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으로부터
호흡으로부터
2016.10.18 12:04 by 오휘명
(사진:Wenpei/shutter.com)

나는 한 호흡으로부터, ‘후’보다는 ‘후우우우우’에 가까운 적당히 센 호흡으로부터 눈을 떴다.

누군가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날이었고, 나는 케이크 위의 촛불을 끄기 위해 생일의 주인공이 크게 불어낸 호흡으로부터 바람이 되었다.

“고마워요,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진실한 바람’과 함께였다. 그래요. 나도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눈을 뜨고 몇 뼘쯤을 날아가는 동안 촛불들이 지니고 있던 따뜻한 기운은 금방 식어버리고 없었다. 좋건 싫건, 나는 나라는 존재의 특성상 여전히 축하의 말들이 오가는 즐거운 자리도 등져야만 했다. 조금은 쓸쓸하기도 한 탄생이었다.

*

가을에 태어난 탓일까, 고민거리가 있거나 할 일이 없을 때면 나는 거리의 구석을 찾았다. 담뱃갑이나 낙엽과 같은 쓸쓸한 것들이 모이는 곳, 그곳에서 발에 차이는 것들을 멋대로 툭툭 차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종종 어린아이들이 다가와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산의 짐승들과 하늘을 나는 새들, 그리고 어린 인간들과 같이 순수한 존재들은 가끔 나를 볼 수 있었다.

‘안녕, 꼬마. 이 밑에 있는 것들은 만지지 마. 지지야, 지지.’

“우와, 회오리바람이다.”

회오리바람이라니, 끽해야 골목 구석을 맴도는 작은 바람일 뿐인데. 동물이든 인간이든, 작은 존재들은 모두 귀여운 법이었다.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발길질에 걸려드는 마른 잎사귀들의 개수는 많아졌고, 하늘은 점점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상상할 수도 없이 거대한, 어떤 ‘흐름’을 따라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여러 크고 작은 바람들, 그들 중 몇몇은 내게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음……아니, 나는 아직.’

겁이 많은 걸까, 아니면 드물게도 움직이는 것을 꺼리는 ‘돌연변이 바람’으로 태어난 걸까.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아직은 그 큰 흐름에 몸을 맡기고 움직일 자신이 없었다. 낙엽이 늘었고 하늘이 시끄러웠다.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가을이었다.

*

산짐승들은 밤에 뛰놀기를 좋아했다. 토끼와 고라니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와 술래잡기를 하곤 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에 관하여,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관하여 고민을 하다가도, 그들과 밤새 뛰어놀고 나면 그 무거운 마음도 한결 나아지곤 했었다.

거의 모든 잎사귀가 나무로부터 떨어져 나간 어느 날이었다. 나는 바람인 주제에 눈치가 느렸고, 오랜만에 밤의 산을 올랐을 때, 그리고 늘 나와 뛰놀던 짐승들이 있었던 곳에 없음을 확인했을 때 비로소 겨울이 왔음을 깨달았다. 짐승들은 아마도 긴 잠을 자러 갔으리라.

‘산짐승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계절을 보내는데.’

울음이 나왔다. 앙상한 가지들 덕분에 소리를 내서 울 수도 있었다. 나는 여전히 골목 구석의 담에 기대서, 쓰레기들이나 발로 차면서 지내는 게 좋은데, 대기의 큰 흐름 따위와는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사는 게 좋은데. 그게 잘못된 걸까. 세상은 내 마음과는 관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울음이 나오면 나오는 대로, 후우우웅 후우우웅 소리를 내면서 산을 오르던 중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평소에 올랐던 곳보다도 훨씬 더 높이 올라와 있었다.

‘내 정신 좀 봐.’

두려웠다. 얼른 나의 골목으로 가야 했다. 고개를 두어 번 흔들고, 올라왔던 산길을 돌아 내려가려는데, 나는 문득 이상한 기척을 느꼈다. 멀지 않은 곳이었다. 고개를 들어 그곳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얇은 철판들을 덧대 만든 임시 건물假建物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제 46경비초소>. 그리고 그곳에서, 나 말고도 사람이 한 명 또 울고 있었다.

*

이 산 부근의 어떤 시설을 감시하는 군인들인 것 같았다. 선임병으로 보이는 사람은 초소의 구석에 쭈그려 쪽잠을 청하고 있었고, 후임병은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의 사진을 보며 끅끅 눈물을 삼키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만져보는 총의 이곳저곳을 쓰다듬어 보고, 병사의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말려주려 내 몸을 갖다 대 매만지기도 했다.

“우우……추워…….”

제법 오랜 시간 보초를 서고 있었는지, 나의 조심스러운 매만짐에도 병사는 괴로워했다. 조금은 무안해져서, 나는 손길을 멈추고 그가 들고 있는 작은 사진을 바라봤다. 웃는 것이 아름다운 중년 여성의 얼굴이 있었다. 이 병사는 분명 그녀가 그리워서 울고 있는 것이리라.

내가 이 사람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나는 고민했고, 제법 괜찮은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기껏해야 바람의 촉감이겠지만, 마음 정도는 내가 전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확실한 것은 없었다. 병사의 어머니가 여태껏 가본 적 없었던 아주 먼 곳에 있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게는 남는 것이 시간이었고, ‘나는 형편없어, 나는 겁쟁이일 뿐이야’라는 자신의 생각에 대한 오기랄까, 악 같은 것이 한창 치밀어있던 참이었다. 좋아, 가보자고.

병사의 얼굴을 만지던 때보다도 더욱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병사를 껴안았다. 제발, 내게 이 그리운 마음이 내게 잘 스며들길.

*

이틀 정도를 쉬지 않고 날았다. 사명감이랄까,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해야만 한다, 가야만 한다.’는 마음을 한번 품고 나니, 높거나 빨리 비행을 해도 이전처럼 무섭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재밌기까지 했다. 나는 때로는 새보다 높았고, 도로 위의 자동차보다도 빨랐다. 그리고 나는 먼 곳에서 묘하게 나를 이끄는 집 한 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과연 병사의 어머니가 사는 곳이 맞았다. 시간은 깊은 새벽이었고. 그녀는 사진에서 봤던 것처럼 평온한 얼굴로 잠에 빠져 있었다. 처음 촛불을 끄기 위해 눈을 떴을 때보다, 산짐승들과 가슴이 터질 정도로 뛰놀 때보다도 마음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나는 바들바들, 방 안의 공기를 흔들며,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았다.

‘여기, 그리운 마음을 전합니다.’

마법 같은 일이었다. 그녀가 돌연 잠에서 깬 것. 성공한 걸까, 그녀는 몸을 일으켜 얼마간을 앉아있더니, 가까운 서랍을 열어 사진 한 장을 꺼내 바라보기 시작했다. 신나는 마음으로 야단법석을 떨며 날아가 그것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병사의 얼굴이 있었다. 행복했다. 태어날 때부터 갈망해왔던 행복이 그곳에 있었다.

*

겨울이었다.

병사의 부모가 사는 집에서 아침밥의 냄새를 먹고, 든든한 마음으로 도로 집을 나섰다. 이곳에도 구석은 많았고, 어느덧 하루는 시작이 됐는지 골목 저쪽에서 환경미화원이 빗자루질을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낙엽과 여러 쓰레기가 몰려있는 골목의 구석에 걸터앉더니,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시작했다. 저 표정에 담긴 것은 또 무엇일까. 그리움일까, 아니면 어떤 슬픔일까. 그 사연을 또 내가 들을 수 있을까. 그렇게 하고 싶었다.

겨울이었다, 큰 흐름을 따라 어딘가로 가는 것 말고도 바람의 일은 많았다.

그리고 나는 머무는 바람이었다. 쓰레기와 낙엽과 외로운 사람이 걸터앉는 곳, 나는 다시 바람이 머무는 곳으로 간다.

 

길 건너 그분들의 사연  세상의 모든 존재들, 나와 나의 주변 ‘것’들이 각자 간직한 마음과 사연. 그 사연들을 손 편지처럼 꾹꾹 눌러 담아 쓴 초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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