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할머니가 들려주는 얘기가 제일 재밌다
원래 할머니가 들려주는 얘기가 제일 재밌다
2016.09.30 17:26 by 윤민지

세종종합사회복지관 ‘하하호호 은빛동화구연단’

우리는 흔히 ‘얼굴이 꽃처럼 환하다’는 표현을 씁니다. 밝은 미소, 경쾌한 움직임, 시원한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을 볼 때면 꽃을 보듯 기분이 좋아지죠.

지난달 20일, 세종시 조치원읍에 위치한 세종종합사회복지관 앞. 문 밖까지 느껴지던 즐거운 기운은 아마도 이 10명의 할머니들 덕분일 것 같은데요. 올해로 4년째,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어르신 동화구연단 ‘하하호호 은빛동화구연단’의 이야기를 들어보실까요?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보영 사회복지사, 최옥석(81), 김남숙(72), 변종희(71), 한연희(75), 이순례(72), 신승자(74), 백정열(84), 이정희(73), 김혜순(80), 류영애(73) 할머니.

아이들과 어르신이 모두 즐겁게, "하하호호"

세종종합복지관은 2007년 개관 이후, 아동‧노인‧한부모가정 등 세종시 지역 주민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중 올해로 4년째를 맞은 ‘하하호호 은빛동화구연단(이하 은빛동화구연단)’은 활발한 활동으로 지역사회에도 잘 알려져 있지요. 세종종합사회복지관은 세종시에 거주하는 만65세 이상 어르신께 동화구연교육을 진행하는데요. 교육을 마친 어르신들은 세종시 내 어린이집, 유치원 등 유‧아동 기관을 대상으로 동화구연 재능기부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떠들썩했던 이날은 은빛동화구연단의 자조모임이 있었는데요. 동화구연 경력은 1년 반에서 4년까지 다양하지만, 어린이들을 만나지 않을 때면 자조모임에서 각자의 동화구연에 대해 서로 조언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교구제작, 손유희(손으로 재미있게 표현하는 동작), 눈에 띄었던 아이들의 반응 등 실전에 도움이 될 정보도 나누죠.

동화구연 시연 중인 하하호호 은빛동화구연단

은빛동화구연단의 ‘막내’ 변종희(71) 할머니는 ‘빵돌이와 빵순이’를 들고 나왔습니다. ‘빵’이 나올 때마다 박수를 치는 재미가 있어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틀리면 벌칙이 있다”고 강조하자 할머니들이 웃음을 터뜨립니다. 이내 곧 두 손을 들고 변종희 할머니를 지켜봤죠.

“빵돌이와 빵순이가 빵집에 가니 맛있는 빵이 많았습니다. 팥빵, 밤빵, 식빵. 계란빵, 붕어빵, 호두빵, 국화빵, 풀빵!”

때를 놓친 박수소리와 웃음이 뒤섞여 강의실은 금세 시끌벅적했는데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이니 다음번 동화구연 때 꼭 해보라”는 조언도 이어집니다.

율동을 따라하는 하하호호 은빛동화구연단

“부단한 연습을 통해 더욱 재미있게 다가갑니다”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동화를 들려주고자 꾸준히 노력하는 하하호호 은빛동화구연단. 새벽까지 동화를 외우거나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며 다양한 표정, 손유희를 익히기도 하죠.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끔 3~4세, 5~6세 등 연령에 맞춰 동화를 개작하고, 직접 그림도 그립니다.

직접 그린 그림을 들고 나온 이순례 할머니.

이순례(72) 할머니는 이날 직접 그린 그림동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를 선보였지요. “그림이 정말 멋지다”는 말에 이순례 할머니는 “어린 시절에 그림 잘 그린단 말은 못 들었지만 이제와 해보니 또 그려지더라”며 쑥스럽게 웃었습니다. 할머니들의 연습은 댁에 돌아가서도 끊이지 않습니다. 류영애(73) 할머니의 손주는 할머니가 동화구연을 할 때마다 귀를 감싼다고 하는데요. “손주를 앉혀놓고 연습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이제 아이가 그만하라고 할 지경이에요.(웃음)”

붙였다 뗄 수 있는 교구 역시 할머니들이 직접 잘라 만듭니다. 한연희(75) 할머니는 “동화구연을 시작한 후로는 교구 제작, 동화 개작을 하면서 너무 바쁘다”면서도 뿌듯한 얼굴이었죠. 물론 고령의 나이에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김혜순(80) 할머니는 “처음에는 다른 사람 앞에 선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면서도 “여러 번 하다 보니 자신감이 조금 붙은 것 같다”며 웃었습니다. 이정희(73) 할머니는 “많이 부족하지만 아기들에게 좋은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게 좋다”며 동화구연을 추천했습니다.

동화구연지도자 자격증 취득으로 더욱 커진 자신감

하하호호 은빛동화구연단의 활동은 지난 2015년 중부재단의 한울타리 사업으로 선정돼 올해로 2년차를 맞았습니다. 중부재단은 매년 충청남도 소재 사회복지기관을 선정해, 충남지역사회의 복지증진과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은빛동화구연단을 담당하는 김보영 사회복지사는 중부재단의 지원을 통해 어르신들의 '전문성'이 한층 더해졌다고 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동화구연지도자자격증 취득'이죠. 지난 8월 8일, 은빛동화구연단원 전원이 ‘동화구연지도자 3급 자격증’을 취득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죠.

“4개월가량 수업을 들으신 후, 8월에 필기와 실기 시험을 모두 통과하셨어요. 자격증을 취득한 후로 어르신들도 더 자신감이 생겼고, 어린이집이나 학부모님들도 좋아하시는 걸 느껴요.”(김보영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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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동화구연 현장. (사진제공 : 세종종합사회복지관)

김 사회복지사는 "중부재단은 사회복지실무자를 동반자로서 따뜻하게 감싸준다"면서, "한울타리 지원 사업의 일환인 ‘슈퍼비전’(사회복지기관 종사자의 역량 발휘를 위한 지원)도 큰 힘이 됐다"고 했습니다.

4년 전, 하하호호 은빛동화구연단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어려운 점이 참 많았습니다. ‘어린이와 어르신 간의 세대통합을 이루고 싶다’는 바람과는 달리, 참석자가 크게 줄었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대기자 명단이 있을 만큼 입소문이 났습니다.

“은빛동화구연단의 어르신 중에는 혼자 사시거나 사랑하던 가족을 잃은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동화구연을 하고부터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힘을 얻으시고, 또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세요. 다른 어르신들께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김보영 사회복지사)

김보영 사회복지사

“다시 태어난 것처럼 활력이 생겼어요”

나이도, 성격도, 얼굴도 모두 다르지만 할머니들을 하하호호 은빛동화구연단으로 이끈 건 하나,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변종희 할머니는 “집안 사정 때문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접어야만 했다”며 “동화구연 하면서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란 말을 들으니 꿈을 이룬 것 같다”고 말합니다. 40여년 가까이 유치원 선생님으로 일했던 최옥석(81) 할머니도 덧붙입니다. “은퇴 후에 무기력하게 지냈어요. 동화구연 선생님으로 어린이들 앞에 서서 다시 봉사할 수 있어 더 기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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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어린이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끈끈한 동료애로 연결된 하하호호 은빛동화구연단은 어떤 미래로 향하고 있을까요? 김보영 사회복지사는 “더 많은 곳에 찾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습니다.

“조치원 읍내에 있는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소외지역 등 더 어려운 곳에 찾아뵙고 싶어요. 아이와 어르신들 모두에게 동화를 들려드릴 수 있도록 순회공연도 하고 싶고요.”

백정열 할머니는 하하호호 은빛동화구연단의 목표는 단 하나라고 강조합니다. 그건 바로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언제까지나 지켜나가는 것이었죠.

“어린이들을 위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 일을 절대 할 수 없어요. 저희는 10명이지만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데서 행복을 찾아요. 조치원에 저희 같은 할머니 선생님들을 보고 많은 분들이 용기를 얻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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