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너는 이미 어른이야!
바보야, 너는 이미 어른이야!
2016.06.23 18:17 by 시골교사

방금 샤워를 마친 여성이 보무당당하게 복도를 활보한다. 젖은 머리에 달랑 수건 한 장 걸친 모습. 어떤 시선도, 눈치도 살피지 않는 게 영락없이 자기 집 안방에서의 몸짓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마주치는 사람들은 가족이 아니다. 또래 친구들, 심지어 남학생들도 많다. 중국에서 온 왕(王)군도 있고, 이집트 유학생 모제스(Moses)도 있고, 폴란드 출신 필립(Filip)도 있다. 독일 대학의 기숙사에서 겪는 기분 좋은 황당함이다.

어, 그래서 내일 과제가 뭐라고?(사진:Dmitry Suzdalev/shutterstock.com)

 

| 독일 기숙사엔 남‧녀 구분이 없다

내가 공부했던 킬 대학교는 1665년 덴마크 영주 '크리스티안 알브레히트(Christian-albrecht)'에 의해 세워진 주립대학이다. 정식 명칭은 ‘크리스티안 알브레히트 우니버지태트 쭈 킬’(Christian-albrecht Universitaet zu Kiel). 당시 학생 수는 2만3000명 정도, 기숙사는 약 2000명이 생활할 수 있는 규모였다.(1인 1실)

기숙사는 구조와 비용에 따라 총 10개동으로 나뉘는데, 무료 인터넷, 개별 부엌과 화장실 등 최고급 시설을 갖춘 방의 경우, 매달 35만원 정도를 지불한다. 방 세 개가 딸린 공동하우스 구조의 기숙사동도 있는데, 세 명이 가족처럼 하나의 부엌과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가장 싸면서 공급량이 많은 기숙사동은 매 층마다 15명이 하나의 부엌과 화장실, 샤워실을 사용한다.(매달 20만원 정도)

독일의 기숙사 비용은 방값과 부대시설 사용료만을 의미한다. 식사는 제공되지 않는다. (사진:Vasin Lee/shutterstock.com)

독일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기숙사의 배치다. 여학생동과 남학생동의 구분이 따로 없다. 달랑 세 명이서 사는 공동하우스도 마찬가지로 남녀 구분 없이 모여 산다. 고등학교를 마치면 완전한 성인(成人)이라는 인식이 강해서다. 다 큰 어른들을 두고, 성별을 구분해 방을 배치하는 것이 그들 눈엔 어쩌면 우습고 유치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독일 대학에서 남녀문제는 온전히 그들 몫인 셈이다.

사실 남녀 구분 없이 어우러져 사는 기숙사 문화에 충격을 받는 건 갓 도착한 외국인 유학생들뿐이다. 처음 겪는 이런 문화에 당황해하기 일쑤다.

Oh, my… Thanks God!(사진:avemario/shutterstock.com)

물론 이런 기분 좋은 황당함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 모인 곳이 다 비슷하겠지만, 사소한 것에서 마찰이 빚어지기도 한다. 특히 공용부엌 사용에서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워낙 식습관과 위생관념이 다르다보니 서로 맞춰 살기가 어렵다. 특히 기숙사에 외국인이 들어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그들은 매 끼니를 독일식으로 먹지 않는다. 특히 주말이면 같은 동포끼리 삼삼오오 짝을 이뤄 고국 음식을 해먹기 일쑤다. 그러면 기숙사 전체가 그 민족 고유의 향신료와 음식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냄새로 가득 찬다.

냄새하면 한국 아니겠는가. 한국 학생에 대해 독일 아이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괴로워하는 냄새가 있다. 바로 된장이다. 어쩌다 된장찌개를 한번 해먹는다 싶으면 독일 학생들은 그날 아예 부엌에 나오지 않는다. 물론 처음에는 “이게 뭐냐? 무슨 재료냐? 어떻게 만든 것이냐?” 등의 호기심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소수일 뿐이다. 또 기숙사에 중국 유학생이 많은 경우는 날마다 해먹는 그들의 기름진 음식냄새로 기숙사 전체가 몸살을 앓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외국인 유학생과 얼기설기 얽혀 살던 독일 학생들은 나중에는 외국인이 적은 기숙사동을 찾아 떠난다. 비단 그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많은 학생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숙사를 나와 일반 주택으로 옮긴다. 그래서 학교 주변의 연립주택은 아예 통째로 학생들의 숙소로 이용되기도 한다.

 

| 독일 대학은 입학‧졸업식이 없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예전 우리 세대 때는 ‘대학생활’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었다. ‘대학생만 되면…’이라는 가정 뒤에는 수많은 희망이 따라 붙었다. 그 중 하나가 (고등학교 때와는 전혀 다른) 자유로운 수업이다. 어깨너머 듣는 대학생의 하루, 이를 테면 ‘듣고 싶은 수업만 골라 듣는다’, ‘시작하는 시간도, 끝나는 시간도 맘대로다’ 같은 자유로운 학업 얘기는 오랫동안 다람쥐 쳇바퀴의 삶을 살았던 수험생들의 환상을 키우기 충분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정말 자유로운 (일탈에 가까운) 시간표는 고스란히 불이익이나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조교가 짜주거나 이미 짜여 있는 경우가 많다. 교육과정과 관련된 일은 과대표를 통해 전달받거나 과 사무실에서 알아서 챙겨준다. ‘허울뿐인 자유’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독일의 대학교육은 진정한 의미로 ‘알아서’ 한다!

너의 대학생활을 DIY하라(사진:ivosar/shutterstock.com)

독일에는 입학식과 졸업식이 따로 없다. 대신 ‘학과설명회’라는 게 있다. 학과설명회는 학기가 시작되기 한 주전에 개최되는데, 이를 통해 대학·대학원 과정에서의 이수과목, 학기제한, 시험규정 등의 교육과정과 학사규정 정보를 상세하게 파악한다. 특히 신입생의 경우, 시험규정과 학기제한의 내용을 제대로 염두해 두지 않으면 학업도중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학과설명회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본인의 학업계획을 알아서 세워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엔 완벽하게 스스로의 몫이다. 학생들은 각자가 교육과정과 학사규정에 맞게 매 학기마다 시간표를 혼자 짜고, 학업 진행 속도를 본인이 스스로 조절해 가야 한다.

사실 이런 자율적인 학사규정은 상당히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에서 수동적인 대학생활을 하던 내게, 갑자기 던져진 각종 규정과 빈 강의 시간표는 굉장히 생소하고 불안한 것이었다. 그때 처음 느꼈다. ‘자율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것’인지.

진정한 자유는 뜬구름 같은 것이었나…(사진:phloxii/shutterstock.com)

이뿐만이 아니다. 성적표도 본인이 직접 발품 팔아 하나하나 챙겨야 한다. 교육과정을 중앙에서 통제하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합격한 과목에 대한 성적표를 일일이 해당 과목 교수의 비서실에 가서 찾아야 한다. 졸업장과 졸업증서도 개별적으로 챙긴다. 모든 교육과정을 끝내면 그동안 이수한 과목의 성적표를 가지고 교무과에 가서 졸업신청을 하면 그만이다. 신청 후, 두 달 정도 지나면 졸업증서가 나왔다는 통보가 오고, 교무과에서 졸업증서를 찾으면 그것으로 대학·대학원 생활은 끝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기’의 개념도 약하다. 학업진행이 본인에게 자율적으로 맡겨지기 때문에 입학동기가 꼭 졸업동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학생은 학업 진행 속도가 다른 학생들에 비해 많이 월등히 빨라 몇 학기를 앞서기도 하고, 몇 번의 낙제를 통해 뒤처지는 경우도 많다. 내 유학생활을 두렵고, 힘들게 했던 것도 이 부분이다. 뒤처진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움과 함께 평가의 냉정함에 두려워 떨게 되고, 한참 앞서가는 학생을 보면 부러움과 함께 ‘나도 저렇게 해낼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이 찾아 들게 된다.

 

germany

독일인들은 휴가를 위해 산다?

 

전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돌아다니는 것이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성격이 아닌 탓이지요. 그런 제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시도해본 건 독일에 사는 언니의 초청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열섬 현상이 나타나던 해(1992년), 언니 가족과 함께 열흘 간 유럽 5개국을 숨 가쁘게 돌아다녔죠. 발이 부르트도록 이곳저곳을 누비고, 돌아와서는 결국 한 주 동안 앓아누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에게 여행과 휴가는 좀 다른 의미입니다. 사실 그들의 최대 관심사가 그것이죠. 올해는 어디로 휴가를 갈 것인지,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연중 내내 고민하고, 이것 때문에 일 년을 일하며 버팁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은퇴한 할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저는 그에게 “연금으로 생활이 안 되세요? 왜 돈 벌러 나오셨어요?”라고 물었죠. 그는 “여름 휴가비를 벌기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황당했죠. ‘나 원 참! 안 놀면 되고, 휴가 안가면 그만이지. 그 나이에 휴가비를 위해 이렇게 힘들게 일하다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게 문화와 생각의 차이겠죠. 

그들이 돈을 버는 목적은 집을 장만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자녀들의 학비나 결혼자금 때문도 아닙니다. 월세가 안정되어 있고 수업료와 사교육비가 들지 않으니, 평생을 집과 자녀교육에 매이지 않아도 되죠. 의료보험이나 연금제도도 잘되어 있어 아플 걱정이나 늙을 걱정에서도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일의 목적은 쉼과 휴식입니다. 그들은 1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휴가기간 동안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여행지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을 즐기고, 썬탠을 하고, 책을 보고, 수영을 하면서 여유 있게 몸과 마음을 위로합니다. 그리곤 다시 건강하게 일터로 복귀하죠. 이게 그들의 휴가이며 여행인 것이죠.

(Tom Wang/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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