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우리가 찾아갈 카르나크 신전은 룩소르 도심에서 북쪽으로 3km 가량 떨어져 있습니다. 이 거대한 신전은 고대에는 이페트-이수트(Ipet-isut), 즉 ‘가장 완벽한 곳’이라고 불렸습니다.
룩소르 도심에서 그리 먼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물가가 그리 높지 않은 이집트에서는 몇 백원 정도의 요금이면 택시를 타고 아주 편안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시간적 여유가 있으시다면 이 ‘완벽한 곳’으로의 도보여행을 적극 추천합니다. '완벽한 곳'으로 향하는 여정은 처음에는 깔끔하게 닦여 있는 아스팔트 길로 시작되지만 이 길은 곧 이집트의 시골마을로 이어집니다.
아시다시피 룩소르는 세계적인 관광지이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자주 이용하는 장소들은 현대식으로 정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관광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현대 문명의 이기들을 조금만 벗어나 골목길로 접어들게 되면, 세계적인 관광지의 혜택을 거의 받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 이집트 시골마을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공사장에서 뛰놀고 있는 어린 염소와 신전 인근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어린아이들, 건물의 폐허 속에서 만나게 되는 마치 서부영화에서 나온 듯한 모습의 늠름한 흑마 같은 이국적인 모습은 분명 외국인 여행자들의 눈길을 끕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관광지 바로 옆에서 살면서도 그 관광지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이곳에서의 삶은 타국에서 온 여행자를 조금은 서글프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어린이들만큼은 세계적인 관광지에서의 삶에 조금은 익숙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외국인 여행자를 쫓아가며 ‘원달러, 원달러!’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쓴맛이 나지만, 그들의 밝은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금세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카르나크로 향하는 길에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귀한 볼거리 중 하나는 룩소르 신전과 카르나크 신전을 연결하는 ‘스핑크스의 길’입니다. 비교적 최근에야 마무리된 복원 작업으로 일반에 공개된 이곳에는 인간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들이 길 양편으로 쭉 늘어서 있습니다. 룩소르 동안의 두 명소를 연결하는 이 길은, 룩소르 신전을 카르나크 신전의 부속신전이라고 주장하며 두 신전을 하나의 ‘신전 복합체’라 볼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두 신전은 하나의 길로 연결되었고, 실제로 오페트 축제가 열릴 때에는 카르나크 신전에서 출발한 의례 행렬이 이 길을 따라 룩소르 신전으로 향했습니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신전
카르나크는 룩소르 동안에서 가장 먼저 지어지기 시작한 신전입니다. 도심에 있는 룩소르 신전과 마찬가지로 아멘 신과 그의 아내인 무트 여신 그리고 아들인 콘수 신에게 봉헌된 이 신전은 중왕국 시대의 신전을 바탕으로 하여 기원전 1427년 경 왕위에 오른 제 18왕조의 아멘호테프 2세가 본격적으로 건설을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신왕국 시대 내내, 그리고 말기시대를 거쳐 그리스 혈통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까지도 꾸준히 신전 건설이 이어져 무려 1500년 이상 새로운 건축물이 추가되었습니다. 따라서 카르나크 신전을 단일 신전으로 이해하는 것에는 조금 무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일종의 ‘신전 단지’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카르나크 신전의 규모는 가로가 550미터, 새로가 500미터에 이르는데, 이것은 인류 역사상 세워진 종교 건축문들 가운데 가장 큰 규모에 속하는 것입니다. 소위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유럽의 유명 거대 성당들조차도 카르나크 신전에 비하면 겨우 3-4 분의 1 정도의 규모를 지니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거대한 규모 때문에, 그리고 또 그 규모에 걸맞은 엄청나게 복잡한 구조 때문에 카르나크 신전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마도 그런 작업을 위해서는 여러 권의 책으로 구성된 백과사전이 필요하겠지요. 여기에서는 아쉽기는 하지만,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곳 카르나크 신전은 여러 파라오들에 의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지어졌고 어마어마한 규모과 복잡한 구조를 지녔기 때문에 오늘날 이 신전을 접하는 이들은 대부분은 신전 건축에 열 올린 여러 명의 파라오들이 각자 자신들이 입맛에 맞게 신전을 끊임없이 증축한 것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파라오들 각각의 개성이 신전 건축에 반영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신전은 특정한 규칙에 따라 조화롭게 ‘하나의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이집트 문명은 오래도록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강력한 전통과 그 전통 속에서 개성을 드러내던 여러 개인들의 의지가 조화롭게 구성되어 만들어진 문명인데, 그것은 이 카르나크 신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 곽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