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격한 환영식’ 사이클론이 맞아준 땅, 피지
‘내겐 너무 격한 환영식’ 사이클론이 맞아준 땅, 피지
‘내겐 너무 격한 환영식’ 사이클론이 맞아준 땅, 피지
2016.06.08 16:42 by 이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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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휴양지 중 하나로 꼽히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Fiji). 여러분은 ‘피지’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시나요? 바닥까지 보이는 맑은 바다, 코코넛이 영글은 야자수, 붉게 타는 석양, 꽃으로 치장하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전통 춤을 추는 피지 사람들의 모습… 아마 이런 것들 아닐까요.

(사진:Martin Valigursky/shutterstock.com)

 피지는 어떤 나라?

피지는 197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남태평양의 섬나라입니다. 총 322개의 섬이 있고 총 면적은 1만8272㎢(우리나라의 5분의 1), 인구는 89만명(우리나라의 55분의 1)에 불과한 작은 나라지요. 하지만 남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지리적 요건으로 피지의 난디(Nadi) 국제공항은 오세아니아 섬나라들을 이어주는 허브공항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천공항에서도 직항편이 주 3회 운항하며, 소요시간은 9시간 이상입니다.

(사진: 위키피디아)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지만, ‘지상 낙원’으로 불리는 피지의 풍광을 한 번이라도 접한 사람들은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는 대표적인 휴양지이기도 합니다. 지난 2010년 대한항공 승무원들이 추천한 여름 휴양지로 하와이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리며 몰디브(3위)의 아성을 무너뜨리기도 했는데요. 올 여름에도 많은 휴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전망입니다.

그러나 저는 ‘피지’하면 가장 먼저 사이클론이 떠오릅니다. 제가 비행기를 타기 전 남반구 사상 최대 규모의 사이클론 윈스턴이 피지를 강타했기 때문입니다. 항공편은 줄줄이 결항됐고,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도 ‘이대로 가도 되는 건가?’하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난 2월 22일 오전 8시 30분 경 피지의 난디(Nadi) 국제공항에 도착했는데, 당일 오전 6시에 공항이 운행을 재개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피지와의 인연이 시작된 셈이죠.

언제 ‘취소’로 바뀔지 몰라 조마조마하며 쳐다봤던 피지행 항공편 탑승구

 피지를 덮친 초강력 사이클론, ‘윈스턴’

지난 2월 20일, 남반구 사상 가장 강력한 사이클론 ‘윈스턴’이 피지에 상륙했습니다. 최대 풍속 325㎞의 강풍을 동반한 폭풍우로 인해 전체 인구의 40%에 달하는 약 34만 명의 사람들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경제적 피해도 엄청났습니다. 총 피해액은 4억7000만 달러(USD)로, GDP의 약 10%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사이클론 윈스턴으로 인해 학교가 무너져버린 모습입니다. (사진: UNICEF Pacific 페이스북 페이지-UNICEF/2016/Mepham, https://www.facebook.com/likeunicefpacific)

수도 수바는 사이클론의 직격탄을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밤새 강항 바람과 폭우가 몰아쳤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사상 초유의 사이클론이 발생한 것은 지난해부터 위세를 떨친 엘니뇨현상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기후변화가 앞으로 얼마나 더 위력적인 자연재해를 낳을지, 앞으로가 더욱 걱정됩니다.

말로만 듣던 ‘후폭풍’, 이런 것이었구나!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난디에 도착한 날, 사이클론이 지나갔다는 말이 무색하게 하늘은 무척 맑았습니다. 그 때문이었는지 수도인 수바에 도착할 때까지도 꺾여버린 나무나 쓰러진 표지판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이클론을 겪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직면한 현실은 ‘후폭풍’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보여주는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공기 중으로 흩어져 없어져버린 줄 알았던 사이클론의 파편들이 피지 곳곳에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수바에 도착해 차를 타고 가며 본 풍경. 스러진 나무들이 앞으로 펼쳐질 이곳에서의 고난(?)을 말해준다는 걸 그땐 미처 알지 못했죠.

사이클론의 여파를 체감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집을 구하는 것부터가 큰 난관이었기 때문이지요. UN 봉사단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기관으로부터는 “신문에 매물이 나오니 찾아보라”는 답변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미리 예약해뒀던 호텔을 연장해서 시간을 벌어보려 했으나, 예약이 다 차서 불가능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사이클론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수도로, 그리고 발전기가 있는 호텔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아침 체크아웃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날 밤,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호텔에서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연락해보느라 진땀을 쏟았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제가 앞으로 일하게 될 기관(UNICEF)에 연락이 닿아, 한 동료의 아파트에 며칠 간 머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한 달간 방을 빌려줄 수 있는 다른 동료의 집으로 옮기면서 거처에 대한 고민을 잠시나마 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중에 집을 알아보러 다닐 수 없다는 문제가 생겼는데, 그것 또한 윈스턴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유니세프 태평양 사무소에서 홍보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물밀듯이 몰려오는 피해상황 콘텐츠를 정리해서 알리고, 호주나 뉴질랜드 같은 공여국은 물론 뉴욕 본부와도 공유하느라 저녁 늦게까지 사무실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긴박한 상황에서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바쁘다보니 사무실 사람들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했고, 교류할 기회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이런 탓에 피지에서의 첫 시작은 여러모로 꼬여버렸고, 그렇게 만든 사이클론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처음 몇 주간은 평일 내내 꼬박 사무실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집을 알아보는 건 주말에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토요일에 나오는 ‘Fiji Times’에 가장 먼저, 제일 많은 매물이 나온다기에 늘 새벽 6시에 일어나 근처 주유소에 신문을 사러 갔습니다. 인터넷보다 빠른 신문이라니… 이 아날로그적 방식에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신문을 사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왼 손으로는 매물 리스트를 훑고, 오른손으로는 구글맵을 이용해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주소만 보고는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위치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다보면, 괜찮은 매물을 발견하고 주인에게 전화를 해도 “It's taken(벌써 나갔어요)”이라는 말을 듣기 일쑤였습니다.

‘피지 타임즈’. 토요일 새벽마다 이것을 손에 넣기 위해 그렇게 달렸더랬죠.

피지의 집값이 비싸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사이클론 이후 문제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사이클론 때문에 ‘괜찮은 매물’ 자체가 별로 없었을 뿐더러, 괜찮지 않은 것들도 무척이나 비싸졌기 때문입니다. 한 날은 한 달에 900FJD(우리 돈 약 50만원)라는 집을 찾아갔는데 위생은 둘째 치고 방범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주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20분 동안은 벌레에게 공격을 당해 다리가 온통 빨갛게 부어버렸습니다. 이 집이라도 만족하며 계약을 해야 하는 건지, 관광지가 아닌 개발도상국의 피지에서 스스로가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며 돌아왔던 그 날의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수도 수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들의 모습입니다. 이래 봬도 한 달 렌트비가 서울의 원룸 월세와 맞먹는 수준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한국인 홈스테이를 할까 고민하던 찰나, 운 좋게 룸메이트를 찾아 지금은 사무실 근처에서 살고 있습니다. 반씩 월세를 나눠 내는데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지만,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갈 때마다 초조했던 예전을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첫 몇 주는 쉴 새 없이 집으로 들어오는 개미 떼와 싸우느라 룸메이트와 고군분투하기도 했지요. 그럴 때면 “개미가 많으면 바퀴벌레가 없다잖아”라고 서로 위안하며 웃었습니다. 집을 찾는 동안 머물렀던 동료의 집은 상당히 비싸고 좋은 곳이었는데,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바퀴벌레가 제 다리 위에 기어 다녔던, 웃지 못 할 기억을 꺼내 이야기를 하면서 말입니다.

지금의 마이 파라다이스. 룸메이트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히 집은 구했지만 사실 ‘후폭풍’의 영향은 아직까지 남아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이클론 이후 폭등한 과일‧채소 값은 소비자들뿐 아니라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보통 1년에 한 번 정도 오는 사이클론이 올해는 이례적으로 2번이나 들이닥치면서 홍수를 일으켰기 때문에 그 여파가 더욱 오래 지속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기껏 마련한 보금자리가 망가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며 이런저런 대비를 했었는데 제가 사는 지역을 비껴 지나가면서 강한 비바람으로 그쳤습니다.

이달 초 윈스턴으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받은 섬 중 하나를 다녀왔습니다. 사이클론이 지나간 지 4달이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당시의 위력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습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악수도 나누고 이야기도 하며 같이 시간을 보내다보니, 사이클론 피해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사이클론에 대비한 흔적들. 다행히 두 번째 사이클론은 피지를 빗겨갔습니다.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인 주디 갈런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첫인상은 누구도 두 번 줄 수 없다. 그러나 첫인상의 위력은 의외로 막강하다.”

맞습니다. 격한 환영식으로 만들어진 피지에 대한 첫인상은 제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새롭게 피지와 “안녕!”하고 인사를 주고받을 때마다, 그것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글을 통해 제가 보지 못했던, 그래서 새롭게 알게 되었던 피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안 좋았던 첫인상마저 바꿀 수 있는 위력을 가졌다면 피지, 이 나라의 매력은 어마어마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사진:이자영

UN 희망원정대 네팔, 우즈베키스탄, 몽골, 가나, 피지, 스리랑카. 이 여섯 나라에서 활동하는 UN 봉사단 청년들이 현지에서의 활동과 생활을 고스란히 글과 사진에 담았습니다. 각자가 속한 UN 기구에서의 이야기와 함께 그곳의 사회와 문화, 여행정보 등 6개월 동안 보고 겪은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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