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소설가를 품은 간이역
김유정, 소설가를 품은 간이역
2016.07.02 20:23 by 최현빈

서울과 춘천을 오가는 경춘선 열차. 옛날이나 지금이나 춘천으로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낭만적입니다. 춘천으로 가다 보면 유난히 눈길이 머물게 되는 역이 있습니다. 북한강을 따라 대성리, 청평, 강촌을 지나면 나오는 ‘김유정’이란 이름의 역입니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동백꽃>, <봄봄>과 같은 작품으로 우리에게 친근한 소설가 김유정. 그의 이름만으로 왠지 서정적일 것 같아 내려 보았습니다.

 

IMG_0046

 

소설가의 정취를 담은 역

열차에서 내려 승강장에 발을 딛자 궁서체로 쓰여진 역의 안내판이 방문객들을 맞아줍니다. 간판뿐만 아니라 역 내의 모든 문구들은 이와 같은 글씨체로 되어 있습니다. 소설가의 이름이 역명이 되었기 때문일까요. 이런 작은 부분도 김유정역에 내리고 싶게 만드는 특별한 이유입니다.

 

IMG_0243

 

진지한(...) 분위기의 김유정역

김유정역은 2010년 12월 21일, 경춘선에 복선 전철이 다니게 되면서 새로 지은 역사(驛舍)가 기존의 역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새롭게 지어진 대부분의 역들은 유리를 활용한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곳은 기와가 얹힌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역사들처럼 반짝거리고 세련된 느낌은 덜할 수도 있지만, ‘김유정’이란 역의 이름과는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모습입니다.

 

IMG_0293

 

 

crop

 

옛 김유정 역사는 철도문화재로 지정되어 철거되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더 이상 열차가 다니지 않는 선로에는 한때 이곳의 청춘을 실어 나르던 무궁화호 열차가 자리를 지키며 방문객들을 추억에 젖게 만듭니다. 오래된 승강장에도 옛 역의 분위기를 간직한 시설물들이 있어 사진을 찍는 연인과 친구들의 멋진 배경이 되어주고 있지요.

 

 

IMG_0104

 

 

 

IMG_9912

 

 

많은 연인들이 찾는 옛 김유정 역사 포토존

최초의 사람 이름 역

이곳의 처음 이름은 ‘신남역’. 1939년 역이 지어질 당시 춘천시 신남면에 세워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듬해 신남면은 동내면과 통합되어 ‘신남’이라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역명은 그대로 남아 예전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김유정역 주변을 둘러보면 여전히 ‘신남’이라는 이름의 간판을 건 많은 가게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남역이 김유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 것은 2004년. 역이 자리한 실레마을(신동면 증리)에서 나고 자란 소설가인 김유정의 이름이 그대로 역명이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람의 이름이 역명으로 쓰인 것은 처음이었죠.

역 주변에는 김유정을 기념한 시설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여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렸다.”

그의 대표작인 소설 <동백꽃> 속에서 주인공과 점순이가 수탉 싸움을 붙이고, 감자를 나눠먹던 곳도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하였습니다. 근처에 위치한 김유정의 복원된 생가 주변에는 문학관이 생겨 그의 작품 속 장면들과 옛 자료들을 볼 수 있습니다.

 

 

IMG_0607

 

 

 

IMG_0592

 

 

복원된 김유정의 생가와  문학관

서울 이웃 춘천

서울과 춘천이 전철로 연결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이곳으로 여행을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날도 1박 2일 또는 당일치기로 춘천으로 여행을 떠나온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여행은 떠나고 싶고, 시간은 마땅치 않고…. 가까운 곳을 찾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어요.”

박지은(25)씨는 방학을 맞아 친구와 당일치기 춘천 여행을 나왔습니다. 옛 김유정역에서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보고 찾게 되었다는 지은씨. 역을 둘러보니 예쁜 풍경들이 많아서 자신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담아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친구와 사진을 찍은 뒤에는 인근의 김유정문학관도 둘러보고, 춘천의 명물인 닭갈비도 먹으러 갈 예정입니다.

 

IMG_0528

 

서울 영등포구에서 온 원정원(21)씨는 혼자서 이곳을 찾았습니다. 그는 춘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김유정역은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혼자서 시간을 내어 온 만큼,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레일바이크도 타고, 문학관 구경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해보고 돌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카메라는 선택, 삼각대는 필수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소설가의 이름이 역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찾기 시작한 게 10년이 넘었네요.”

김성진(69세)씨는 옛 김유정 역사 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의 단골손님입니다.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해 맑은 공기를 쐴 곳을 찾다가 여기까지 닿게 되었다고 합니다. 단상에 앉아 있으면 역을 둘러싼 산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읽고 싶었던 책도 마음껏 읽고, 신문도 읽습니다. 그는 “쉴 곳을 찾아 여러 곳을 다녀 봤지만 여기만한 곳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IMG_9975

 

 

IMG_0216

 

소설에서는 시골의 분위기를 정감 있게 전달했다면, 그의 이름을 딴 오래된 역사는 많은 사람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다른 간이역과는 달리 김유정역엔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옛 소설가의 정취를 간직한 이 역이,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IMG_0051

 

 

railwaycross

 

 

 내 맘대로 포토 스팟

옛 김유정역 승강장에는 철도 건널목, 안전 표시판 등 다양한 시설물들이 있어 예쁜 사진을 찍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시선을 조금 달리해서, 이곳에 남겨진 무궁화호 열차의 뒤편을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찍는 포즈에 따라 애절한 드라마 속의 연인이 될 수도 있고, 서부의 총잡이가 되어 볼 수도 있습니다.

 

crop2

 

 

/사진: 민동오

필자소개
최현빈

파란 하늘과 양지바른 골목을 좋아하는 더퍼스트 ‘에디터 ROBIN’입니다.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자본과 인력, 인지도 부족으로 애를 먹는 스타트업에게 기업공개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단숨에 대규모 자본과 주목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 파트너와 고객은 물론, 내부 이...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현시점에서 가장 기대되는 스타트업 30개 사는 어디일까?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