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철’ 불명예 속에 가려진 9호선의 반전매력
‘지옥철’ 불명예 속에 가려진 9호선의 반전매력
2016.09.11 22:16 by 최현빈

서울의 지하철 노선 중에서 가장 최근에 생긴 9호선. 지금은 서울 강서구 개화동과 송파구의 종합운동장을 연결하는 노선입니다. 한강변을 따라 김포공항과 여의도, 강남을 잇는 알짜배기 노선인 탓에 출퇴근 시간에는 최악의 ‘지옥철’로 꼽히지요.

 

최근에는 급행열차에서 기준치의 2배가 넘는 혼잡도(지하철 한 량에 160명이 탑승한 것을 기준)를 보였던 것을 고려해 열차를 증편하기도 하였습니다. 호흡곤란을 호소하던 승객들은 그나마 숨이 조금 트일 수 있겠지만, 4량짜리 짧은 열차가 다니는 탓에 9호선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가득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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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출퇴근 시간에는 최악의 지하철로 악명이 높지만, 9호선은 서울의 아름다운 명소들을 지나가는 노선이기도 합니다. 한강과 가까이 달리는 만큼 나들이를 떠나기엔 9호선만큼 편한 열차가 또 없습니다. 때문에 더욱 붐비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이번 오래된 역사의 테마는 ‘9호선 여행’입니다. 9호선 하면 떠올랐던 것은 여의도와 강남의 빌딩들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동안 별 생각 없이 지났던 역들에 머무르며, 빌딩 숲에 가려 있던 서울의 새로운 풍경들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9호선은 개화역에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붐빈다는 열차도 이곳에서는 한적하기 그지없습니다. 주변의 풍경도 논과 비닐하우스가 드넓게 펼쳐진 한적한 농촌 마을에 가깝습니다. 열차가 지나는 빌딩숲과는 대비되는 느낌이지요. 추석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벼들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지 녹색을 머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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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마지막 향교

 

다양한 장소들이 역명으로 쓰이고 있지만 그중에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지하철 4호선이 드나드는 경기도 안산의 신길온천역이 있지요. 지하철 9호선이 지나는 마곡나루역도 과거와 현재를 포함해 실제론 나루터가 없지만 역 이름에는 ‘나루’가 붙은 경우입니다.

 

하지만 마곡나루를 지나 도착하는 양천향교 역에는 실제로 향교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향학이라고 불렸던 향교는 지금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지방 교육기관입니다. 유교를 숭상하던 시대에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선현들을 모시는 공간이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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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향교는 서울에 남은 마지막 향교입니다. 과거 지방 수령이 제사를 지냈던 전통을 살려 지금은 강서구청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요. 또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고전, 서예 등 다양한 전통문화 수업이 열리고 있습니다. 향교를 찾은 오전에도 ‘논어’ 수업이 한창입니다. 적지 않은 나이의 학생들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원전을 강독하고 있었습니다. 서로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끊임없이 질문하는 열기가 대학 강의 못지않게 뜨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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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의 반장을 맡고 있는 공재춘씨의 모습

 

이곳에서의 공부가 올해로 6년 차인 공재춘(68, 서울 강서구)씨는 수업의 반장을 맡고 있습니다. 오늘 논어 수업도 이전에 공부했던 것의 복습인 만큼 한자로 가득한 원전도 자연스럽게 읽어냅니다. 재춘씨는 “이제는 사회에 환원시켜야 할 나이”라고 말하며 이곳에서의 공부를 토대로 언젠가는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목표입니다. 선생님들은 다 같이 입을 모아 “공부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언제든지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랐습니다.

 

 

구반포와 신반포

 

양천향교를 떠나 다시 종합운동장행 9호선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열차는 여의도를 지나 강남으로 향하고 달리면 달릴수록 승객들도 더 많아집니다. 그러던 중 유사한 이름의 두 역을 지났습니다. 바로 구반포역과 신반포역인데요. 인접한 7호선에도 ‘반포’라는 이름의 역이 있고으니, 무려 세 개의 역이 같은 이름을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9호선에는 신방화(방화역은 5호선), 신목동(목동역은 5호선), 신논현(논현역은 7호선) 등 기존의 역명을 활용해 이름을 지은 역들이 많습니다. 한편으로는 먼저 지은 노선의 역부터 이름을 붙인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구반포와 신반포라는 역명은 지역 주민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9호선이 개통하기 한참 전부터 그렇게 불렸던 동네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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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주변을 둘러보면 단순한 주거지역 같지만, 이곳은 한강 나들이를 가기에도 최적의 장소 중 하나입니다. 역에서 내려 한강까지 걸어서 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곳의 서쪽에서는 한강의 노을을 감상하기 좋은 동작대교가 있고, 동쪽으로는 시원한 강바람을 쐬며 저녁을 보내기 좋은 반포한강공원이 있습니다. 9월의 맑은 가을 하늘을 기대하고 나왔지만 아쉽게도 이날은 구름이 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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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역, 코엑스 대신 봉은사로

 

흐린 한강 하늘을 뒤로하고 다시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고속터미널, 신논현 등 강남의 주요 거점들을 지나자 내리는 사람들이 급격히 많아집니다. 열차가 종점인 종합운동장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봉은사역에 내렸습니다. 신라시대(794년)에 창건된 불교사찰인 봉은사는 12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을 반복했지만 오랜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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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이 지닌 종교적 의미도 크지만, 봉은사는 보통 시민들에게도 도심 속 소중한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날도 연꽃이 가득한 풍경이 또 다른 신선함을 줍니다. 산책로에는 피로를 풀러 온 직장인들, 쇼핑백을 든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이곳을 방문한다는 진경수(52, 서울 동작구)씨는 “절을 찾으려면 산속으로 멀리 가야 되는데 이곳은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작은 아늑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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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하철 9호선은 종합운동장역까지만 운행합니다. 종착역에 다다른 이른 저녁, 역 앞에는 경기를 보러 온 야구팬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서울에서 가장 바쁜 지하철이기도 하지만, 또 가장 휴식과 가까이에 있기도 한 지하철 9호선. 사람으로 가득한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이 힘들 때, 잠시 내려서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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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동오

필자소개
최현빈

파란 하늘과 양지바른 골목을 좋아하는 더퍼스트 ‘에디터 ROBI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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