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은 적으로 간주된다. 뒤에 붙는 용어로 개선, 치료, 제거 등이 익숙한 이유다. 특히 여성들의 고민은 더 크다. 필러나 리프팅 같이 보다 과학적인, 적극적인 처방도 마다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주름에 그다지 악감정이 없다. 오히려 삶이 오롯이 드러나는 주름은 멋스럽기까지 하다. 잘 웃는 사람의 눈가 주름에서도 포근함을 느낀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분명 혀를 차며 성을 내겠지만.
하지만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주름도 있다. 빨대에 있는 주름이다. 지그시 고개 숙여주는 빨대의 주름 덕분에 우리는 고고한 자태로 편하게 음료를 마실 수 있다. 이런 빨대의 겸손함을 탄생시킨 것은 다름 아닌 부모님의 아름다운 사랑이다.
2009년, 일본의 어느 광고 속을 들여다보자. 1960년대 일본 요코하마의 한 병실에 남자 아이가 누워 있다. 아이는 몸을 일으켜 음료수를 마시는 것조차 힘겹다. 아이의 어머니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해야 아이가 편하게 음료를 마실 수 있을까?’
고심 끝에 어머니는 밖으로 나가 고무 대롱을 사왔다. 덕분에 아이는 누워서 음료를 마실 수 있었지만, 어딘가 탐탐치 않아 보였다. 고무 대롱의 냄새가 너무 독했기 때문이다. 다시 장고의 시간. 그때 어머니에 눈에 들어온 건 수도꼭지. 수도꼭지의 주름처럼 빨대를 만들면, 자유롭고 위생적으로 먹을 수 있겠구나!
(고무)냄새 때문에 주름 빨대를 만들었다… 이 얘기 자체는 실제 빨대 탄생 배경과도 비슷하다. 빨대가 만들어 진건 19세기 말인데, 미국의 담배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마빈 스톤에 의해 처음 고안됐다. 마빈은 일을 마치고 위스키 마시는 걸 즐겼는데, 위스키가 온도에 너무 민감하다보니 손으로 들고 마셨을 때 체온 때문에 맛이 이상하게 변하는 게 싫었단다.
하는 수 없이 밀짚으로 빨아서 마셨는데, 밀짚의 향이 위스키의 맛을 망쳐서 다른 대안을 구상한 게 바로 원통형 빨대였다는 거다. 담배에 종이를 감싸는 일을 해왔던 그였기에 가능했던 방편이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주름 빨대의 탄생은 모성애로부터 나왔다는 거다. 재밌는 건, 일본 말고 서양의 탄생비화도 있는데, 여기에선 부성애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193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었던 일이다. 프리드먼은 가벼운 빨대가 자꾸 떠올라, 힘들게 밀크쉐이크를 마시는 딸이 모습이 안쓰러워, 컵에 걸칠 수 있는 주름 빨대를 만들어냈다. 동서양 주름 빨대의 이야기가 합쳐져 부모의 온전한 사랑으로 완성되는 순간이다.
주름 빨대는 1937년 특허를 받은 후, 주로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사용되며 널리 퍼졌다. 현재는 매년 50억개를 생산할 정도로 일상화됐다.
그렇다. 주름은 사랑이었다. 사랑에 의해 생겨난 주름 빨대처럼, 본인 얼굴의 주름도 사랑하다보면 보다 사랑스러운 모습이 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