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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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1 16:45 by 시골교사

“몸은 건강하시죠?”

주변 사람들이 날 보며 말한다. 무슨 의도인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내가 아무리 “아니에요. 저 연약해요”라고 항변해도 소용없다. “에이, 왜요. 몸 좋으실 것 같은데”라는 그들의 굳건함만 재확인할 뿐이다.

아놔, 연약하다니까…(사진:JGA/shutterstock.com)

억울하다. 실제로 난 몸이 약한 편이다. 하지만 결혼 이후 늘 오해를 받는다. 출발은 시댁에서부터. 키 180cm에 몸무게 57kg의,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몸뚱이를 가진 남편 탓에 (상대적으로) 나의 연약함은 제대로 어필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진짜로 약하다. 봄만 되면 비염으로 폭풍 콧물을 흘리며 지낸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정도는 더욱 심해져, 어떨 때는 줄줄 새는 콧물과 재채기로 제대로 앉지도, 눕지도 못할 때도 있다.

한국에서 이미 그럴 진데, 타향살이에 몸이 견디겠는가. 독일에 와서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참다못해 남편과 함께 알레르기 검사를 받으러 간 적도 있다. 가냘픈 남편은 알레르기가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반대로 ‘몸 좋은’ 나는 100여개 정도의 검사항목 중 절반 이상에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났다. 그 이후로 남편은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으으. 바이러스! 부산… 부산으로 가야한다!(사진:thodonal88/shutterstock.com)

검사 결과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은 사실이 하나있다. 내가 독일 토양에 참 안 맞는 체질이라는 점이다. 먼지, 진드기는 물론이고, 이름 모를 각종 꽃가루, 빵에 들어가는 각양각색의 곡물과 씨앗 등 알레르기에서 자유로운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빵을 먹으면 안 되는데, 독일 주식이 뭔가? 바로 ‘슈바르츠브호트’(Schwarzbrot, 검은 빵)라는 빵이다. 심지어 그 빵에는 다양한 잡곡과 씨앗이 섞여 있다. 어쩐지 빵만 먹었다하면 바로 재채기가 나더라니. 빵을 먹어야 사는 땅에서 내 몸이 그것을 거부하니, 나는 이 나라에 안 맞는 체질임에 틀림없다.

‘빵 금지=끼니 금지’ in Germany(사진:Eskemar/shutterstock.com)

다소 희한한 알레르기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책 알레르기다. 아침에 도서관에 앉으면 불과 몇 분 안에 곧바로 재채기를 동반하는 콧물 샘이 터진다. 그런 증상은 점심시간이 되어 도서관을 나와야 사라진다. 식당에서 점심 먹으며 수다 떨다보면 어느샌가 말끔해지는 것이다. 내가 중고딩이라면, 공부하기 싫어서 대는 핑계라고 생각하겠지만, 유학생, 것도 가난한 유학생이다. 책에 대한 알레르기를 가진 게 분명하단 얘기다.

 

| 내 학위를 부탁해, 도서관의 추억

책 알레르기 얘기가 나온 김에 도서관의 추억을 좀더 떠올려본다. 내가 공부했던 킬 대학 중앙 도서관은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현대식 건물이었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지하에는 주로 논문들이, 1층에는 과별 전공책과 수업교재로 쓰는 교과서들이, 2층에는 과별로 다양한 도서들이 소장되어 있다.

전공도서 같이 중요한 책의 경우는 여러 권을 두되, 그 중 한 권에는 노란 딱지를 붙여 대여가 안 되게 분류해 놓기도 했다. 그 책을 꼭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위한 하나의 방책인 셈이다. 이렇게 비치된 전공도서들 덕분에 책을 굳이 구입하지 않아도 공부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도서관 1층은 대출실을 중심으로 컴퓨터실, 해당과의 열람실, 그룹공부방으로 구성돼있고, 2층은 열람실과 그룹 공부방으로 나뉘어져 있다. 층마다 동전을 넣고 복사할 수 있는 복사실도 구비되어 있다.

중앙도서관 대출실(사진: 시골교사)

중앙 도서관은 해가 나면 자동으로 블라인드가 내려오고, 어두우면 다시 올라가는 자동 채양 조절시설을 갖추고 있다. 해가 없는 이곳 특성을 감안하면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여름엔 이 시설이 내는 굉음으로 고요한 열람실의 분위기가 종종 깨지기도 한다. 또한 습도 조절 시설이 잘 되어 있어 아주 오래된 책의 보관에도 문제가 없다. 이런 현대식 시스템과 구조 덕분에 다른 대학에서 이 도서관의 시설을 종종 견학하러 오곤 한다.

 

| 7년간의 고정석

도서관 문은 정확하게 오전 9시에 열린다. 부지런한 학생들은 미리 가서 입실을 준비하기도 하는데, 겨울에 눈보라가 치든, 비바람이 몰아치든, 학생들이 밖에서 추위에 벌벌 떨든 아랑곳하지 않고, 정확히 9시가 되어야 문이 열린다. 학생들은 하는 수 없이 도서관을 청소하는 터키 아주머니들의 새벽 업무가 끝나길 기다리며, 그녀들이 퇴근하는 길목을 서성인다.

도서관 열람실1 (사진: 시골교사)

특히 시험기간엔 평소보다 많은 학생들이 도서관 앞에 진을 친다. 도서관 문이 열리자마자 자리를 맡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은 어느 나라든 볼 수 있는 풍경일 게다.

열람실은 책상 한 개당, 한 명 내지는 두 명씩 이용하게 되어 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책상마다 설치된 스탠드다. 일조량이 부족한 이 나라는 낮에도 스탠드 불빛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중앙 도서관에는 내가 즐겨 앉는 자리가 있었다. 2층 열람실에서 첫 번째로 맞닿는 자리이다. 이 자리는 드나들기가 쉽다는 이점이 있다. 그래서 나처럼 짬짬이 공부하러 오는 사람에게 안성맞춤이다. 처음 몇 번 앉았던 그 자리는 결국은 7년간 변함없는 고정석이 되었다. 아침 1교시 수업이 비면 그 자리를 맡아 두고, 비는 시간마다 들러 공부를 하곤 했다.

도서관 문이 열리고 내게 익숙한 자리를 찾아가 보온병에 준비해간 커피를 한잔 따라 마시면서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는 그 기분이라니! 그렇게 7년간 변함없이 한 자리를 애용하다보니, 다른 자리에 앉으면 영 남의 자리처럼 불편함을 느끼는 부작용까지 생겼다.

유학기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집중하며 보내는 곳, 도서관. 익숙한 자리를 찾아가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는 기분이 그립다.(사진:Who is Danny/shutterstock.com)

 

| 도서관 자리 쟁탈전

도서관 자리에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 여느 때처럼 자리를 맡아 두려고 도서관에 들렀는데, 그 자리(7년간의 고정석)를 아랍계 한 남학생이 이미 차지하고 있었다. (내 멋대로) 고정석 삼은 지 4년 정도 됐을 무렵이었다. ‘수년간 닦아놓은 내 자리를 겁도 없이 앉다니!’라는 마음에 얄미움이 솟구쳤지만, ‘에이, 오늘 하루만이겠지’라는 생각으로 참았다. 그런데 웬걸.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계속해서 그가 내 자리를 먼저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참고로 도서관 열람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고정 멤버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짧으면 한 학기, 길면 두 학기 같은 열람실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뻔하단 얘기다. 대부분 대학 내지 대학원 졸업시험에 한창 바쁜 학생들이다. 그렇게 같은 열람실에서 공부하다보면 눈인사 정도 나누기도 하고, 간혹 몇 마디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서로의 자리를 존중하고 지켜준다. 일찍 가도 남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도서관 열람실2(사진: 시골교사)

하지만 뜨내기들이 어디 그런 눈치가 있으랴. 더구나 그 남학생, 그 자리에 뭐가 그리 꽂혔는지 도서관 문만 열리면 ‘두두두’ 소리를 내며, 필사적으로 내 자리로 달려간다. 어쩌겠는가. 온갖 알레르기에 잠식당한, 몸도 약한 내가. 한동안 그 남학생에게 내 소중한 공간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germany

독일도 ‘쿡방’이 대세랍니다

 

최근 TV를 틀면, 여기저기서 요리하는 모습을 꽤 자주 본다. 요리사가 마치 연예인 같다. 그런데 이 광경, 왠지 낯설지 않다. 독일 역시 그랬다. 독일 사람들은 요리에 관심이 참 많다. 거의 매일 각 채널에서 요리코너가 진행된다. 아마추어 요리사들끼리 일정한 재료를 놓고 개성 있는 아이디어로 요리를 만드는 대회도 있고, 프로 요리사와 일반인 간에 요리대회가 펼쳐지기도 하고, 프로 요리사들끼리 경쟁하는 형태도 있다. 

그 중에서 내가 자주 보던 건 금요일 밤 11시, 요한네스 케르너(J,Kerner)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이었다. 한 시간 안에 유명 요리사 다섯 명이 애피타이저부터 메인요리, 후식까지 그 자리에서 직접 만들어 내놓는 설정이다. 다루는 재료와 음식도 독일의 것부터 아시아의 것 까지 다양하다. 일류 요리사가 만든 요리를 시식하기 위해 매 주 방청석은 바닥까지 빽빽할 정도로 가득 찬다. 주어진 시간이 있다는 긴박감, 요리사들의 재치 있는 입담, 냉정한 평가와 경쟁 같은 것들이 큰 재미 요소로 작용한다. 

주말이 시작되는 늦은 밤에 시청해서 그런지, 아니면 최고의 요리사가 만든 요리라 그런지 방송을 지켜보면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가끔은 이 시간에 배운 것을 응용해 보기도 하지만 이 맛이 방송에서 나왔던 진짜 그 맛인지는 잘 모르겠다. 

요리사들의 인기도 연예인 못지않다. 그 중에 팀(Tim Mälzer)이라는 요리사는 영국에서 요리코너 방송을 맡아 진행할 정도로 국제적인 인기를 누린다. 이런 유명 요리사들은 주로 별 다섯 개짜리 호텔에서 일하거나, 직접 식당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들을 보며, 저들이야 말로 철저한 직업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함양하는 독일 교육철학의 산 증인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독일에선 벽에 못 하나 박는 일도 ‘어깨너머’나 ‘눈대중’으로 대충 배워 하는 일이 없다. 철저한 직업교육을 통해 연마된다. 고등학교까지 13년 간 의무교육 기간을 마치면 개인의 희망에 따라 직업학교에서 3년간 교육을 받게 된다. 그 과정을 마치면 해당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증이 주어지고, 거기서 본인이 원하면 마이스터(Master‧장인)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곳에서는 이런 전문인들의 학력을 거론하지 않는다. 축구선수나 요리사가 명문 대학에 입학했거나, 졸업했다고 화제가 되는 일이 전혀 없다. 대학 졸업장과 전문인의 실력은 무관하다. 실력은 실력으로 말해줄 뿐이다.

(사진:Fotokon/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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