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세스 3세의 혼이 서린 도시형 복합신전: 메디넷 하부(1)
람세스 3세의 혼이 서린 도시형 복합신전: 메디넷 하부(1)
2016.05.04 18:00 by 곽민수

'최후의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3세의 별칭입니다. 람세스 3세는 람세스 대왕으로 널리 알려진 람세스 2세와는 분명 다른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람세스 3세 역시도 람세스라는 이름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람세스 2세와는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었지만 람세스 2세를 무척이나 존경하고 뒤따르고 싶었기에 ‘람세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습니다. 람세스 3세 이후로도 8명이나 되는 파라오들이 같은 이유로 ‘람세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지만, 4세부터 11세까지의 람세스들은 그저 이름만 람세스였을 뿐입니다.

프랑스의 르브루 박물관에 소장 중인 람세스 3세의 석관
채색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는 상인방에 새겨져 있는 람세스 3세의 이름. 좌측 카르투쉬에 들어 있는 것은 람세스 3세의 출생명으로 ‘라-메세-수 헤카-이운누’라고 읽힙니다. 뜻은 ‘라가 그를 낳았다. 헬리오폴리스의 통치자’입니다. 우측 것은 람세스 3세의 즉위명으로 ‘우세르-마아트-라 메리-아멘’으로 읽히고 그 뜻은 ‘라의 마아트는 강력하다. 아멘에게 사랑받는 자’입니다.

하지만 람세스 3세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그는 이집트가 더 이상 세계 제 1의 강대국이 아니게 된 시대에 태어나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이집트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파라오입니다. 람세스 3세의 업적에 대해서는 차차 이야기 해나가기로 하고 이제부터는 우리가 찾아갈 ‘메디넷 하부’라는 곳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서서히 지하 세계로 향하는 늦은 오후의 태양과 메디넷 하부의 실루엣

메디넷 하부는 ‘람세스 3세의 장례신전’입니다. 하지만 이곳을 ‘람세스 3세의 장례신전’이라 하지 않고 굳이 ‘메디넷 하부’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이곳이 람세스 3세의 장례신전뿐만이 아니라 그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건축물들로 구성되어 있는 ‘도시형 복합 신전’이기 때문입니다. 이 도시형 복합 신전은 오늘날 우리가 이집트에서 만날 수 있는 고대의 신전들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축에 속하는 것입니다.

보존이 잘되어 있는 신전들은 대부분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것들이지만 메디넷 하부 신전은 그것들보다 최소 수백 년 혹은 천년 이상 더 오래된 신왕국 시대의 신전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신전들 가운데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훌륭한 보존상태를 자랑하는 이 웅장한 신전은 투탕카멘의 무덤으로 대표되는 ‘왕들의 계곡’이나 절벽으로 둘러싸여있어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하는 ‘데이르 엘 바흐리(Deir el-bahri)’에 있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례신전 등 서안에 있는 다른 유적지들에 밀려 쉽게 방문을 포기하게 되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에도 역시나 포기하지 않고 이곳을 향합니다.

메디넷 하부 평면도 (가운데 부분에 진하게 그려진 부분이 람세스 3세의 장례신전입니다.)

사실 ‘도시형 복합신전’이라는 용어는 제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아직은 그 타당성이 검증되지는 않았지요. 그렇지만 이 신전의 특성을 아주 잘 설명해주는 용어라고 생각되기는 합니다. 이 용어는 신전이 도시처럼 구성된 다양한 기능을 지닌 독립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실제로 이곳에는 람세스 3세의 장례신전 뿐만 아니라, 파라오가 머물던 왕궁과 여러 행정관청, 사제들의 거처, 나일강 수위를 재던 나일로미터, 다양한 작업장과 저장고, 군대가 머물던 막사, 물을 구할 수 있었던 우물 등의 시설이 하나의 담장으로 둘러 쌓여져 있었습니다. 너비 210m, 길이 315m의 규모는 신전으로서는 큰 규모이지만 도시로서는 분명 작은 규모입니다.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도시라고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이곳에는 한 때 최대 5만명이 넘는 상당히 많은 인구가 상주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도시형 신전의 중추에 자리잡고 있는 람세스 3세의 장례신전은 람세스 3세가 람세스 2세를 모방하려고 했던 것처럼 람세스 2세의 장례신전인 라메세움을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라메세움은 이미 폐허로 변해 버린데 반해서 라메세움의 복제판이었던 이곳 메디넷 하부는 참 잘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더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이곳이 이집트에서 몇 개 되지 않는 ‘전면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에 있는 대부분의 유적지들은 유적지의 일부만이 발굴된 상태이고 여전히 발굴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곳 메디넷 하부에서는 1924년부터 시카고 대학교의 동양연구소 조사팀이 작업을 시작하여 수 차례에 걸친 조사 끝에 신전 전면에 걸친 조사를 완료하였습니다. 물론 전면적으로 조사가 완료되었다고 해서 앞으로 새로운 조사가 시행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기는 합니다. 고고학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학설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시작하는 노력입니다.

메디넷 하부라는 이 도시형 복합 신전의 이름은 아랍어로 ‘하부의 도시’라는 뜻 입니다. 도시라는 단어가 신전의 이름에 들어가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만, 왜 ‘하부의 도시라는 이름을 지니게 되었고, 또 ’하부‘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어 있습니다. 물론 몇 가지 설은 있습니다. 우선 하부(Habu)가 18왕조 시대의 위대한 건축가인 아멘호테프(파라오와 동명이인)의 아버지인 하푸(Hapu)를 뜻한다는 설입니다. 하푸를 위해서 아들 아멘호테프는 이곳에서 약 300미터 북쪽에 기념신전을 건설하였습니다. 또 다른 설은 ‘하부’가 따오기를 의미하는 ‘Hebu'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입니다. 따오기는 토트신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는데, 실제로 메디넷 하부 남쪽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세워진 토트 신전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메디넷 하부 신전의 입구

자, 그럼 이제 수 백만 년의 저택을 직접 경험할 시간입니다!

신전이 운영되던 시기에는 신전 바로 앞까지 운하가 뚫려있었고, 그래서 신전의 입구에는 부두가 만들어져서 신전 바로 코앞까지 선박이 들어갈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날에는 신전 앞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지만, 이미 고고학자들이 발굴을 통하여 확인한 사실인 만큼 신뢰성은 상당히 높습니다. 아마도 부두가 있었을 매표소 앞을 지나게 되면 성채의 방어시설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세 개의 탑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왜 신전에 이런 방어시설이 갖춰져 있어야 하는 것일까?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신전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방어용 구조물이 이곳의 입구에 서 있는 것은 메디넷 하부가 단순한 신전이 아니라 ‘도시형 복합신전’이었다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점이 남습니다. 도시형 복합신전이라고 하더라도 이만큼 정교한 방어시설을 굳이 갖추고 있었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옛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메디넷 하부 신전 초입에 세워진 방어용 시설

다행스럽게도 메디넷 하부가 세워진 신왕국 시대에는 이전에 우리가 둘러보았던 기자나 사카라의 피라미드가 건설되었던 고왕국 시대보다는 훨씬 더 많은 양의 기록들이 남겨져 있습니다. 연구자들에게는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기록들 가운데에는, 급여를 제때 받지 못해서 굶주리게 된 국가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물자를 풍부하게 보관하고 있었던 여러 신전 내부에 들어가 연좌 시위를 벌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일전에 제가 썼던 더퍼스트의 연재물 중에도 이 내용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이집트는 대체로 풍부한 식량 생산량을 갖고 있었지만 가끔 흉년기가 되면 식량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기도 했었고, 또 신왕국 시대 말미가 되면 행정 시스템의 효율성이 떨어져 자원의 재분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정당하지 못한 대우를 받고 익숙치 않은 굶주림을 경험하게 된 이들은 결국 권력에 대한 저항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파라오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은 이들 시위하는 노동자들을 폭도로 인식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국가의 시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방어용 시설의 후면

메디넷 하부는, 물론 현재는 많은 부분이 무너져 내리기는 했지만, 입구 부분의 방어시설 뿐만이 아니라 신전전체가 벽돌로 만들어진 벽으로 둘러 쌓여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쩌면 이 ‘도시형 복합 신전’을 ‘요새형 신전’ 혹은 ‘성채 신전’ 등으로도 부를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사진이나 영화에서 종종 보았던 유럽식 성채 혹은 동양에서 성읍이라고 부르던 성벽으로 둘러 쌓인 촌락이 떠오릅니다.

이집트 초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왔나 봅니다.

흥미롭게도 높이가 20미터에 이르는 이 당당한 구조물은 난데없이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주로 만들어지던 요새의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이라 함은 오늘날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의 국가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이 구조물은 ‘시리아 대문(the Syrian Gate)’라고 불리며, 학자들은 ‘타워’, ‘전투용 전망탑’등을 의미하는 ‘미그돌(Migdol)’이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완벽하게 이집트적인 신전에 시리아-팔레스타인 스타일의 방어용 시설이라, 언뜻 보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현상이지만 조금만 역사적인 배경을 떠올려보면 어느 정도는 수긍이 되기도 합니다. 이 시기의 이집트는 시리아 지역과는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집트는 상당한 강력한 통일국가였던데 반해서 시리아 지역은 그만그만한 크기의 도시국가들로 구성되어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이집트가 공격하고 시리아 쪽은 방어만 하는 형국이었는데, 강대국 이집트의 시리아 원정이 언제나 성공을 거두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기나긴 전쟁과 전투의 과정 속에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분명히 자신들이 맞닥뜨렸던 이 동네의 방어시설의 유용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원정사업과 전쟁이 유난히 많았던 람세스 3세의 시대라면 ‘적들이 지니고 있는 방어시설’의 유용성을 쉽게 경험할 수 있었겠지요. 비록 적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유용하다 싶으면 금세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고대 이집트인들은 민족적 자부심은 넘쳐났지만 문화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속 좁은 민족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람세스 3세 장례신전의 탑문

 

/사진: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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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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