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다. 로마의 여름은 ‘덥다’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사용한 다리미를 다시 넣기 전에, 좀 식었나? 하는 마음으로 다리미판을 만질 때 느껴지는 실제적인 뜨거움. 그 열기가 온 몸에 내려 꽂히는 것이 바로 로마의 더위다.
40도를 웃도는 뜨거움이어도, 그늘에만 가면 같은 장소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시원하다. 참 천연덕스럽다. 한국의 여름과 비교해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엄청 건조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상기후로 비가 간간히 내릴 땐 한번씩 습한 한국을 떠올리게 해주지만.
로마의 폭염은 밤까지 이어진다. 해가 져도 진 것 같지 않다. 한국에서 열대야를 이기지 못했을 땐 근처의 공원으로 나갔었다. 서울의 한강은 이미 ‘핫플레이스’이지 않은가? 국립극장 등지에서 밤잠을 설치는 이들을 위해 공연을 진행했었던 기억도 난다.
서울에 한강이 있다면, 로마엔 ‘룽고 떼베레’(LUNGO TEVERE)가 있다. 로마 시민의 여름 더위를 달래줄 장소이자, 오늘 소개할 바로 그곳이다.
로마의 젖줄인 테베레 강변은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사이마다 혹은 좌우마다 'Lungo tevere Farnesia', 'Lungo tevere dei Tebaldi', 'Lungo tevere Raffaello Sanzio' 등의 이름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한 여름 밤에는 강변을 따라 야시장이 펼쳐진다.
한국에 있을 때 아파트 단지에 야시장이 펼쳐지면 가족들과 함께 슬리퍼를 찍찍 끌며 나갔었다. 거기서 삶은 문어나 핫바를 사먹고, 1000원짜리 생활용품을 뒤적거리고, 작은 바이킹을 타는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잠옷 바람으로 나가도 부담 없었던 것이 야시장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다. 그런데 로마는 조금 다르다.
로마의 야시장은 로마의 도심 한 가운데 펼쳐져 있다. 밤을 즐기려는 현지인과 여행객들이 모이는 곳이다. 당연히 다들 멋지게 차려 입고 나선다. 이에 걸맞게 잘 꾸며낸 식당과 술집도 그득한데, 저녁 7시경부터 작은 조명들이 하나 둘 켜지면 비로소 흥겨움이 넘실댄다. 이 길은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늑대에게 발견되어 늑대젖을 먹고 컸다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로마 건국신화의 물길’이기도 하다.
떼베레 강변의 전경
야시장에 빠질 수 없는 의류상점
여름 저녁에는 맥주를 마시고,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필자가 찾았을 땐 비가 올 것만 같은 구름이 가득 껴서 습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럼에도 야자수 나무같이 생긴 병에 칵테일을 담아 파는 가게는 북새통이다. 초콜릿 잔에 담긴 리큐르를 파는 곳도 눈에 띈다. 역시 축제의 흥겨움은 우스꽝스러운 걸 시도하는 데 있다.
사격, 공 던지기, 인형 따기 가판은 참으로 익숙해서 반갑다. 단순하지만 결코 그냥 지나치기가 힘든 것들. 4유로에 15발짜리 사격게임을 해 9번을 맞췄지만 손에 돌아온 것은 돌고래 모양 열쇠고리 하나뿐이다. 그마저도 조악한 플라스틱 재질이지만, 그래도 즐겁다. 바로 옆 테이블 풋볼 게임장에선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들만의 월드컵을 연다.
'유로 2016'을 보기 위해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맥주를 마시기 위해 '유로 2016'을 보는 사람들. 뭐가 먼저든 즐겁다.
로마의 여름은 짧다. 신화와 역사는 잠깐 내려두고, 로마의 밤을 즐기자.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여행이라면, ‘Lungo Tevere’는 그 여행을 보다 확실하게, 그리고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거리다.
/사진: 김보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죠'걷고 또 걷는다.' 걸작이라 불리는 도시 ‘로마’를 백 배 만끽하는 비법이다. 한때 전 유럽의 정치‧경제‧사회‧문화가 드나들었던 로마의 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보물. 작은 골목길이든, 큰 광장길이든 흥미로운 이야기와 사연이 즐비하다. 로마살이 1년 차 에디터가 전하는 ‘로마의 길’ 이야기를 통해, 콜로세움과 바티칸 너머의 진짜 로마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