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도 치마 입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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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8 17:19 by 지혜

공주가 되고 싶은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걀>, <종이 봉지 공주>

바삭하게 넓게 퍼지는 분홍색 드레스와 하트 모양이 곳곳에 찍힌 분홍색 구두, 빈틈없이 반짝이는 분홍색 왕관을 쓰고 거울 앞에서 빙그르르, 한껏 동그랗게 뜬 눈과 팽팽하게 당긴 입 꼬리까지. 지금 초록이는 온통 분홍색이다.

아, 정말이지 나는 공주도 싫고 치마도 싫다. 초록이의 분홍색이 싫다.

초록이가 분홍색 드레스를 차려입고 얌전히 앉아 공주님이 되어 있다 보면 어느새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것이 꿈의 전부가 될까봐, 그래서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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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기존에 ‘여성적’이라 이야기 되었던 것들로부터 떼어놓고 싶었다. 그래서 초록이의 이름도 중성적으로 지었고 초록이가 먼저 머리 모양을 짧게 해달라고 할 때는 은근히 뿌듯해 하기도 했다. 바비 인형 앞에서는 고민을 거듭했지만 ‘카봇’과 ‘또봇’은 기꺼이 사주었다. 엄마는 무슨 색깔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일부러 하늘 닮은 파란색이나 늘 고요한 회색이라고 답했다. 남편은 물론 양가 부모님께도 '여자는'으로 시작하는 말은 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내 아이는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커야 하니까.

그래서 설득하려고 했다. 바지의 실용성과 다양한 색깔의 아름다움을 이유로 들며 매일 아침 입씨름 끝에 결국 활동하기 편한 옷을 입고 나가게 만들었다. 나는 초록이가 공주가 되는 상상을 이제 그만 멈추길 바랐다.

그렇지만 초록이의 한마디로 이제 그만 멈춰야 하는 쪽은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분홍색을 싫어해? 그런데 있잖아 나는 분홍색을 좋아해.”

단단한 표정으로 내 눈을 바로 보고, ‘분홍색’에 힘주어 말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자유’와 ‘독립’은 스스로 원하는 색깔의 옷을 입을 때 생긴다는 것을 왜 잊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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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가 아직 뱃속에 있었을 때, 어제보다 더 통통해진 배를 두드리며 남편에게 그랬다. 얘는 싱어송라이터가 되었음 좋겠어. 문학이든 음악이든, 예술을 타고 흐르듯이 살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막 튀어나온 것인데도 그럴 듯 했다. 그래, 자기가 쓰고 지은 노래 부르면서 여행도 많이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자유롭게 살면 되겠다.

그에 대한 남편의 답은, 얘는 커서 회사원이 되고 싶을 수도 있잖아? 그건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렇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과 계획적이고 익숙한 삶 중 무엇이 더 나은지 부모가 결정해 버리는 것은, 어쩌면 더 살았다는 이유 하나로 부리는 오만과 독선일 수도 있다. 치마와 바지, 분홍색과 파란색, 싱어송라이터와 회사원 사이에서 가치를 찾고 선택을 하는 것은 삶을 살아낼 사람의 몫일 것이다.

아이 앞에 삶은 아이가 그리는 것이지 내가 그려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엄마로서 초록이에게 가르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공주처럼 살지 말라는 충고가 아니라 너는 너라는 이유로 이미 충분하다는 고백이 아닐까.

  

 

너라서 아름다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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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초록이처럼 공주가 되고 싶은 암탉 세 마리가 있다.

깃털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화사깃털 아가씨, 쭉 곧은 다리를 가진 늘씬다리 아가씨, 빼어난 볏을 지닌 멋진볏 아가씨는 자기가 가장 예쁘다며 늘 다툰다.

이들은 누가 가장 예쁜지 가리기 위해 임금님에게 찾아가고 임금님은 가장 아름다운 달걀을 낳는 이를 공주로 삼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시작 된 알 낳기, 누구의 알이 가장 아름다울까.

임금님에게 가장 아름다운 달걀을 가려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말 그렇다. 이들이 낳은 세 개의 달걀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모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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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이 그림책을 읽을 때마다 초록이는 세 개의 달걀 중 어떤 것이 가장 예쁘냐고 묻고, 우리는 서로 다른 달걀을 고른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달걀은 매번 바뀐다. 이 짧은 대화를 반복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걀은 모든 달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초록이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다.

암탉 세 마리는 자신만의 이유로 아름답기 때문에 모두 공주가 되었다. 자 이제 공주다운 옷으로 갈아입을 차례이다. 공주에게 어울릴 아름다운 옷으로 무엇이 좋을까.

 

내 삶의 주인은 나야 <종이 봉지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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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는 아름다운 공주이다. 맨 처음 나오는 그림 하나로도 초록이는 엘리자베스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초록이의 공주님들이 언제나 그렇듯이 성에 살고 있고 그 성에는 비싸고 좋은 옷들이 많았으며 로널드 왕자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다. 그동안 디즈니가 보여주던, 익숙한 공주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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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에게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공주처럼 살지 말라는 충고는 하지 않기로 다짐 했으니, 대신 공주가 되어 어떻게 살 것인지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초록이에게는 디즈니가 아니라, 초록이가 직접 만든 공주가 필요하다. 어렵겠지만 우리의 엘리자베스가 도와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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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엘리자베스는 초록이가 알고 있던 공주의 길에서 점점 멀어진다. 종이 봉지 한 장을 아무렇지 않게 드레스 대신 걸치는가하면 용이 훔쳐간 자신의 왕자님을 구하기 위해서 기꺼이 낯선 길을 걷고 혼자의 힘으로 용을 쓰러뜨린다. 그 뿐인가 용으로부터 구해 낸 왕자가 고맙다는 말 대신 진짜 공주처럼 예쁘게 다시 입고 돌아오라고 화를 내자, 왕자에게 소리를 친다. “넌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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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봉지 공주의 결말은 ‘두 사람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지요’가 아니라 ‘두 사람은 결국 결혼하지 않았지요’이다. 그러고 보니 맨 첫 장에 엘리자베스와 로널드 왕자의 표정이 새삼스럽다. 사랑의 시작에서도 끝에서도 선택은 엘리자베스의 몫인 것이다.

떠오르는 해를 향해 양팔 벌려 춤을 추듯 다가가는 엘리자베스의 뒷모습이 앞으로 남은 공주로서의 삶을 말해주는 듯하다. 어떤 공주보다 더, 공주다울 것이다.

“엄마, 난 그래도 종이 봉지보다 이 드레스를 입은 엘리자베스가 좋아 더 예뻐.”

“뭐? 그럼 초록이도 로널드 왕자처럼 겉만 번지르르 한 거야?”

내 말에 초록이가 울기 시작했다. “엄마 너무해! 난 번지르르하지 않아!”

아이의 눈물을 닦으며 난 정말 왜 그럴까, 금세 후회를 한다. ‘그래 네 생각은 그렇구나’ 이 한마디를 못하고 또 버럭했다. 가치를 찾고 선택을 하는 것은 삶을 살아 낼 아이의 몫으로 두기로 했으면서.

그럼에도 또 다시, 초록이가 엘리자베스처럼 스스로 길을 찾고 그 길 위를 성큼성큼 걷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종이 봉지를 입고도 씩 웃을 수 있는 공주가 되었으면.

아이의 삶에 욕심을 버리는 엄마 되기가 이렇게 어렵다. 오늘 밤에는 꼭, 충고는 삼키고 고백만 해야겠다. 너는 너라는 이유로 이미 충분해, 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걀이야.

  Information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걀> 저자: 헬메 하이네 | 역자 김서정 | 출판사: 시공주니어 | 발행연도: 1998년 11월 10일 | 가격 7000원

<종이 봉지 공주> 저자: 로버트 먼치 | 역자: 김태희 | 출판사: 비룡소 | 발행연도: 1998년 12월 22일 | 가격: 7500원

/사진: 지혜

그림 같은 육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통해 아이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고민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신 개념 육아일기. 이를 통해 ‘엄마의 일’과 ‘아이의 하루’가 함께 빛나는 순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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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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