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감독님! 저, 조금 더 살고 싶어요
이만수 감독님! 저, 조금 더 살고 싶어요
이만수 감독님! 저, 조금 더 살고 싶어요
2016.06.07 17:12 by 김상욱

오늘은 영상을 통해 라오 브라더스의 모습을 먼저 만나보시죠.

2016년 1월. 라오 브라더스가 훈련에 한창인 연습장. 어쩌다 보니 저 역시 그 틈에 끼어서 훈련을 도왔습니다. 주루 플레이, 선수 간의 싸인, 상황 대처 훈련 등 세부적인 야구 규칙을 잘 모르는 선수들을 위해 훈련 보조 교관이 된 거죠. 그런데 한쪽 구석에서 검은 선글라스를 쓴 낯선 한국인이 보입니다. 그는 시종일관 심각하게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누구지? 눈빛이 보이지 않는 검은 선글라스라면… 혹시 스카우터??’

한국 프로야구장에 자주 출몰하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저는 계속해서 선수들의 훈련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의 뇌리를 탁하고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 그분이구나. 맞다!’

검은 선글라스의 남자는 바로 이만수 감독이 사진으로 소개했던 ‘피칭머신 기증자’ 류승철 사장이었습니다. (*피칭머신- 타격 연습을 위해 타자에게 공을 던져주는 기계)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을 위해 피칭머신을 기증한 류승철 사장님. 그는 뇌종양과 폐암 말기를 앓고 계시지만 살아있는 그날까지 라오 브라더스를 돕겠다고 하십니다.

더 이상 훈련에 집중할 수 없었던 저는 눈치껏 자연스레 선수들 틈에서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그리고 류승철 사장에게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사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이만수 감독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이고 반가워요. 저를 아시다니 쑥스럽네요. 류승철입니다.”

반갑게 악수를 청하는 류승철 사장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힘이 있고 활기찼습니다.

“건강은 좀 어떠신지요? 라오스까지 오시는데 힘들지 않으셨어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에요. 힘은 들었지만 여기 선수들 전부 내 자식 같은 아이들이라서 오는 길이 즐거웠습니다.”

“사장님. 몸이 많이 안 좋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라오 브라더스 야구단에 피칭머신을 기증하셨나요?”

“제가 라오 브라더스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게 2015년 2월인데요. 그 때까지는 건강했습니다.”

'사기를 당했다'

약 1년 전인 2015년 2월. 이만수 감독과 라오 브라더스가 역사적인 첫 훈련을 가진 지 3개월 여가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경기도 화성에서 피칭머신 제작 업체를 운영하는 류승철 사장 휴대폰에 모르는 국제전화 번호가 찍혔습니다. 상대방의 목소리는 뭔가 다급해 보였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이만수 감독에게 라오스에 야구 보급을 요청했던 교민 제인내씨였습니다.

류승철 사장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스스로를 ‘라오스에서 야구단을 만든 사람’이라고 소개하더라고요. 피칭머신을 설치하려고 한국에 있는 제작자에게 거액을 결제했는데 이 나쁜 업자가 소위 말하는 ‘잠수’를 탔다는 거예요. 어떻게 소재파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저한테 전화가 온 거죠. 이쪽 업계 게시판에서 같은 피칭머신 제작자인 제 연락처를 찾았나 봐요”

그러나 제인내씨가 사기를 친 한국인 피칭머신 제작자를 잡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타국이라는 지리적 여건과 시간, 그리고 법적인 절차가 녹록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인내 씨는 일면식도 없던 류승철 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사정이 다급하니 피칭머신을 저렴한 가격에 제작해 달라는 말과 함께요.

그 금액은 류승철 사장 입장에선 원가도 나오지 않아 턱없이 손해 보는 제안이었습니다. 제인내씨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류승철 사장은 고민할 것도 없이 거절했습니다. 당연한 것이었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갑작스런 전화를 받고 큰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류승철 사장의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게 자꾸만 마음이 쓰이고 불편했습니다. 결국 류승철 사장은 사흘간의 고민 끝에 제인내 씨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리곤 말했죠.

“제가 하겠습니다”

라오 브라더스를 위해 류승철 사장이 직접 제작한 피칭 머신
완공 된 피칭머신

더워서 숨쉬기조차 힘들다는 라오스의 한여름, 작년 5월에 류승철 사장은 혼자 라오스로 날아갔습니다.

한국에서 제작해서 비행기로 보내주는 것보다 본인이 직접 와서 설치를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죠. 라오스에 야구를 전파하려는 제인내씨의 뜻이 너무 좋아서 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라오 브라더스에 이만수 감독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고 합니다.

“작년 5월에 라오스에 처음 와서 혼자서 일주일 동안 피칭머신을 제작하고 설치했어요. 그런데 부품이 모자라더라고요. 다시 한국으로 가서 부품을 갖고 6월에 들어왔죠. 한 열흘 정도 작업을 했는데 그때 기온이 40도가 넘었습니다. 내 생애 그런 더위는 처음이었죠.(웃음)”

라오스 여름을 안 겪어 봤으면 어디 가서 여름 사나이라고 하지 맙시다

갑작스레 찾아 온 병마

폭염의 날씨에도 별 탈 없이 작업했던 류승철 사장. 그러나 라오스에 피칭머신을 설치하고 귀국한 직후 류승철 사장은 갑작스레 '객혈'(혈액이나 혈액이 섞인 가래를 기침과 함께 배출하는 증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지금… 폐암 말기예요. 라오스를 두 번째 다녀오고 몸이 이상해서 병원을 갔는데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뇌로 전이가 됐어요. 시력도 점점 안 좋아 지죠. 그래서 이렇게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날씨는 우중충하고 비가 내릴 것 같은데도 류승철 사장은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레 폐암 진단을 받고 너무 큰 충격과 함께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내가 이렇게 라오스에서 좋은 일을 하는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나하고 세상을 정말 원망했습니다. 제 아들이 7살이고 딸이 17살이에요. 애들 생각하면….”

류승철 사장이 울컥하면서 눈물을 보입니다. 맞은편에서 얘기를 듣던 저는 차마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습니다. 제 시선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발끝을 향해 있을 때 류승철 사장이 대화를 이어 나갑니다.

“그런데 지금은 더 먹고 더 웃고 시간을 쪼개어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요. 이제 저에겐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특별합니다. 매시간을 행복하고 소중하게 보내야 해요. 어쩌면 내 삶의 마지막이 가까워지는 시간에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제인내씨와 이만수 감독님께 감사하죠.”

라오스의 한 여름, 작업 중인 류승철 사장과 이만수 감독

함께라면 행복한 나를

요즘 류승철 사장의 행복은 라오 브라더스에게서 온다고 합니다. 이 행복의 느낌을 무엇과 비교해야 할 지 한참을 고민한 류승철 사장은 ‘자식을 낳았을 때 느꼈던 행복’이라는 답을 내어 놓았습니다.

“제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선수들과 끌어안고 반가워했어요.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은 제 자식이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아파도 안 올 수가 없죠. 물론 한국에 있는 제 아내는 제가 라오스로 왔다갔다 하는 것에 대해 걱정이 많죠. 하지만 응원도 많이 해줘요. 너무 고맙죠”

저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류승철 사장은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었습니다. 라오 브라더스를 향한 그의 마음이 정말 진실 되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만일 류승철 사장과 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마음가짐은 어떻게 가졌을까?’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훈련 중이던 선수들을 지긋이 바라보던 류승철 사장이 이번에 라오스에 동행한 일행을 저에게 소개했습니다.

“제 모든 상황을 아시는 분이에요. 우현권 사장님이신데요. 피칭머신을 만드신 업계의 대가이십니다. 20년 넘으셨죠. 저보다 훨씬 전문가시고요. 제가 라오스 간다고 하니까 아무 말씀 없이 동행하시고 제 비행기 표까지 끊으셨더라고요. 제가 이분을 왜 모셔왔냐면 말이죠”

류승철 사장이 다시 울컥하며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저와 류승철 사장 그리고 우현권 사장… 이렇게 셋은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선수들의 기합 소리가 유독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 순간 류승철 사장이 다시 말을 잇습니다.

“아이고 미안해요. 내가 왜 자꾸 이러지…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우현권 사장님이 내 뒤에 준비하고 계세요. 든든하죠. 이제 라오 브라더스와 인연을 맺으셨으니 저는 우사장님만 믿고 있습니다.”

옆에서 묵묵히 얘기를 듣고 있던 우현권 사장이 입을 열었습니다.

“류 사장이 혹시나 모를 자신의 부재에 대비해 저에게 라오 브라더스를 소개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류 사장의 사정을 잘 아니까 저라도 뭐든 도울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해서 왔습니다.”

피칭 머신을 업그레이드하는 류승철 사장과 우현권 사장

제인내씨가 사기를 당했던 큰 시련은 오히려 라오 브라더스에게 복이 되어 돌아온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게 마치 누군가 치밀하게 설계한 것처럼 말이죠. 처음 계획했던 대로 피칭머신 제작자가 사기를 치지 않고 정상적으로 제작해줬다면 라오 브라더스는 류승철 사장, 우현권 사장 같은 분들을 절대 만날 수 없었을 겁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의 길을 계획해도 결국엔 우리 뜻이 아닌 하늘의 뜻대로 되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류승철 사장이 글러브와 공을 가지고 훈련하는 선수들 사이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캐치볼을 시작합니다.

자신이 제작한 피칭머신 앞에서 캐치볼 하는 류승철 사장

남은 삶의 마지막 소명

오랫동안 사회인 야구를 한 덕분에 류승철 사장의 공 던지는 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곁에 서 있던 저에게 류승철 사장은 이런 말을 합니다.

“라오 브라더스를 도우면서 크게 깨달은 게 있어요. 행복의 조건이 돈이 아니라는 거죠. 이렇게 좋은 사람들하고 이런 일을 해 나간다는 게 행복이죠. 라오스에 와서 이만수 감독님을 인간적으로 처음 알게 됐는데 감독님을 향한 믿음이 커졌어요. 만일에 이만수 감독님이 라오스보다 더 먼 아프리카에 가서 야구를 보급하신다면 저는 거기도 따라가서 피칭머신을 만들어 줄 거예요. 얼마 남지 않은 제 남은 삶의 마지막 소명입니다”

라오스 햇살만큼 뜨거운 사나이들. 류승철 사장, 이만수 감독, 우현권 사장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을 위한 야구장이 지어지고 훗날 국제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눈물 나겠죠? 제가 눈을 감게 되더라도 그 상황이 온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저는 소망합니다. 제가 그 날까지 꼭 살아 있기를…”

류승철 사장은 아픈 몸임에도 불구하고 30도가 넘는 뙤약볕에서 진행된 '한국-라오스 친선대회' 첫날 두 경기의 심판을 봤습니다. 그는 잠시도 그늘로 들어가지 않고 계속 뙤약볕에 서 있었습니다. 첫 경기만 뛰었음에도 얼굴, 목, 팔에 태양열 화상(sun burn)을 입고 허덕인 저를 보면 류승철 사장의 투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껴집니다.

친선경기지만 규칙은 확실히 지킵시다
경기장에서 그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뜨거운 태양볕 아래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류승철 심판

9개월 전, 류승철 사장은 갑작스레 찾아 온 병으로 인해 시한부 삶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라오 브라더스의 성장을 지켜보는 희망이 버팀목이 되어 시한부 삶이 몇 달씩 계속 연명되는 상황이었는데요. 저는 이틀에 거쳐 라오스 현지에서 류승철 사장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봤습니다.

 

최근 류승철 사장은 몸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저는 지난 다섯 번의 연재를 통해 라오 브라더스 야구단에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어쩌면 그 기적보다 더 간절한 기적이 류승철 사장에게도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여러분도 함께 기원해주세요. 젊은 40대의 가장인 그가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라오 브라더스를 위해서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았습니다.

'헐크' 이만수의 꿈 “야구로 받은 사랑, 야구로 갚겠다!”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역사와 함께 했던 이만수 前감독(SK 와이번스)이 야구 불모지 라오스에서 펼치는 유소년 육성기. 라오스 판 ‘엘 시스테마’의 기적을 만들어가는 현장을 만나본다.

* 이 콘텐츠는 헐크 파운데이션(Hulk Foundation)의 스토리펀딩 프로젝트 내용을 재가공한 것입니다. 라오 브라더스와 헐크 파운데이션 후원에 관심이 있는 독자분들께서는 재단 페이스북(facebook.com/leemansoo22)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가장 주목할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꼽는 '혁신의숲 어워즈'가 17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어워즈의 1차 후보 스타트업 30개 사를 전격 공개한 것. ‘혁신의숲 어워즈’...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