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 않은 생선회, 세비체
낯설지 않은 생선회, 세비체
2016.07.25 15:00 by 이민희

'세비체(ceviche)'란 요리를 아는가? 

세비체는 페루와 칠레, 에콰도르 등 남미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먹는 매콤새콤한 회무침이다. 해산물과 함께 다진 고추와 양파, 그리고 라임즙이 주재료로 들어간다. 회사 동료들을 통해 세비체를 몇 번 경험한 뒤부터, 횟집에 가서 광어나 우럭을 먹을 때면 '조금 남겨서 집에 가져갈까' 하는 생각부터 한다. 차고 시큼한 음식이라 광어 한 마리를 통째로 써서 먹긴 좀 부담스럽고, 남는 회로 조금만 만들어 먹어도 사이드 메뉴로선 제격이다.

농어와 연어로 만든 세비체(사진:Kondor83/shutterstock.com)

세비체의 시작

양식의 세계 안에선 전반적으로 회를 썩 즐기지 않는다. 엔초비 정도가 예외일 뿐, 날로 먹는 생선에 쌓인 오랜 거부감 때문이다. 친숙하지 않은 식감인 데다 때때로 위생상으로 위험한 일이니까. 일본의 스시가 어느 정도 그 문턱을 낮춰놨기 때문일까. 이어서 자연스럽게 양식의 식탁 위에 또 다른 회 요리가 놓이기 시작했다. 그게 세비체다. 새로운 식경험에 대한 갈망으로 페루 퀴진이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탓이기도 하지만, 시트러스 계열의 시큼한 과일이 동반된 덕분에 그럭저럭 날생선에 대한 거부감을 덜 수 있었을 것이다.

세비체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분분한 입장이 존재하는데, 스페인과 남미(특히 페루) 사이의 식민지 문화가 만든 음식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먼 옛날 잉카 제국에서는 패션프루트 같은 시큼한 과일을 발효해왔는데, 그렇게 만든 과일 식초와 고추에 날생선을 절여 먹었다. 16세기 에스파냐는 페루를 비롯한 남미 정복을 시작하면서 당시에 남미에 없었던 라임과 오렌지, 그리고 양파를 식량으로 잔뜩 실어 가져갔다. 자연스럽게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식문화가 섞여 세비체가 완성됐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페루식 세비체(사진:Carla Nichiata/shutterstock.com)

한편 ‘시크베즈(sikbāg)’가 세비체의 기원이라는 설도 있다. 6세기부터 페르시아에서 시작해 아랍권에서 오래 사랑받아왔던 스튜인데, ‘시크(sik)’는 식초를 뜻한다. 즉 시크베즈는 식초를 넣고 끓이는 고기 요리다. 그 시대에 시크베즈란 적당히 산미도 있고 저장성도 뛰어난 인기 음식으로 통했고, 특히나 배를 타는 선원들에게 필수적인 음식이었다. 선원들은 고기가 떨어지면 생선을 썼다. 바다를 타고 돌고 돌면서 발전하고 변형된 생선 조리법 가운데 튀김옷과 시큼한 소스를 만나 유대인을 통해 영국으로 전해진 것이 피쉬 앤 칩스의 기원이고, 날로 먹는 남미의 전통과 결합한 것이 세비체라는 주장이다.

_MG_4125

 

세비체의 재료들. 해산물과 레몬 및 라임이 핵심 재료다.

 

세비체 그리고 초장

페루에는 천원짜리부터 만원짜리까지 다양한 세비체가 있다고 한다.  멀리 페루까지 가지 않아도 대충은 알 것 같다. 칠레 친구로부터 레시피를 배웠다는 동료 신소영씨는 세비체를 만들 때 꼬막과 라임을 쓴다. 조개를 날로 먹긴 어려우니 살짝 데쳐서 만든다. 한편 또 다른 동료 강지수씨는 어린 날 에콰도르에서 성장했는데, 그는 살짝 데친 새우를 쓰고 오렌지 주스를 활용한다. 연어를 쓰는 사람도 있다. 손에 쉽게 잡히는 재료로,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요리라는 뜻이다.

다 달라도 세비체의 핵심은 결국 생선과 산미다. 그런데 그걸 세비체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그건 우리와 멀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생선구이에서 벗어나 마침내 회를 먹기 시작했을 때, 필요했던 건 와사비 간장이기 이전에 약간의 용기와 매콤하고 새콤한 초장이었다. 만드는 방법이 다르다 한들 세비체의 본질도 다르지 않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세비체의 주재료는 생선 이외에 고추와 레몬 계열이다. 재미있다. 방법이 다르고 형태가 달라도 생선과 산미라는 본질은 같다.

꼬막을 넣고 만든 세비체(신소영의 레시피)
새우와 오렌지 주스를 넣고 만든 세비체(강지수의 레시피)

여담으로 라임과 고추로 만든 세비체의 드레싱에는 초장보다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남미에서는 ‘호랑이 우유(leche de tigre)’라 부른다. 홀짝 마시면 호랑이 기운이 솟아 정력 강화에 보탬이 된다고 믿는다. 초장에 그런 이야기가 따르지 않아 다행이다.

 

/사진: 원파인디너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자본과 인력, 인지도 부족으로 애를 먹는 스타트업에게 기업공개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단숨에 대규모 자본과 주목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 파트너와 고객은 물론, 내부 이...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현시점에서 가장 기대되는 스타트업 30개 사는 어디일까?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