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길에 널브러져 있다면서요?”
“진짜 소한테 배꼽 인사 해요?”
‘인도에 산다’고 소개하면, 한국 사람들은 대개 이런 질문부터 던진다. 인도에 대해 가장 궁금한 게 ‘소’란 얘기다.
‘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왜 ‘소’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인도의 힌두 문화에서 ‘소’가 신성한 동물로 여겨지고 있다는 건 대부분 알고 있을 터, 실제로 인도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그중에서도 ‘흰 암소’가 가장 신성한 동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유는… 그들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냥 하얘서…? 눈이 아름다워서…? 우유를 주기 때문에…?
신성한 소, 더 신성한 우유
하얀 소는 인도의 신, ‘크리슈나’와 관계가 있다. 크리슈나는 일명 ‘목동신’으로 소를 타고 다닌다. 신이 타는 게 소이니 신성하다는 건, 한국의 산신이 호랑이랑 함께 다니니 호랑이가 산신이고 산신이 호랑이가 되는 이치와 비슷하다.
앞서 학생들의 대답 중 ‘우유 생산’ 부분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우유는 그냥 마시거나 첨가물 정도로 사용할 뿐이다. 그런데 인도는 우유의 가공 종류가 상상을 초월한다. 크림, 버터는 물론이요, ‘기’(버터를 끓여 만듦), ‘더히’(떠먹는 요거트), ‘라씨’(마시는 요거트), ‘짜이’(밀크티), ‘빠니르’(우유로 만든 치즈), ‘키르’(붓다가 공양 받았던 우유죽) 등이 대표적이다. 우유를 졸여 만든 각종 스위트들도 유명하다. 그 우유의 종류만 해도 지방을 한번 거른 톤드(toned)밀크, 두 번 거른 더블 톤드, 거르지 않은 풀크림(full cream), 무지방 스킴(skim)밀크까지 방대하다. 이렇게 나열하다 보니 우유가 가진 인도에서의 존재감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어찌 됐건 ‘소가 신성한 이유’를 정확하게 아는 학생은 결국 없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의식 때문인가, 나는 어쩔 수 없이 ‘인도의 농경사회에서 가장 소중한 ‘재산’이자 ‘일꾼’을 귀중하게 여기는 습관이 문화가 되고 종교화되었을 것’이라는 애매한 결론을 도출한 채 소에 대해 묻기를 그만두었다.
소고기 찾아 삼만리
인도에서 ‘소를 신성시한다’는 건 상식 중의 상식. 하지만 처음 인도에 왔을 때 한식당에 소고기 볶음밥과 육개장이 있길래, ‘소고기를 아예 못 먹는 건 아니구나’라며 안도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모디 총리(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지난 2014년 5월에 선출된 인도의 제15대 총리)의 강경한 조치로 인해 인도 대부분의 주(州)에서 소고기를 먹거나 파는 사람을 체포하기 시작했고, 잊을 만하면 ‘소고기를 팔다가 맞아 죽은 사람’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즈음 한식당 소고기 메뉴도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고 소를 아예 안 먹는 것은 아니다. 고소한 쇠고기에 대한 욕망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을 때 동료 한 분이 귀엣말로 알려주신 한 전화번호!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 고기를 주문하면 하루 이틀 후에 ‘그분’이 초인종을 누른단다. 소고기와 함께.
고기 욕심 많은 우리 부부는 텐더로인(안심) 3kg, 테일(꼬리뼈) 2kg, 립(소갈비) 2kg, 본(사골뼈) 3kg 총 10kg를 주문했다. 이틀 후에 온 꾸말(가명)씨는 선글라스에 검은 진을 입고 오토바이를 끌고 왔으며, 스포츠백에서 검은 봉지를 주섬주섬 꺼내었다. 그 안에는 미처 숙성되지 않은 새빨간 쇠고기가 핏물을 흘리며 담겨 있었다. “이건 Buff(물소 고기)가 아니라 진짜 Beef!”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고, 뉴델리와 구르가온(Gurgaon: 뉴델리에서 1시간 거리 도시로 서울로 치면 성남 정도) 등에 있는 한식당과 일식당에는 모두 본인이 고기를 배달하고 있다며 품질을 자부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네댓 번 주문 후 거래를 끊었다. 고기의 숙성이나 부위별 구분 등이 잘 안 된 소고기를 먹자니 질기고 냄새나는 게 영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곤 인도 사람들이 소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맛있는 고기 맛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버렸다.
그렇게 (몰래 먹은) 소고기 맛을 잊어가고 있을 때 남인도 ‘첸나이’(Chennai, 옛 지명은 마드라스)에서 온 학생이 식당을 한 곳 추천하며 속삭였다.
“선생님, 거긴 ‘진짜’가 있어요.”
그곳은 남인도 전문 식당이었다. 그곳을 알려준 학생의 말로는, 남인도는 북인도와 달리 가톨릭 교인이 많고, 어업 등으로 인해 非채식주의자(인도에서는 보통 Non-Veg.라고 한다)가 흔한 곳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메뉴판에는 닭, 염소, 돼지고기 요리와 (남인도 언어로 표기된) 소고기 요리까지 모두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맛은 실로 흐뭇했다. 포장해서 다른 한국인에게도 맛을 보여주었는데, 그 만족도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어쨌든 그렇다. “인도에서 소고기를 먹으면 잡혀가냐?”는 질문엔 “네, 잡혀갑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인도 정부에서 소고기 도축이나 판매를 처벌하고 있고, 민간에서도 소고기 먹는 이야기를 했다가는 내놓은 목숨…까진 아니지만, 어쨌든 좋을 게 없다.
다만 먹을 수 있는 길도 있다.
사실 현지의 외국인에게는 약간의 관용과 허용도 있다. 하지만 너무 티 내며 즐기지는 말자. 그들의 문화를 깊이 존중하며 아주 ‘조용히’ 즐기는 게 좋겠다.
/사진: 성서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