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이상희(27・서울대 농경제사회학과 4학년) 씨는 3년 차 주말 농부다. 예전 같으면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자리를 갖거나, 집에서 TV를 보고 있을 주말이지만 그는 이제 토요일만 되면 종로구에 위치한 도시 텃밭으로 나간다. 도시농업 동아리 ‘인텔리겐치아(intelligentsia)’를 만나면서 생긴 변화다. 이씨는 “농사를 3년째 짓는데도 아직 모르는 것투성이다”며 웃으며 말하지만, 바지를 걷어 올린 채 삽을 들고 모종을 옮기는 모습은 영락없는 농사꾼의 모습이다.
인텔리겐치아는 ‘행동하는 지성인’이란 뜻으로, 2012년 3월, 당시 한양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 재학 중이던 심홍섭(28・현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4학년 재학 중) 씨가 ‘획일화된 대학 동아리 활동이 아닌,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목표로 연합동아리를 만들었다. 현재 38명의 대학생, 직장인들이 주말마다 도심의 자투리땅을 개간한 텃밭에서 농사를 지은 뒤, 수확한 농작물을 주변에 판매해 수익금을 내고 있다. 이상희 씨는 “프레젠테이션, 마케팅등에 치중하던 스펙 위주의 동아리에서 벗어나 좀 더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점이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직장인 한지연(28) 씨는 “인텔리겐치아의 대학생들은 농사 활동뿐만 아니라 기부, 정치·사회 이슈와 인문학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해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성원 다수가 대학생이었던 인텔리겐치아가 어엿한 도시농업 동아리로 성장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학생들 대다수가 ‘농약을 쓸 수도 없고 유기농 농법도 몰라서 배추에 붙은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손으로 한 마리씩 일일이 잡을 정도’의 초보 농사꾼이었고, 무엇보다 농사지을 땅이 한 곳도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첫 번째로 주어진 미션은 ‘밭 찾기’.
심홍섭 씨는 “학생들만의 힘만으로는 직접 땅을 구매하거나 임대하기가 쉽지 않아서 여러 방법을 찾아 나서야 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인텔리겐치아는 도시농업 사업을 진행하던 종로구와 2012년 ‘도시 텃밭 조성 및 관리 협약’을 체결하고 도시 텃밭 관리 및 조성활동에 함께 참여하기 시작했다. 최지원 종로구청 공원녹지과 담당은 “종로구는 대학생들에게 경작 공간과 모종을 지원해주고, 인텔리겐치아는 도시농업 활동을 통해 기부와 봉사활동 을 진행하는 상부상조의 관계를 구축 중이다”고 이야기했다.
농사를 지을 땅을 구하자, 농사 교육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진딧물 없애는 법’을 검색해 진딧물을 없애려면 달걀과 식용유를 섞어 뿌리면 된다는 노하우를 얻고, 주변을 수소문해 농민들을 찾아뵙기도 했다. 농사를 직접 지으면서 자연스레 깨달은 이치도 있다. 최지윤(23・서울여대 원예생명조경학과 4학년) 씨는 “민트를 뿌리째 떠서 항아리에 따뜻하게 넣어두면 다음 여름에 그대로 다시 심어 재배할 수 있다”며 “작년에 농사를 지으면서 알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동아리가 설립된 지 2년이 지난 현재, 현재 인텔리겐치아가 종로구와 용산구에서 경작하고 있는 밭은 무려 265m2 규모에 달하며, 각양각색의 허브와 채소, 과일까지 밭 한 곳에서 기르는 작물의 종류도 열 가지를 넘어섰다. 특히 수확량을 증대시키기 위해 작물 관리팀이 유기농법을 공부해 구성원들에게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매 계절 각 밭에 어떤 작물을 재배할 지 체계적으로 계획・관리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가을에는 종로구의 텃밭에서만 약 60포기의 배추를 수확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렇게 키운 작물은 모두 나눔을 위해 내놓고 있다. 작년 겨울에는 종로구청 직원으로 구성된 도시농업 동아리 ‘종로애 농부’와 함께 ‘아름다운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 직접 기른 배추로 200포기의 김치를 담가 서울시노인복지센터에 전달했다. 또한, 마포구의 ‘늘장(늘 열리 는 시민의 장터)’이나 대학로의 ‘마르쉐’ 등 시민 장터에 참가해 직접 만든 허브티 티백, 쌈채소 라떼 등의 유기농 먹거리를 판매한 뒤 수익금을 기초수급가정 2곳에 전하고 있다. 2년간 전한 물품과 현금 기부액 총액은 어느덧 100만 원 상당에 이른다. 박수범(25・서울대 농경제사회학과) 씨는 “단순히 농사를 짓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수익금을 기부하는 등 사회에 환원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인텔리겐치아의 활동이 더 특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작은 대학 동아리로 출발한 인텔리겐치아는 어느새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눌 것을 갖기 위해 땀 흘리는 곳’으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다. 이상희 씨는 “올해 하반기부터는 종로구 소유의 밭에서 나는 수익금을 사회복지협의회에 기탁하려고 생각 중이다”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곳에 의미 있는 기부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농업 관련 사회적기업과 연 계해 농사 활동에 대한 전문성도 더욱 높여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글/조소담
소셜에디터스쿨 청년세상을 담다 1기. ‘더나은미래’를 꿈꾸는 청년활동을 소개하면서, 언제, 어느 자리에 있든 ‘즐거운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나 자신이 세상을 담을 수 있는 ‘좋은 그릇’으로, 그리고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기자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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