸해진 미끄럼틀을 오르고 내리는 초록이를 보면 마음이 답답해졌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엄마로서의 나를 곱씹으며 자책과 불안에 시달리기도 했다.

알고 있었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타고난 성향이기 때문에 내가 잘못 키운 탓도 아니다, 그것은 내 아이를 이루는 한 부분이기에 인정해야 하며 바꿀 수도 없고 바꾸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엄마인 내가 도와주어야 한다, 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잘 되지 않았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 것인지 머리도 마음도 어지러웠다.

좀 더 솔직해져 볼까. 나는 내 아이가 소심하고 겁이 많은 것이 싫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좋은 엄마인척 했지만 속으로는 활발하고 씩씩하기를 바란 것이다. 친구가 무섭다고 내 품에 안길 때마다 아이를 어르고 달랬다. 그러다가 참지 못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친구가 뭐가 무서워, 친구는 안 무서워, 친구를 만나면 인사하는 거야, 친구는 너랑 같이 놀고 싶은 거야, 봐봐 친구가 먼저 인사를 하네, 저기 한번 가봐.

그렇고 그런 위로와 충고를 하며 아이의 등을 성급하게 떠밀었다. 어떤 날은 기어이 울릴 때도 있었다.

아이는 친구를 무서워하고 나는 그런 아이가 답답하기만 하고 그러다가 나는 왜 육아서나 인터넷에서 보는 다른 좋은 엄마들처럼 못하는 걸까 속상함으로 이어지고…

초록이가 여전히 친구를 무서워하던, 그런 날들에 우리가 같이 읽었던 그림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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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작지만
고슴도치는 가시가 많지만
뱀은 다리가 없지만
타조는 못 날지만
기린은 목이 길지만

 

그래도 괜찮아.
개미는 힘이 세고
고슴도치는 용감하고
뱀은 자유롭고
타조는 빠르고
기린은 하늘 가까이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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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고 겁이 많아서, 그래서 세계로 나아가려는 그 걸음이 주춤거리더라도 괜찮아.
너는 세상에서 가장 크게 웃을 수 있어.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아’

어쩌면 이 말은 아이보다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초록이는 금세 다섯 살이 되었다. 우리가 함께 세 번의 봄을 보내는 동안 나도 초록이도 조금씩 자랐다. 나는 ‘괜찮아’ 하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괜찮다는 말은 참말이었다. 그렇고 그런 위로나 충고보다 확실하고 굳이 갖지 않아도 될 자책이나 불안을 해소하는데도 좋았다. 초록이는 ‘괜찮아’에 익숙해졌다. 여전히 소심하고 예민하지만 친구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느리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세계를 받아들이고 늘려가고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엄마라는 존재는 어리고 여리고 아픈 것들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기 위해 그리고 정말 괜찮아지길 기다리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은 아닐까.

‘그건 내 조끼야’의 엄마 생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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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짜 주신 조끼를 입은 아기 생쥐, 동그랗고 커다란 눈에 한껏 부푼 마음이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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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조끼는 오리에게, 고릴라에게, 물개에게, 사자에게, 말에게, 코끼리에게 전해진다. 다들 그 조끼를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기 생쥐에게 딱 맞았던 멋진 조끼는 잔뜩 늘어나서 입을 수 없게 되었다.

 

조끼처럼 축 쳐진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책에서는 이야기 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엄마에게 갔을 것이라 생각한다. 슬플수록 엄마 품은 더 따뜻한 법이니까.

 

아기 생쥐는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울었을 것이고 누가 조끼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인지 맘껏 일렀을 것이다. 엄마는 그런 아기를 꼭 안고 따뜻한 손으로 토닥토닥, 그리고 괜찮다고 말해주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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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생쥐가 다시 돌아와 행복해진 것을 보니 앞선 내 짐작이 맞는 것 같다. 

아기 생쥐는 괜찮다. 엄마가 그랬으니까.
그리고 엄마는 아기 생쥐를 위한 멋진 조끼를 다시 짤 것이다.

 

우리들처럼.

Information

<괜찮아> 저자: 최숙희 | 출판사: 웅진주니어 | 발행연도: 2009.04.22 | 가격: 10,000원

<그건 내 조끼야> 저자: 나카에 요시오 | 역자: 박상희 | 출판사: 비룡소 | 발행연도: 2008.12.19 | 가격: 7,200원


/사진: 지혜

그림 같은 육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통해 아이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고민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신 개념 육아일기. 이를 통해 ‘엄마의 일’과 ‘아이의 하루’가 함께 빛나는 순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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