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의 보고, 하트셉수트 장례 신전 뜯어보기
고고학의 보고, 하트셉수트 장례 신전 뜯어보기
2016.07.14 16:21 by 곽민수

지난 회 설명했던, 이집트 최고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 그녀의 장례신전은 이집트의 다른 신전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절벽을 신전의 배경으로 선택한 점뿐만 아니라 보통의 이집트 신전들이 평평한 지대에 세워지는데 반해서 이 신전은 경사로를 따라 쭉 올라가야만 신전이 가장 안쪽에 도달할 수 있는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이 특별한 신전이 여행자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말씀드린 아름다운 기암절벽 배경과 독특한 신전의 구조 때문입니다.

그와 더불에 보존 상태가 좋은 신전 벽면의 부조들도 여행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신전이 이와 같은 상태로 쭉 보존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서는 폴란드 조사팀이 지난 수십년동안 발굴과 복원 작업을 지속해왔는데, 오늘날 신전이 갖고 있는 모습은 이들 연구자들의 노력이 낳은 결과물입니다.

데이르 엘-바흐리
데이르 엘-바흐리

첫 번째 경사로 좌우에는 ‘제 1 주랑’ 이 있습니다. 데이르 엘-바흐리의 주랑들은 신전의 중심축, 그러니깐 신전 내부로 이어지는 경사로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나눠집니다. 여기에서 북쪽은 신전을 바라보는 쪽에서 오른쪽, 그리고 남쪽은 왼쪽입니다.

제1주랑의 북쪽 부분은 소위 ‘사냥의 주랑’이라고 불립니다. 이것은 이 주랑에 사냥과 관계된 부조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사냥의 대상이 되는 것은 네발짐승이 아닌 새들입니다. 이 '사냥의 주랑'에 남아 있는 그림들의 보존 상태가 아주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눈길을 끌만한 아름다운 그림들이 꽤 남아 있습니다.

특히나 그물로 새를 잡는 장면은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역시나 훼손 정도가 심해서 흐릿한 형상만이 남아 있을 뿐이지만 이집트로 쳐들어오는 적들을 짓밟고 있는 스핑크스의 형상을 한 하트셉수트의 모습도 꼭 자세히 살펴보셔야합니다. 파라오가 스핑크스로 그려지는 것이 이집트에서는 아주 흔한 모티브이긴 하지만, 하트셉수트는 여성 파라오였고 또 아마도 전장의 경험이 전혀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사냥의 주랑
사냥의 주랑
스핑크스로 분한 하트셉수트.

남쪽 편의 주랑은 ‘오벨리스크의 주랑’이라고 불립니다. 이곳에서는 하트셉수트의 건축가로서의 업적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은 대부분 우리가 곧 동안으로 건너가 가보게 될 카르나크 신전을 단장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트셉수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곳 신전에서 제작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한 쌍의 오벨리스크는 카르나크 신전 외벽 근처에 세워졌습니다. 이 두 기의 오벨리스크는 높이가 62미터 이상이었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재에는 파괴되어 북쪽 오벨리스크 상단에 얹혀있던 피라미디온 한 기만이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한 쌍의 오벨리스크를 세우는 작업은 하트셉수트가 행했던 카르나크의 단장 작업 가운데에 가장 주요한 것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하트셉수트는 동안의 카르나크 신전과 직선으로 이어지는 이곳 데이르 엘-바흐리에 이 작업을 아주 자랑스럽게 묘사했던 것 같습니다.

오벨리스크 주랑
오벨리스크 주랑. 이곳의 기둥들은 현대 학자들에 의해서 복원된 것입니다.
오벨리스크 주랑의 부조. 사진 상으로는 자세히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분명 이 장면은 오벨리스크를 배에 실어 옮기는 장면입니다.
카르나크 신전의 외벽 밖에 세워진 한 쌍의 오벨리스크 복원도. 훗날 투트모스 3세는 이 오벨리스크가 세워진 곳까지 신전을 확장합니다.  (사진: Digital Karnak)
제 1 경사로

자, 그럼 한 층을 더 올라가 이제 제 2 주랑으로 가봅시다. 이곳은 아래서 보았던 첫 번째 주랑보다 그 규모가 훨씬 더 큽니다. 앞서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곳도 역시 경사로를 중심으로 주랑이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제 2 테라스

‘탄생의 주랑’이라 불리는 제 2 주랑의 북쪽 부분은 하트셉수트의 탄생과 그녀의 신성성을 묘사하기 위해서 마련된 공간입니다. 이곳의 부조는 데이르 엘-바흐리의 여러 부조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입니다. 하트셉수트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분명히 파라오로서 지니는 종교적ㆍ정치적 정당성이 다른 남성 파라오들에 비해서 조금은 덜 탄탄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파라오 직을 유지시키 위해서 자신의 정당성을 어떤 식으로건 창조해내어 강화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그녀 자신이 이집트 제 1의 신, 아멘 신의 딸이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작업이 이곳 탄생의 주랑에서 이루어집니다. 이곳에는 아멘 신이 자신의 후손을 보기 위하여 인간으로 분해 하트셉수트의 어머니인 아모세 왕비를 유혹해서 하트셉수트를 임신하게 하는 장면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아멘과 하트셉수트의 어머니가 동침하는 장면이라던가, 하트셉수트를 출산하는 장면이라던가, 이런 묘사들은 오늘날의 이집트 학자들에게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상을 연구하는데에 큰 도움을 주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장면은 탄생한 하트셉수트를 아몬-라가 직적 안고서 자신의 친딸임을 선언하는 장면인데, 이 장면에서 하트셉수트의 신성한 권위는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탄생의 주랑
탄생의 주랑

남쪽 열주실의 별칭은 ‘푼트의 주랑’입니다. 푼트라는 이름은 지명입니다. 이 푼트의 정확한 위치는 여전히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지는 않지만, 고대이집트인들이 ‘아름다운 이국 땅’의 대명사로 여기던 곳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푼트는 오늘날의 소말리아나 에티오피아 인근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곳의 실제 위치보다는 이 지역의 상징성이 더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이곳이 이집트의 모든 종교의식에서 필수품이었던 향의 원재료가 되었던 향나무의 주요한 공급지였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이집트인들은 이곳을 어떤 방식으로건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 아래에 두려고 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아주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원정대가 이곳으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이곳 푼트의 주랑에는 하트셉수트 시절에 있었던 한 원정을 그 시작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벽면에 새겨진 부조에서 특별히 자세히 이야기되고 있는 것들은 이 원정을 통해서 이집트로 반입되었던 이국적인 물품들입니다. 그 물품들에는 향의 원료가 되었던 향나무를 비롯해서 난쟁이, 황금, 흑단, 상아, 표범 가죽, 기린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정대가 귀환하는 장면에는 특별히 하트셉수트와 투트모스 3세가 함께 등장합니다. 투트모스 3세는 향료를 나르고 있으며 하트셉수트는 직접 원정대가 가지고 돌아온 물품들을 확인합니다.

푼트의 주랑
푼트의 주랑
푼트 원정대의 항해. 빨간 상자 안에 쓰여진 부분이 ‘푼트’라는 지명입니다.
p-wn.t (푼트)라고 쓰여진 부분.
푼트의 향나무

제 2 주랑 양 옆에는 하토르 신과 아누비스 신을 위한 예배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토르의 경우에는 암소의 모습을 한 여신으로 종종 이시스 여신과 동일시되기도 합니다. 이집트 신화에서는 완전히 다른 신격들이 갑자기 동일시되거나 아니면 융합되거나 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하토르 여신은 사랑과 미와 음악과 어머니의 여신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여성적’이라고 믿는 그 모든 것들을 관장하는 신이었습니다. 어쩐지 따스하고 사랑이 가득한 느낌이 드는 신이지요.

반면에 아누비스는 전혀 느낌이 다른 신입니다. 그는 보통 자칼의 머리를 하면서 미이라를 만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아누비스는 미이라 제작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통하지 않고는 미이라가 될 수 없었고, 따라서 장례신전에서 아누비스가 중요하게 모셔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장례신전에서는 실제로 미이라가 제작되거나 아니면 완성된 미이라에게 ‘입을 여는 의식’이 행해졌습니다. 이곳 데이르 엘-바흐리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토르 예배소의 신전 기둥머리 장식
아누비스 예배소
아누비스 예배소의 채색 부조
마지막 경사로를 오르면 만나게되는 오시리스 기둥들

신전의 경사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상부 테라스라고 불리는 장소가 있습니다. 이곳에 이르게되면 우리가 메디넷 하부에서 이미 만나보았던 오시리스로 분한 파라오의 기둥들이 처음 우리는 맞이합니다. 신전의 가장 윗층인 이곳은 여러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 왕실가족과 하트셉수트 자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공간, 즉 지성소입니다. 이곳은 신전에서 가장 중요한 심장부이지만 신전이 운영되던 시대에는 외부인은 절대로 출입할 수 없었던 곳입니다. 오로지 이 신전의 사제들과 파라오만이 이곳에 이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 신성한 장소에 아주 자유로운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데이르 엘-바흐리 신전의 가장 안쪽, 즉 지성소
데이르 엘-바흐리의 하트셉수트 장례 신전

 

/사진:곽민수

필자소개
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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