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이요!”
누군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난 곧장 이렇게 대답할 거다. 그만큼 열광하는 음식이다. 누구나 본인에게 소중한 것 하나쯤은 있겠지. 하지만 억만금의 돈을 주며, 소중한 그것을 포기하라고 묻는다면, 얘기는 180도 달라진다. 당연히 돈이다. 다른 산해진미를 맘껏 먹을 수 있는 돈이 있는데, 닭다리 따위… 그래, 내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대상의 가치는 딱 그 정도인가보다.
당신은 어떠한가? 억만금을 줘도 바꾸지 않을 소중한 무언가가 있는가? 순진한 소리 말라고? 1840년 영국의 한 젊은이가 실제로 그랬다.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위해 막대한 돈을 포기한 것이다.
1840년 12월, 영국의 헌트라는 청년은 사랑에 빠져 있었다. 헤스타라는 아가씨를 사랑해 결혼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걸림돌이 있었다. 여자의 아버지였다. 가난한 헌트가 못마땅했던 것. 자신의 딸이 가난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기 싫은 게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헌트는 예비 장인 설득에 나섰다. 어필 포인트는 자신의 총명함. 자신은 머리가 좋기 때문에 앞으로 잘 살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 하지만 아무것도 손에 쥔 것 없는 젊은이의 호기에 귀 기울여 줄 어른은 없다.
헤스타의 아버지는 헌트를 떼어내기 위해 “열흘 안에 1,000달러를 벌어오면 허락해준다”는 제안을 한다. 당시의 1,000달러는 지금으로 치면 약 2만 7천 달러.(한화 3000만 원 정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제안. 하지만 헌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큰 행사 때 사용되던 리본. 당시에는 행사 복장에 리본을 꼽기 위해 핀을 사용했는데, 이로 인해 자주 찔리는 데다가 단단히 고정하지도 못했다. 몹시 불편했던 거다. 누가 말했던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몇 날 밤을 지새우던 헌트의 열정은 희대의 발명품으로 결실을 보았다. 핀의 한쪽에 걸쇠를 만들고, 다른 쪽은 스프링처럼 구부려 걸쇠에 걸고 뺄 수 있게 만든 것, 지금의 안전핀(옷핀)이다. 바로 특허를 출원하고, 특허를 판매하기 위해 리본 가게를 뒤졌다. 다행히 약속된 열흘이 끝나기 전에, 옷핀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이 나타나 헌트는 미션을 성공할 수 있었다.
결국, 헌트는 헤스타와 결혼했다. 그렇다면 그때 옷핀의 특허를 사 간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가 예상하듯 소위 ‘떼돈’을 벌었다고 한다. 헌트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급처분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떵떵거리며 여생을 살 수 있었을 거다. 헌트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거다. 억만금의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을 갖고 싶었을 뿐.
갑자기 내가 한없이 초라해진다. 치킨, 치킨이라니… 헌트가 옷핀을 발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강렬히 원하는 '무언가에 대한 열정'때문이었을 거다. 내게도 억만금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이 생길 수 있을까? 일단은 그때까지 치킨을 더 열렬히 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