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치킨은 ‘산소 같은 존재’다. 치킨이 없는 삶은 생각지 못한다. 아마 나뿐만은 아닐 터. 국내에 프라이드치킨 열풍이 불기 시작한 건 1977년 ‘림스치킨’의 등장부터다. 이후 치킨은 먹거리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불과 40년 만의 일이다. (참고로 전기구이 통닭은 1960년에 처음 나왔다. 뭐가 됐건 생각보다 긴 역사는 아니다.) 치명적인 매력으로 짧은 시간에 온 국민을 매료시킨 치느님의 탄생 비화, 궁금하지 않은가?
치킨에 대한 오해 하나! 아마 ‘KFC(Kentucky Fried Chicken)’를 프라이드치킨의 시초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을 거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KFC는 치킨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뿐 처음은 아니다. KFC 하면 백발 할아버지부터 떠오르는데, 체인의 설립자인 커넬 샌더스(Colonel Sanders)란다. 재밌는 건, 특유의 그 수염이 탈색된 것이라는 점.(원래는 검은색이란 소리다.) 마케팅 전략으로 머리카락 색에 맞춰 수염도 탈색하고 흰 정장만 입었다고 한다.
사실 치킨은 아픔을 간직한 음식이다. 과거 노예 문화가 있던 미국 남부 지역에서 시작되었는데, 지금처럼 ‘맛있게’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고안된 음식이라고 한다.
당시 백인들은 닭을 튀기지 않고 구워서 먹었다. 백인들은 먹을 것이 풍족해서, 모가지나 날개같이 잔뼈가 많은 부분은 먹지 않았다. 반면, 흑인 노예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일하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그나마 고기를 먹을 수 있던 때는 백인들이 고기를 남긴 날. 노예들은 남은 닭을 가져가서 목화 기름 등에 튀겼다. 잔뼈가 많다 보니 뼈째 먹기 위해 기름에 바짝 튀겼는데, 그게 바로 프라이드치킨의 시초다.
하지만 난 믿는다. 비록 고됐지만, 맘껏 먹진 못했지만, 기름에 튀긴 치킨의 맛은 그때도 황홀했을 거다. 치킨의 맛에 빠져 피로도 잊고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었으리라. 어쩌면, ‘이렇게 먹는 것이 훨씬 더 맛난데!’라며 프라이드치킨의 맛을 모르는 백인들을 비웃고, 통쾌해했을지도 모른다. 치킨은 언제나 진리니까!
인종 차별의 아픔을 딛고 탄생한 치킨, 이제 치킨 앞에서 인종을 초월해 모두가 하나 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 치맥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