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란 포기하지 않는 힘, 서예가 이정화
크리에이티브란 포기하지 않는 힘, 서예가 이정화
2016.05.18 00:37 by 구승준

전국 규모 서예대회 대상은 으레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장에게 돌아간다. 법첩(옛 사람들의 유명한 필적을 돌 또는 나무에 새기고 탑본하여 글씨를 익히거나 감상할 목적으로 만든 책)을 5만 번 썼다는 이도 있고, 10만 번 썼다는 이도 있다. 글씨를 단련하는 세월이 녹록치 않으니, 서예는 점점 더 신진 작가가 진입하기 어려운 어르신들만의 리그가 되어 간다. 서예에 드리워진 ‘고답적’이라는 달갑잖은 고정관념이 불식되기 어려운 이유다.

 

인중(仁中) 이정화

 

그런데 앳된 소녀티도 채 벗지 못한 이십대 이정화 작가가 유수의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서예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이들의 눈이 모두 휘둥그레졌다. 그만큼 매우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는 전혀 의외적인 일도, 갑작스러운 성공도 아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 외려 자연스러운 수순에 가깝다. 서예가인 아버지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붓을 잡기 시작해, 일곱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서예에 입문, 어느새 20년 가까이 한길만 걸어온 ‘젊은 원로(元老)’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굴곡이 없었다고 해서 서예를 단련하는 뜨거움이 부족했으리라는 선입견도 갖다 댈 길이 없다. ‘천재성’을 묻는 나의 우문을 그녀는 한 자리에서 8시간동안 글씨를 쓰는 ‘인내심’으로 돌린다. 어쩌면 천재성이란 내면의 크리에이티브를 포기하지 않는 힘, 그 자체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제5회 문경새재전국휘호대회 대상 작품. 登峨眉山 _益齋 李齊賢 蒼雲浮地面 검푸른 구름 땅 위에 떠 있고, 白日轉山腰 밝은 해는 산허리로 둘러간다. 萬像歸無極 만상은 결국 무극으로 돌아가니, 長空自寂寥 먼 허공은 스스로 고요하기만 하다.

하루 8시간 동안 한 자리에서 글씨를 썼다

학창 시절은 어땠나?

이정화(이하 이) : 활발한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은 으레 방학을 기다리곤 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너무 좋아 방학을 싫어할 정도였다. 집에 오면 아버지의 서예실에서 날마다 글씨를 썼다. 중, 고등학교에서도 역시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했다.

대개 아이들은 서예를 지겨워하지 않는가?

이 : 아버지가 흥미를 가지도록 많이 자극하고 이끌어줬다. 이를테면 산에 갔을 때 저 산의 모습을 보며 뫼 산(山) 자를 써 보라고 말하거나, 안개 낀 호수를 보며 수묵의 농담(濃淡)과 한국의 자연이 닮은 것 같지 않느냐며 생각거리를 던져 주시곤 했다. 한문은 상형문자라 글씨를 쓸 때마다 아버지의 말이 떠올라 서예가 점점 재미있어졌다.

아버지가 그 시절에 해주신 기억에 남는 말씀 가운데 하나가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어려운 이야기인데 쉽게 와닿게 설명해주신 것 같다. 그 뒤로 나는 매사 사물을 볼 때마다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서예 외에도, 동양철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까지 받았는데, 철학에 대해 그만큼 내공이 있으셨기에 어려운 이야기도 쉽게 풀이해 주셨던 것 같다.

 

나의 가장 소중한 선물

 

대학교 시절은 어땠나?

이: 아버지가 교수로 계시는 학과(경기대학교 서예문자예술학과)에 입학해 처음에는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곧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고 친구들과 많이 어울렸다. 2013년 3월부터 6월까지 ‘아리랑 유랑단’에 속해 세계 곳곳을 다녔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리랑 유랑단’이란 무엇인가?

이: 한국문화외교사절단이다. 아리랑유랑단은 전 세계 16개국 30개 도시를 돌며 국악, 서예, 한국무용을 활용하여 문화외교, 문화교육 활동 등을 하는 민간 청년외교단체다. 옆에서 국악 연주를 하면 나는 서예를 하는 퍼포먼스를 하곤 했다.

해외에서 서예를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이: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신기하다고 했다. 흑색의 먹을 쓰더라도 옅고 진함에 따라 표현이 달라지는 게 낯설었던 것 같다. 붓을 직접 달라고 하여 직접 해 보겠다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막상 붓을 잡으니 보기보다 쉽지 않다며 혀를 내둘렀다.

아버지는 롤모델이자 넘어야 할 산

 

산바람강바람_동요

 

아버지인 송민 이주형 선생은 저명한 서예가이자 대학교수다. 아버지는 존경의 대상이고 롤모델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과 같을 것이다. 아버지가 부담이 된 적이 없는가?

이: 아버지를 존경하고 닮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내가 아버지의 딸로 태어난 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필체가 워낙 좋아 늘 따라가고 싶다. 그러나 늘 곁에서 배우니까 아버지의 필체를 닮았다는 소리도 듣는다. 한편으로는 내게 밴 아버지의 필체가 굳어질까 두렵기도 하다.

아버지가 늘 좋기만 했다는 말인가?

이: 그럴 리가 있나? 나는 예닐곱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서예를 했는데, 학교에 갔다가 집에 오면 늘 붓을 잡았다. 다른 아이들보다 연습량부터가 많으니 대회에 나가면 내 글씨가 가장 좋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서예대회에 나가면 늘 2등만 했다.

아무리 봐도 내가 1등인데, 왜 2등만 하는지 의아했다. 어느 날 우연히 아버지가 심사위원들에게 말해 이미 1등으로 뽑아 놓은 글씨를 2등으로 해 달라고 부탁한 것을 알았다. 그게 어렸을 때는 그렇게 서운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더 넓고 더 깊게

 

왜 그런 것인가?

이: 대회 주최 측에서도 아버지를 심사위원으로 부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버지의 딸인 내가 1등을 받으면 구설수에 오르기 쉬웠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남과 비교하여 등수에 만족하기보다 자신에게 충실하라는 간접적인 메시지도 주신 것 같다.

올해 제5회 문경새재휘호대회에서 25살의 나이로 대상을 받았다. 서예대회의 대상은 대개 50대 이상이 받는데, 혹시 아버지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은 아닌가?

이: 가당치 않다. 내가 서예가로 활동을 시작한 후부터 아버지는 내가 나가는 대회의 심사위원을 일부러 맡지 않으신다. 운이 좋아 상을 받긴 했지만 나도 열심히 글씨를 쓰긴 했다. 7살 때부터 적게는 하루 두 시간, 많게는 하루 8시간 동안 꾸준히 글씨를 썼다.  요즘은 예전처럼 열심히 쓰지 못하여 반성하고 있다.

 

배움은비움이다_인중이정화作

 

나는 캘리그래퍼가 아닌 서예인이다

캘리그래퍼(calligrapher)라는 말보다 서예가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왜 그런가?

이: 서예가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모자란 게 많아서 부끄럽다. ‘서예인’ 쯤이라고 불러주시면 좋겠다. 캘리그래퍼보다 ‘서예’라는 말을 앞세우고 싶은 이유는 나름의 철학이 몸을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예를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붓을 잡고 한 일자를 쓰는 것부터가 굉장히 힘들다. 캘리그래피도 어느 수준에 오르면 결국 서예와 일맥상통하겠지만, 대중적으로 말하는 캘리그래피는 글씨를 예쁘게 꾸미는 것이다.

캘리그래피에 대해 부정적인가?

이: 그렇지는 않다. 예전에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해서 글을 쓰는 행위가 중시되었지만 최근에는 다들 컴퓨터 자판으로 글을 쓰는 바람에 손글씨가 잊혀져가고 있었는데, 캘리그래퍼들 덕분에 글씨를 손으로 쓴다는 행위가 대중화된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한국의 서예 전통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왕희지, 구양순, 안진경 등의 영향을 받은 중국의 아류는 아닌가?

이: 절대 아니다. 서(書)는 동아시아의 문화이기 때문에 누가 위고 누가 아래라고 할 수 없다. 일례로 광개토태왕비의 글씨는 매우 독창적이다.  질박하고, 순진한데다 웅장한 기상이 드러나 있는 필체로 우리 예술에 드러난 '고졸미'와 통한다고 봐야 한다. 먼 훗날 추사체에도 결국 한국 미술을 이어오는 맥락이 살아 있다.

 

筆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서예는 너무 힘들지 않는가? 펜이라면 어떻게 하든 쓰겠는데, 붓으로 하자니 어렵지 않은가? 붓이 어디를 가든지 꼿꼿이 세워 붓의 중심으로 써야 한다는 중봉(中鋒)만 해도 서예를 오래 한 사람도 어렵다고 한다. 이래서는 서예의 대중화가 되기 어려운 것 아닌가?

이: 바로 거기에 서예의 묘미가 있다. 붓으로 쓰기 때문에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위로받고 싶어 한다. 서예를 하다보면 남이 위로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먹을 갈 때부터 향기를 맡으며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

드라마의 글씨는 연기의 연장, “더 떨리게 써 주세요...”

<뿌리깊은 나무> 신세경 촬영현장

TV드라마에서 ‘손 대역’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어떤 작품을 했는가?

이: MBC 드라마 <동이>에서 한효주 씨, <아랑사또전>에서 신민아 씨, <해를 품은 달>에서 한가인 씨, <기황후>에서 하지원 씨, 그리고 방송예정인 SBS <사임당>에서 이영애 씨의 글씨 대역을 했다. 그밖에도 여러 작품에서 손 대역을 했다.

드라마에서 글씨 대역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이: 그냥 글씨를 쓰는 게 아니라 연기의 연장이었다. 상황이 급박하거나 주인공의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글씨도 일부러 ‘못 써야’한다. 주인공의 호흡에 따라 급박하게 하거나 느긋하게 하거나를 잘 조절해야 했다. 드라마 줄거리 상 주인공이 몸이 아플 때는 감독님이 “더 아프게, 더 떨리게 써주세요.”라고 해서 애를 먹었다.

 

용비어천가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이: 이영애 씨나 하지원 씨에게 내가 지도해주고 본인들이 직접 글을 쓰는 장면이 있었는데, 둘 다 글씨를 매우 잘 써서 놀랐다. 또, 한번은 지방 촬영이 새벽에 끝나서 서울로 어떻게 다시 돌아가야 하나 하고 난처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는데, 배우 신세경 씨가 자기 촬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서울까지 어떻게 가냐?'고 걱정해 주었다. 내가 만나본 스타들은 드라마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심성이 착했고, 다들 나에게 잘 해 주었다.

현재 작업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이: 없다.

슬럼프나 무기력증 따위도 없었다는 말인가?

이: 중국 작가의 작품을 보고 큰 충격에 빠져 의욕을 잃은 적이 있다. 너무 수준 차이가 나서 겁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 보니, 그 작가는 나보다 나이가 서른 살 정도가 많았고 내가 30년 한다면 그 정도를 못 할까 싶어서 다시 용기를 냈다. 그러나 잠깐의 슬럼프는 있을지언정 서예 자체가 싫은 적도 없고, 어려운 적도 없었다. 이걸 하고 있는 건 나에게 큰 축복이고 기쁨이다.

 

가장간절히바라는것이이루어지기를바란다

 

지금의 꿈은 무엇인가?

이: 서예를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서예는 매력적이고, 막상 해 보면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다. 또한 서예를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서예란 달빛에 우주를 담는 행위

서예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이: 내가 감히 조언할 입장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서예를 꾸준히 하다보면 내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으니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 싶다. 서예를 보다 진지하게 하고 싶다면 법첩을 많이 보고 따라 쓰는 것이 좋다. 몇 백 년, 몇 천 년 동안 검증된 서체이니 처음에는 그것들을 모방하는 것이 좋다. 그런 다음에는 자신만의 필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은 나도 계속해서 하고 있는 중이다.

이정화 씨가 직접 찍은 사진. 바람 불면 걷혀질 불안감, 그 속에는 언제나 해가 있다.

꿈을 잃은 청년들에게 한 마디를 한다면?

이: 꿈이 안 보인다고 해서 꿈을 잃은 게 아니라 잠깐 숨은 게 아닐까 싶다. 깜깜한 밤에만 별이 보이고 낮에는 보이지 않지만, 별이 없어진 건 아니다. 시간을 두고 노력하다보면 자연히 꿈을 다시 찾을 것이다.

이정화 씨는 자연을 관찰하며 영감을 얻는다.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영감을 받는가?

이: 고전(古典)이다. <논어> <맹자> <중용> 등을 읽곤 한다. 그리고 자연(自然)이다. 그 안에 모든 것이 있다. 서예란 달빛에 우주를 담는 것이다. 달빛과 같은 화선지에 아득한 우주의 색깔로 의미를 입히는 것이 아닌가?

 

우주를 달빛에 담다

 

이정화 |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서예문자학과 졸업. 동 대학원 재학 중. MBC <동이> 한효주 <아랑사또전> 신민아 <해를 품은 달> 김유정, 한가인 <구암허준> 박진희 <기황후>하지원, 백진희, 유인영 <수백향> 서현진, 서우 <야경꾼일지> 송이우 SBS <뿌리 깊은 나무> 신세경 <사임당> 이영애, 박혜수 tvN <인현왕후의 남자> 최희진 영화 <엽기적인 두 번째 그녀> <도리회가> <간신> 등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다수 대필 / 대한민국 서예한마당 초대작가, 문경새재전국휘호대회 대상, 반월문화제 우수상, 월간 서예대전 특선 및 다수, 경인미술대전 특선 2회 등 다수 수상/ 제50회 한국서예가협회전, 여주 여성생활사박물관 초대전, 전국 서예문인화 깃발전 초대전 등 전시 다수 / 국악실내악단 가온향, 전통연희연구소 창현 등 타이틀 및 상호 다수

크리에이터+크리에이티브 크리에이티브는 어디에서 폭발하고, 어떻게 숙성 또는 변형되며, 어떻게 완성되는가?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가장 빤한 이미지는 대뇌 ‘생각의 전구’에 불이 번쩍 하고 들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크리에이티브를 이루는 일련의 과정 가운데 아주 작은 요소다. 크리에이티브를 현실화하는 데는, 상대성원리를 발견하기까지의 기간보다 그것을 대중에게 설명할 방법을 고민한 기간이 더 길었다는 아인슈타인의 고백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여기서는 그 얘기를 듣는다. 그들의 공상가적인 열정과 만년대리 같은 성실성, 아이디어를 세일즈 하는 마케터 같은 수완까지 크리에이티브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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