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이 맵다, 오휘명 작가
짧은 글이 맵다, 오휘명 작가
2016.08.24 17:22 by 김석준

초단편? 얼마나 짧은 이야길까. 처음 ‘초단편’이라는 말을 접했을 땐, 굉장히 트렌디하게 느껴졌다. ‘그래 요즘 젊은 친구들은 길고 지루한 글은 안 읽지…’ 시대에 대한 한 발 앞선 배려랄까.

헌데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짧은)시가 소설의 대체제가 아니듯, 초단편소설도 그저 하나의 장르다. 중구난방 흩어지기 보단, 묵직한 한 방의 메시지를 가졌다는 게 가장 큰 매력. SNS채널의 성격 상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많지만, 유독 한 명이 눈에 들어온다.

매일 같이 올리는 육필(肉筆‧손으로 직접 쓴 글씨) 원고, 지칠 줄 모르는 신선함으로 벌써 꽤 많은 팬 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 오휘명(25)씨가 그 주인공. 짧지만 강렬한 오작가의 세상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오휘명 작가의 작업 공간은 발닿는 도심의 '카페'다.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글은 just_write 라는 오휘명 작가의 ID와 어울린다. 이런 것을 보고 '닉값'한다고 하던가.

소설을 매일 쓴다고?

억지로라도 써야 개미 눈물만큼이라도 느는 것 같았다. 스스로 ‘천재형’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매일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다.

주로 집에서 쓰나

이 카페 저 카페 돌아다니면서. 집에서는 집중을 못하겠더라.(웃음)

스스로를 천재형이라 분류한, 그래서 매일 써야한다는 오휘명 작가의 전략은 현재까진 적절한 듯 보인다. 그의 글을 구독하는 팔로워는 1년 5개월 만에 1만3000명을 넘겼다. 그가 주로 쓰는 초단편소설은 A4, 1장에 가까운 아주 짧은 이야기다.

초단편소설을 읽어본 적 없다고? 그렇다면 여기로!
두 번째 문집 「너에게路」에 수록된 ‘무향 무색 립밤’의 일부

인스타그램을 보니 손글씨 원고가 많던데?

이야기 구상을 할 때는 수기로 많이 써놓는다. 글을 쓰기 전에 손으로 메모를 많이 하면서 어떤 말을 할지 틀을 짜고, 그 후에 노트북으로 작업하며 살을 붙이는 식이다.

첫 번째 문집 「레토르트 노벨 레스토랑」에 수록된 ‘죽음에 관하여’의 일부. 노트북으로 온전한 글을 쓰기 전 손으로 작업하며 뼈대를 갖춘다. 완성작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손글씨를 선호하는 건가?

노트북과 손글씨, 어느 하나를 편애하지 않는다. 두 개 다 필요하다. 육필만으로 쓰기에는 속도가 느려 속이 터진다. 하지만 생각을 정리할 때는 손글씨가 꼭 필요하다.

누가 뭐래도 요즘 대세 SNS는 인스타그램이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은 글쓰는 사람에게는 좋은 플랫폼이 아니다. 블로그처럼 일목요연하게 자료를 정리하기에도 편하지 않고 글자 수에도 제약이 있으니 말이다.

인스타그램에 글을 쓰는데, 사실 인스타가 글에 적합한 SNS는 아니지 않나?

사용자수 측면에선 페이스북이 좋은데, 페이스북은 콘텐츠가 홍수를 이룬 느낌이 컸다. 인스타그램은 키워드별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글자 수 제한도 있고, 그렇게 보면 차라리 텀블러(Tumblr)가 더 나은 것 같은데, 사용자가 적어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은 매일하고 있다.

오휘명 작가는 매일 글을 쓸 만큼 글을 좋아하지만 전공은 이와 무관하다.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문학이나 글 관련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시간이 남을 때 문예창작학과를 몇 번 도강한 것이 전부.

 

어깨너머로 들은 강의는 도움이 됐나

솔직히 용어가 좀 어렵더라. 도강 경험을 한 뒤에 ‘직접 부딪혀서 쓰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고 좋은 소설 많이 읽자는 생각을 했다. 글이라는 것도 어차피 시대를 타는 거니까. 많은 지식을 가진 분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은 배우기보단 무조건 많이 읽자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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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작가, 아빠는 기자, 나는 소설 쓰는 학원 강사

초단편소설의 매력이 뭔가

매력을 말하기 전에 한계를 먼저 말해야 할 것 같다. 소설이라는 게 기본적인 구성이 있지 않나. 단계에 따라서 이야기가 전개가 되고, 또 그 이야기가 확실히 마무리되어야 한다. 명확한 메시지도 담겨야 하고. 하지만 극도로 한정된 분량 속에서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매력은 아무래도 ‘빨리빨리’ 문화에 맞춘 콘텐츠라는 정도? 현실과 타협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작해서 단편, 중편, 장편 소설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맞다. SNS에는 게재를 안 하지만 공모전용으로 중편이랑 장편을 많이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초단편이 중편이나 장편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좀 더 키워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많이 있고. 여러모로 괜찮은 작업인 것 같다.

장편은 공개 안 하는지.

아직 이르다. 어쨌든 올해 공모전에서 반응을 좀 보고.(웃음)

단편소설을 읽다 보면 이 작가의 장편은 어떨까?궁금하게 만드는 소설가들이 있다. 오휘명 작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올해가 지나면 단편 이상의 글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글 쓰는 직업은 언제부터 꿈꾼 건지

꿈꾼 건 스무 살 때부터. 사실 어머니가 문인협회 시인 겸 동화작가다. 아버지도 기자를 하셨고.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글을 많이 쓰게 하셨다. 그래도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대학교 때 ‘그래도 글 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게. 그때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은 학원 선생님을 하고 있다?

어머니도 전업 작가는 아니고, 학원을 운영하신다.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건지 모르겠지만, 교육업이 궁금했다. 대학교 1~2학년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란 소설을 읽었는데, ‘덴고’라는 등장인물이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근데 이 사람이 글을 쓰면서 경제적인 수익을 얻기 위해서 학원 강사를 한다. 그게 되게 멋있더라. 그때 처음 학원 강사하면서 글을 쓰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작가의 다른 직업은 학원 선생님이다. 예전에는 영어를, 지금은 국어를 가르친다.

가르치는 건 적성에 맞나?

성격이 원래 내성적이고 말주변이 없다. 처음 할 때는 겁을 많이 먹었었다. 아이들이 사춘기다보니까 어디로 튈지도 모르겠고. 근데 부딪치고 보니까 말하는 게 조금 느는 것 같더라. 더 중요한 건 말이 늘면 글도 는다는 거다. 속에 있는 걸 풀어내는 방법을 알아간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들어서… 여하튼 지금은 하나도 안 무섭다.

오휘명 작가는 지금까지 두 권의 책을 냈다. 「레토르트 노벨 레스토랑」과 「너에게」. 두 권 모두 문집이다.

「레토르트 노벨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이 독특하다.

원래는 패스트푸드 단편선이라고 지을까 생각했다. 빨리빨리 읽을 수 있는 그런데 패스트푸드라고 하니까 건강하지 못한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 그래서 추천을 받은 게 레토르트였다. 3분 요리 같은 건 금방 해먹을 수 있다. 빨리 읽을 수 있지만 나름대로 근사한 글들을 모아보자해서 이렇게 지었다.

「레토르트 노벨 레스토랑」과 「너에게路」는 자가출판 플랫폼 ‘부크크’에서 구입할 수 있다.

그럼「너에게路」는 어떻게 지은 제목인가.

「레토르트 노벨 레스토랑」에 비해서는 1인칭이나, 편지글 형식으로 많이 썼다. 독자들한테 보내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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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낸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

첫 번째 책을 내고선 마냥 좋았다. 한동안은 되게 뭐라도 되는 것처럼. ‘나 책 낸 사람이야’하고 다녔다. 두 번째 책을 내기 전엔 욕심이 많이 들었다. 책이라는 게 사람을 참 제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것 같다. 책을 내려고 하면 2~3개월 동안 밤을 새야 하니까 피곤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그래도 내고나면 엄청 좋으니까. 멈출 수 없고. 하나의 감정을 설명하긴 힘들고, 여러 감정을 주는 존재인 것 같다. 두 번째 책을 내고 나서는 ‘그래도 멈추지 않았구나’ 같은 약간은 대견한 마음도 있었다.

「너에게路」의 ‘세로쓰기’가 인상 깊더라.

이 책을 쓰고 나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의 눈으로 읽어보려 했는데, 글이 끝나고 바로 다음 장이 시작되니까 분위가 환기가 잘 안되더라. 한 페이지라도 ‘이야기 끝났습니다’라고 말씀드리는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서 세로쓰기를 했다. 모양도 세로가 예쁘다.

「너에게路」에 수록된 '외로움에 관하여' 중 일부
「너에게路」에 수록된 '책 위의 먼지를 털어낸 날' 중 일부

인상 깊었던 표현 중에 ‘온 세상이 나를 할퀴는 날’ ‘당신의 우울을 응원합니다’ 라는 글귀가 있었다. 혹시 상처가 글을 쓰는데 영감이 되는 건가.

다들 비슷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았던 기억보다 슬펐던 기억이 더 많다. 특히나 요즘은 위로가 필요한 세상이지 않나. 어설프게 ‘괜찮다’고 하는 것 보다, 우울하거나 아픈 부분을 들춰내는 게 낫다고 본다. ‘당신 지금 힘든 거 아니까, 울려면 펑펑 울어라. 막연한 위로는 하지 않겠다. 다만 당신의 우울을 응원하겠다’라는 말을 건네는 식이다.

오휘명 작가는 글을 재료로 실험하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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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형식을 빌린 로맨스 연재물. 오휘명 작가는 이 시리즈가 인기를 끌어 팔로워가 8000명 가까이 늘었다고 말했다. 더 읽으려면 여기로.

시를 쓸 때와 소설을 쓸 때 마음가짐이 다른가?

시를 쓸 때 조금 더 노골적이다. 소설을 쓸 때는 기계적으로 쓰는 느낌이 있고, 시는 동물적으로 써야 더 잘 써지는 것 같다. 소설은 구조를 생각해야 되고 장소나 상황을 치밀하게 제품을 만드는 것처럼 해야 한다면, 시는 어떤 감정을 담은 목소리를 크게 지르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 쓸 때 더 편하다. 그러다보니 경험이나 마음이 시에 더 많이 들어가는 것 같고.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시가 더 어려운 것 같은데

(나를 포함해) 요즘 시 쓰는 사람들이 불친절하면 더 멋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데, 전체적으로 반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도를 하고 싶어도 최소한의 소통의 장은 만들어놓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시라는 건 읽는 사람에 따라서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 장르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해석할 수도 있고. 그런데 아예 해석이 불가능하면 그건 쓰는 이유도 없고 읽을 이유도 없다.

 

글을 쓰는 이유? 하고 싶은 말 묵혀두면 병 될까봐.

결국 전업작가가 꿈인가

언젠가는. 전업작가라고 해서 매일 집에만 있는 건 아니고 어떤 회사와 계약을 맺어서 투고를 하는 작가도 있고. 거창하게 소설가나 시인으로 살고 싶은 게 아니라 글로 밥 먹고 살고 싶은 사람. 어떤 장르든지 쓰면서 돈을 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올해 처음 신춘문예에도 도전한다고

그렇다.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전에는 아예 바라볼 수도 없었다.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만 할 수 있는 거라고 본거다. 근데 생각해보니 또 그건 아니더라. 하다보면 실패해도 얻는 게 있겠지라는 생각에 최대한 많이 지원할 생각이다. 시도 넣고 소설도 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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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은 등단을 하지 않아도 글을 쓸 환경은 된다. 등단은 어떤 의미인가

여러 의미가 있다. 솔직히 처음에는 등단 생각을 안했다. 임경선 소설가의 에세이집 「태도에 관하여」에도 ‘등단을 굳이 할 필요 없다. 네가 꿋꿋하면 괜찮을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다만 뭔가를 보여드리고 싶다. 부모님과 독자들에게.

마지막 질문이다. 오휘명이 글을 쓰는 이유는?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라서? 정말 마초적이고 할 말 다하고 살면 굳이 글을 통하지 않더라도 그때그때 말할 수 있지 않나. 오히려 나는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글로 ‘내 마음이 이래요’라고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그나마 솔직해질 수 있는 게 글이고 나를 잘 나타낼 수 잇는 방법이기도 하다. 말하고 싶은 거 말하지 않고 묵혀두면 병 걸린다.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사진: 김석준, 오휘명 작가 인스타그램(@just__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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